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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일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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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 Jul 25. 2022

독일에 와서 미싱기를 꺼냈다.

오랫만에 만나는 나의 추억

  어제 트리어를 다녀오며 들린 마트에서 남편이 바지를 하나 샀다. 허리는 맞는데 바지 기장이 긴 바지였다. 남편이 지금 집에 미싱기 있나?라고 물어보길래 나는 큰 애 방에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나는 남편의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 이제 미싱기를 꺼낼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나의 나의 미싱기는 너무 오래 방치되어 있었다.  

  나는  첫 직장에서 두 번째 직장으로 이직을 할 때 퇴근 이후의 시간이 여유가 생겨 전공 외에 뭐라도 배워두면 좋을 거 같아 미싱을 배우기 시작했다. 퇴근 후 배우러 다닌 미싱 학원에서 휴지곽에서부터 가방, 두루마리 휴지통, 베개커버 등 꽤 배웠었다. 내가 미싱에 소질이 있지는 않았지만 배우는 건 재밌었다. 그리고 결혼 후에는 큰 애가 1살까지는 남편 바지 밑단을 미싱기로 직접 박아주었다. 조그만 커튼 같은 것도 만들었었는데 일자로 박는 것만 잘했다.

  그러다 직장을 다니며 육아를 하느라 미싱기는 구석으로 밀려났다. 퇴근 후 큰 애와 놀아줘야 할 시간도 부족했다. 그러다 둘째가 태어나고 나면서부터는 미싱기는 아예 열어보지도 못했다. 퇴근 후 나는 두 아이를 돌보는 시간이 더 소중하고 바빴다. 늘 한편으론 미싱기를 쓰긴 써야 하는데 언제 해보나 하는 생각만 했었다.



  남편은 나에게 바지 밑단을 세탁소에 맡겨도 된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독일에 있는 동안은 한국에서 직장을 다닐 때보다는 시간적 여유가 좀 더 있으니 다시 미싱기를 꺼내볼 생각으로 남편에게 내가 해주겠다고 했다. 너무 오랜만에 만난 나의 미싱기는 내가 돌보지 못한 시간만큼 먼지가 쌓여 있었다.  먼지도 닦고 하나씩 작동이 되나 하나 바늘이 부러졌다.

  시작부터 불길했다. 그러나 다행히 여유분 바늘이 하나 있어 꽂았다. 이 바늘이 없으면 미싱기는 한국에 가서 사용을 해야 한다. 한국에 가면 다시 직장을 다녀야 하니 나의 미싱기는 또 구석으로 들어갈 게 뻔한다.

  독일에서 열심히 활용을 하다 가야 하기에 나는 장인의 손길로 바늘을 꽂았다. 다행히 잘 꽂혔다. 그리고 먼지도 털어주고 드디어 미싱을 시작했다. 너무 떨렸다.

  남편의 바지를 자르지는 않고 안으로 밀어 넣어서 바느질을 했다. 혹시 잘 못 박을 수 있으니 막 자르면 안 된다. 나는 실을 바늘에 잘 꽂고 발을 밟으며 조심스레 바지를 돌려가며 일자 박기를 했다. 다행히 잘 박혔다. 내가 미싱기로 바지를 박는 동안 아이들은 미싱기 소리에 옆에서 계속 구경을 했다. 아이들은 신기하다고 했다.

  나는 우여곡절 끝에 바지 밑단을 완성했다. 한 번 박으면 안 될 거 같아 2줄로 박았다. 남편에게 나중에 불편 하면 다시 밑단을 잘라서 다시 박아주겠다고 이야기했다. 남편은 고맙다고 했다. 나도 오랜만에 미싱을 해보니 기분이 좋았다.   

11년 만에 다시 열어보는구나. 미싱기를 공부하고 있다.
일자 박기 흉내는 냈다.

젊은 시절 만들었던 나의 미싱 작품들

  오늘 미싱기를 열어보며 옛날에 내가 만들었던 미싱 작품 사진들을 핸드폰에서 하나씩 찾아봤다. 사진을 보니 벌써 13년 전이다. 나는 지금도 열심히 살고 있는 거 같은데 그땐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았던 거 같다.

  나는 오늘 나의 미싱기를 꺼내보며 젊은 시절 나의 열정을 다시 한번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던 거 같다.

  독일에 있는 동안 조금씩 뭐라도 하나씩 박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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