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 Dec 02. 2021

독일에서 다시 배우는 자전거

자전거에 진심인 나라 독일

  내가 독일에 오고 나서 처음 배우고 놀란 점들이 정말 많지만 그중에서 나는 모든 독일 사람들이 이렇게 큰 바퀴의 자전거를 타는 것에 다시 한번 놀랐다. 독일은 지난번 글에도 이야기했듯이 자전거도로가 워낙 잘 되어 있고 표시판들에 자전거 표시들이 굉장히 많다.

  독일은 자전거를 탈 때 수신호도 해야 하고 전후방 라이트도 사서 달아야 하고 자전거 음주 주행은 처벌 대상이다. 차와 같은 수준의 이동수단인 것이다. 당연히 자전거 주행 중 핸드폰 사용은 금지이다. 지난번에 독일어 A1단계를 배우는 영상에서 자전거로 역주행했다가 벌금을 무는 장면이 나왔다. 독일은 자전거를 탈 때 신호를 지키지 않아도, 빨간불 신호를 지키지 않아도 인도로 달려도 다 벌금 대상이다. 사실 한국에서 자전거가 온다고 해도 독일에서 자전거를 타는 건 부담으로 느껴졌다.


이렇게 큰 바퀴를 초등학생들이 탄다. 독일은 초등학교부터 자전거 교육이 철저하다.
독일 자전거. 자꾸 보니 예쁘다.

  독일에 오고 나서 남편은 자전거를 한 대 샀다. 독일은 자전거 가격도 상당히 비싼 편이다. 독일 국민 자전거라고 해서 한 대 샀는데 바퀴가 커서 이걸 내가 어떻게 타냐고 내가 한 소리 했다. 그때 남편과 큰 애가 자전거를 사러 갔는데 큰 애는 엄마 이게 제일 바퀴가 작은 거야. 다른 건 더 바퀴가 더 커.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남편은 나에게 평일날 걸어서 마트 가지 말고 이걸 타고 장을 보라고 이야기를 했다. 장도 편하게 보라고 바구니까지 사 왔다. 바구니도 비쌌다. 나는 속으로 이런 배려까지는 필요 없는데.. 생각했다. 이러니 물건을 사러 갈 때는 다 같이 가야 한다.

  나는 독일에 와서 인생은 끝없이 배워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살고 있다. 나는 남편한테 우선 한국에서 자전거 오면 그거 타고 장 보러 다닐 거라고 이야기를 하고 연습을 멀리하고 있었다. 이거 타다가 다리가 찢어질 거 같다고 했다. 사실 안장을 다 내려도 내 다리가 땅에 안 닿았다.

  그러나 내가 이 독일 자전거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둘째가 타던 자전거는 어린이용이라 독일에 올 때 버리고 내가 타던 자전거를 큰 애가 타고 큰애가 타던 거를 둘째가 타기 때문에 내 자전거가 없긴 없다. 한국에서 사 올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 그러나 후회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남편은 장을 볼 때 편하라고 자전거에 달 바구니도 사 왔다. 이런 섬세함까지는 필요 없는데..  인생은 끝없는 배움의 시간인 거 같다.

  지난주 주말에 남편과 아이들과 마인강에 걸어가다 우리가 독일에서 산 자전거랑 똑같은 걸 발견하고 엄청 반가웠다. 그러나 그 자전거의 주인공이 우리 큰애 정도 되는 아이의 것을 알게 된 후 이젠 자전거를 배워야 할 때가 왔구나 하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아... 독일은 정말 바퀴가 큰 자전거를 타는구나. 독일은 초등학교 때부터 자전거 교육을 한다고 했다. 우리 동네만 해도 어린아이들도 자전거를 잘 탄다. 자전거 연습을 해야 하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아니나 다를까 연습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던 찰나 남편의 나에게 독일에서 산 자전거로 연습을 하러 나가자는 것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 소리이다. 나는 평일날 나 혼자 해보겠다고 했지만 운전, 자전거, 운동 등에 진심인 남편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남편은 알려줄 사람이 있는데 왜 혼자 터득하려고 하냐고 같이 하면 더 잘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나는 절대 연습을 안 한다고 했지만 그냥 넘어갈 남편도 아니고 아이들도 보고 있고 할 수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야 하기에 겉옷을 입고 나왔다. 사실 독일이 추워지고 있어 나가기가 싫기도 했다.


내가 한국에서 타던 자전거이다. 이젠 큰 애가 타게 된다.

  

춘전 자전거 여행은 정말 힘들었는데 돌아보니 가족과의 추억 쌓기와 더불어 자전거 실력의 엄청난 향상과 자신감을 갖고 왔다.

  나는 작년에 한국에서 자전거를 남편한테 배웠다. 아이들도 남편한테 2시간 만에 마스터를 하고 주말마다 한강, 공원을 다니며 자전거를 마스터한 후 춘천에 자전거 여행으로 4시간을 달렸다.

  나는 한국에서 작년에 자전거를 배울 때 다리에 멍이 정말 많이 들었다. 처음 배우던 거라 넘어지고 부딪히고 창피함의 연속이었지만 그 과정을 이겨내니 자전거를 잘 타게 되었다. 근데 그 과정을 여기서도 해야 하다니... 짜증이 났지만 그러나 해야 한다. 여기서 나 혼자 바퀴가 작은 걸 타고 다닐 수가 없다. 다행히 몇 번 남편의 자전거 강의로 큰 바퀴 자전거를 타게 되었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마트도 갔다 왔다. 막상 또 큰 자전거를 타니 공기가 달리 느껴지긴 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며 내가 돌아올 때까지 남편과 아이들은 기다려줬다. 가족들의 응원을 받으며 자전거를 타게 될 줄 이야. 하긴 작년에 자전거 배울 때 큰애랑 둘째는 달려오며 옆에서 "우리 엄마 할 수 있다"를 외쳤다. 고마운 딸들이다.

  나는 자전거를 타면 여전히 다리는 땅에 안 닿았지만 그래도 우선 타고 다닐 수 있다는 것에 자신감을 얻었다.

  이젠 독일 자전거 수신호를 완벽하게 숙지 후 마트로 자전거를 타고 달려봐야겠다. 자전거를 타다 벌금을 내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일에서 자전거도로 체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