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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 Oct 15. 2021

독일의 문 적응기

 독일의 문은 나에게 주머니가 있는 옷을 입게 만든다.

   독일에 와서 집을 계약할 때 집주인이 집안의 곳곳을 설명해주면서 열쇠도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었다. 대문 열쇠부터 우편함 열쇠까지 많은 열쇠들이 있었다. 아직 독일은 직접 우편물로 받는 경우가 많아 이름도 제대로 적혀 있어야 우편물을 받을 수 있다. 나는 집에 대해 설명을 들으며 무슨 집에 이렇게 열쇠가 많나 싶었다.  보통 한국은 대부분 번호키로 되어 있어서 번호만 누르면 들어갈 수가 있고 열쇠를 안 들고 다니는 편리함이 있는데 여기는 모든 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와야 한다. 특히 독일의 우리 집 구조는 빌라의 구조인데 밖에서 집으로 들어올 때 현관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와서 또 문을 열고 들어온다. 이중으로 되어 있어서 안정감은 있지만 사실 현관문은 닫히면 문이 잠겨버리기 때문에 열쇠를 안 갖고 나갔다가 낭패를 볼 수가 있다. 부동산 중개인도 집안 설명을 같이 해주면서 열쇠를 깜박하고 놓고 나갔다가 사람을 불러서 열쇠를 여는 경우도 있고 하니 열쇠를 항상 잘 챙겨서 다니라고 이야기를 했다. 분리수거 통도 현관을 나가야 버릴 수 있기 때문에 집 안에 사람이 없으면 반드시 열쇠를 갖고 나가야 한다. 아님 현관문이 고정되게 해 놓고 나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이때부터 나의 걱정과 꼼꼼함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직장을 다닐 때 혼자 실을 썼기 때문에 항상 실의 열쇠, 책상 열쇠, 시건장치가 있는 사물함 열쇠 등 열쇠 꾸러미를 갖고 다녔다. 주머니가 없는 옷을 입고 출근을 하는 날이면 작은 가방을 메고 거기에 핸드폰과 열쇠를 넣고 다녔는데 여기에 와서도 열쇠를 챙겨야 하다니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독일어도 안 되는 상황에서 열쇠를 놓고 가는 만약의 상태를 대비하여 주머니가 있는 옷을 선택하기로 했다. 열쇠를 목에 걸고 다니기엔 내 나이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근데 이러고 2주 넘게 생활하고 있지만 사람의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았나. 또 금세 적응을 하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와야 하기 번거로움과 열쇠를 들고 다녀야 하는 귀찮음이 있지만 덕분에 남편의 퇴근시간을  기다리게 된다. 혹여 남편이 늦게 퇴근을 하더라도 오기 전까지 졸지도 않고 기다리게 된다. 잠이 들면 문을 못 열어주기 때문이다. 출근할 때도 남편이 나가고 문을 잠가야 하니 나갈 때도 상냥하게 인사를 해주게 된다. 사실 단점보다 장점도 많았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오는 것보다 문을 열어줘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상대방이 오는 것을 확인하고 그날의 기분을 파악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도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지난번에는 남편이 늦게 퇴근을 했는데 아이들과 함께 문을 열어주었다. 물론 나 혼자 기다리면 무섭기도 하고 졸리기도 해서 아이들과 함께 놀이를 하며 기다렸다. 큰 애랑 둘째가 벨소리가 들리자 아빠를 놀라게 해 준다며 벽 뒤에 숨어있었다.  짠하고 나타나는 아이들을 보자 피곤을 안고 퇴근하는 남편의 얼굴도 환하게 바뀌었다.

  아직은 열쇠를 늘 들고 다녀야 하는 독일의 문의 번거로움을 적응 중이지만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진다는 것에 아직은 이 번거로움을 즐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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