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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일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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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 Sep 01. 2022

이렇게 까지 독일 택배기사님이 반가운 적이 없었다.

한국에서 보낸 택배가 독일까지는 잘 도착했다. 


  2주 전 독일에서는 살 수 없는 한국 책들이 필요해서 택배를 주문했었다. 요즘은 보통 한국에서 독일까지 국제 배송이 2주 정도 걸린다. 내가 주문한 택배가 독일 프랑크푸르트까지 잘 도착했다는 걸 사이트에 들어가서 확인을 할 수가 있었다. 이제 택배가 집까지 잘 도착만 하면 된다. 언제 전화가 올 지 모르니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한 번에 되는 일은 없다. 내가 집에 없는 사이에 택배기사님이 왔나 보다. 나한테 전화도 없었다. 그리고 수취인이 부재하여 미수령되었다는 걸 사이트에 들어가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나 같은 경우는 오전에는 학원을 가기 때문에 오후에만 집에 있는데 택배 때문에 학원을 안 갈 수도 없고 난감했다. 

  택배기사님이 전화를 하면 언제 집에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전화를 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뒷 날도 내가 없는 사이에 택배 기사님이 왔다 갔다. 또 수취인 부재로 미수령이라는 안내가 떴다. 언제 오는지 안내도 없고 답답했다. 

  나는 안 되겠다 싶어 해당 메일 주소를 찾아 메일을 썼다. 나는 택배가 안 왔다. 택배가 언제 오는지,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메일을 썼다. 그리고 하루 뒤에 메일이 왔다. 내가 집에 없어서 택배 기사님이 갔다며 관세를 받아야 해서 택배 기사님을 직접 만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회신 메일을 썼다. 화요일은 집에 없고 수요일은 집에 하루 종일 있을 것이니 수요일 와줄 수 있냐는 메일을 썼다. 그러나 답이 없었다. 독일의 시스템은 성격 급한 나에게는 어렵다. 




독일어 듣기, 말하기 평가 = 독일인 상담원과의 통화

  나는 이번 주 월요일에 학원을 마치고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아 최대한 빨리 집에 도착했다. 택배가 올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택배는 오지 않았다. 배송 사이트에 들어가니 창고에 보관 중이라는 안내만 떠 있었다. 메일은 회신도 안 오고 택배는 언제 올지 모르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용기를 내어 오늘 독일 우체국 콜센터에 전화를 시도했다. 

  독일어 교재에 나오는 듣기 평가보다 말하는 소리가 울렸다. 안내 목소리에 따라 내가 대답을 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시스템이었다.  

  처음에 전화를 해서 질문에 대답을 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데 잘못 대답을 해서 계속 다음 단계로 가다보니 결국 내가 택배를 수령하는 걸로 가게 되어 전화를 끊고 다시 시도했다. 그리고 다시 시도한 끝에 여자 상담원과 통화가 되었다. 너무 기뻤다. 우선 기계랑 대화하는 것보다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감사했다. 

  그리고 그렇게 나의 독일어 능력 말하기와 듣기 평가가 시작되었다. 병원에 전화를 해서 예약 정도는 할 수 있는데 이렇게 나의 문제를 이야기를 해야 하고 해결을 해야 하니 조금 긴장이 되었다. 이 정도는 내가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말을 천천히 시작했다. 

  우선 나는 상냥하고 인사를 하고 나는 독일어를 조금 한다고 이야기를 하니 영어로 말을 하라고 해서 영어는 더 못한다고 독일어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나의 택배가 안 왔다.라고 이야기를 하니 배송 번호를 부르란다. 배송 번호를 독일어로 숫자와 알파벳을 부르니 한국에서 보낸 거라고 해서 맞다고 하니 오늘 보내준단다. 그래서 나는 너무 기쁜 나머지 상담원에게 "나는 오늘 하루 종일 집에 머무를 것이다. ",  "택배를 기다릴 것이다.", " 오늘 꼭 택배를 만나기를 원한다." 는 말을 하고 너무 고맙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정말 신났다. 국제배송의 경우 우편물을 수령하지 않거나 창고에 보관이 기한이 넘으면 보낸 국가로 다시 돌려보내진다는 안내가 있어 다시 한국으로 택배가 갈까 걱정을 했었다. 택배 기사님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니 마음이 놓였다. 



 나는 당신을 다시 보기를 희망했습니다. 

  오후 1시쯤 드디어 벨이 울렸다. 독일 택배 기사님이다. 나는 얼른 나갔다. 이미 돈도 준비해두고 있었다. 살면서 이렇게 까지 택배 기사님을 기다려 본 적은 없었던 거 같다. 나는 택배 기사님을 보자마자  "당신을 다시 보기를 희망했다. "라고 이야기했다. 택배 기사님이 안다며 내가 2번 왔는데 너는 집에 머물지 않았다. 나는 너에게 요금을 받아야 했다.라고 이야기를 했다. 나는 왜 전화를 안 했냐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택배를 안전하게 받은 기쁨에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택배를 갖다 줘서 고맙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냥 기분이 좋은 날이다. 


  나는 남편에게 택배가 온 사진을 전송하며 상담원과 통화를 했다고 자랑을 했다. 물론 한국이었으면 자랑거리는 아니었겠지만 독일에서 콜센터 전화로 하는 건 처음인지라 알아들은 게 나 스스로 좀 뿌듯했다. 

  택배가 테이프로 칭칭 감겨져 있고 한국말이 써있는 상자를 너무 오랫만에 보니 좀 느낌이 이상했다. 이정도 쯤은 이제 나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거에 칭찬해주고 싶다. 

  오늘 콜센터 통화를 하면서 내가 독일어 공부를 왜 열심히 해야하는지 목적이 더 뚜렷해졌다. 오늘은 한국에서 온 택배도 안전하게 받고 이래 저래 기분이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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