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이브 날. 독일의 24일은 오후 2시면 상점들이 문을 닫는다. 독일은 오래전 부터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고 마트에서도 12월 초에 트리를 판매하고 집마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창문에 매달아 놓곤 한다. 길을 지나갈 때 예쁘다.
우리는 2시면 닫는 독일 마트를 가기 위해서는 일찍 준비를 하고 나가야 했다. 나는 사실 걸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자전거에 진심인 남편은 아침부터 한국에서 온 자전거 3대를 창고에서 수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자전거 수리를 하는 남편을 보며 속으로 "아. 오늘은 자전거를 타고 나가야겠구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나는 작년에 남편에게 자전거를 배우고 나름 자전거를 마스터했다고 생각했던 터이나 독일에 와서 내 자전거보다 큰 바퀴 달린 자전거를 타는 초등학생들을 보며, 또 독일 자전거 규칙을 알아가면서 자신감을 잃었기 때문에 사실 두 다리로 걸어 다니고 싶었다. 걸어 다니는 게 제일 편하다.
그러나 그럴 남편이 아니다. 남편은 본인 머리도 잘 자르지만 자전거 수리며 웬만한 것들을 잘 고친다. 자전거 바퀴가 잘 돌아가게 기름칠도 다 해놓고 자전거까지 새 것처럼 다 닦아놨다. 남편은 우리에게 얼른 옷을 입고 나가자고 했다. 오늘의 코스는 마트들을 돌며 장을 본 후 강을 한 번 갔다 오자는 것이었다. 나가는 걸 좋아하는 우리 큰 딸은 좋아했지만 나는 사실 좀 두려웠다. 독일은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 있고 도로에도 표시가 되어 있어 안전하다고는 하지만 나는 자전거 바퀴 크기도 그렇고 여러가지 두려운 마음이 컸던 거 같다.
근데 사람이 웃긴 게 지난번 독일에서 산 큰 바퀴 자전거로 연습을 해서 그런지 한국에서 남편이 타던 자전거가 하나도 커 보이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남편 자전거를 탈 때마다 다리가 찢어지는 느낌을 받아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지난번 큰 바퀴로 연습을 하고 나서인지 자전거를 타니 너무 쉬웠다. 처음에는 자전거가 잘 나갔다.
우리는 마트를 돌며 장을 보고 자전거에 짐을 실었다. 한국에서 자전거에 실을 수 있도록 장비들을 사 온 것들이 있었다. 나는 독일에서 자전거를 탈 때 내비게이션을 볼 수 있는 장비도 사 왔다. 남편을 주며 나의 준비성에 혼자 대견했다.
독일은 어디를 가든 자전거를 세울 수 있도록 자전거 거치대가 잘 되어 있다. 우리는 당당히 자전거를 주차하고 각자 자물쇠로 걸어두고 마트로 들어가서 장을 보고 나와 자전거에 물건을 실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로 장을 보러 오는데 독일은 할머니 할아버지도 자전거를 많이 타고 다닌다. 심지어 도로에서 수신호까지 자유자재로 하면서 말이다. 독일에서 자전거는 거의 자동차와 동급이다.
나는 둘째에게 너는 아빠 뒤를 바짝 붙어가라고 했다. 여기서 남편이 제일 자전거를 잘 타며 언어도 잘하기 때문에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남편과 있으면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큰 애는 자전거를 잘 타니 금방 따라가고 내가 맨 뒤에서 따라가겠다고 했다. 한국에서도 거의 이런 구조로 자전거를 탔다. 나는 아직 독일 자전거 도로에서 수신호의 자신감이 없었다. 나는 자전거를 탈 때 손을 꼭 잡고 타는데 독일 사람들은 도로에서 수신호를 자유자재로 한다. 대단하다. 남편도 양 손을 빼고도 자전거를 탈 줄 아니 수신호를 남편이 하고 우리는 따라가기로 했다.
내가 알던 길을 가니 조금 낙오돼도 괜찮았다. 근데 독일 신호등은 짧았다. 걸어다닐 때는 못 느꼈는데 자전거를 타니 너무 짧게 느껴졌다. 내가 그렇게 느끼는 건지 모르겠지만 신호등 신호는 짧고 가벼운 자전거를 타다 무거운 자전거를 타서 그런지 잘 안 나갔다. 나만 계속 꼴찌로 가고 있었다. 신호를 몇 번을 놓치고 나니 결국 나는 낙오되고 길을 잃어버렸다. 당황스러웠다. 남편과 아이들이 좌회전을 했는지 우회전을 알 수가 없어 남편한테 전화를 하고 어디 방향으로 갔다고 하면 그 방향을 따라갔다. 이 자전거와 나와 안 맞았는지 페달을 밟아도 안 나가는 느낌이었다.
이젠 장보러 갈 때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짐 싣는 것도 적응했다.
문제는 크리스마스날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날은 그나마 아는 길이었고 동네에서 탔기 때문에 길을 잃어버려도 따라갈 수 있었지만 크리스마스날 우리는 새로운 길을 시도해봤다. 우리가 자주 가는 공원을 지나 계속 가며 우리 지역을 크게 도는 코스로 잡았다. 우리는 예배를 드리고 출발을 했다.
우리가 알던 길을 지나 공원으로 가는데 문제가 생겼다. 독일 공원에는 큰 반려견들이 많았다. 독일에서는 자유롭게 반려견이 놀 수 있도록 끈을 풀어놓는데 남편과 둘째가 지나가고 나와 큰 애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큰 반려견 두 마리가 우리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잔디에서 노는 큰 반려견들은 우리와 거리가 머니 무섭지 않았지만 우리 앞에 가는 반려견은 사실 좀 무서웠다. 큰 애는 무섭다고 돌아가면 안 되겠냐고 나에게 이야기했고 나는 그냥 지나가자고 이야기를 했다. 독일어를 해야 끈을 묶어달라고 부탁을 하지 말도 못 하고 우리는 천천히 바퀴를 굴리며 갔다. 문제는 뒤에서도 큰 반려견과 산책하는 사람들이 계속 오고 있었다. 돌아갈 수도 없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반려견들이 많으니 돌아가자고 했지만 둘째도 왔는데 그냥 오란다. 심지어 눈까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나랑 큰 애가 선택한 방법은 그냥 천천히 가자는 것이었다. 다행히 우리가 자신들의 반려견들이 무서워서 못 오는지 나중에 안 주인이 끈을 묶어 주었다. 나는 너무 고맙다고 인사를 크게 하고 빠르게 지나왔다.
이 짧은 길을 나와 큰 애는 오랜 시간 걸쳐 왔다. 독일의 반려견들에 적응 중이다.
그러나 우리가 공원 길을 빠져나오자 도로가 나왔다. 우리 앞에 신호등과 자동차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독일은 도로에서 자전거를 탈 때 핸드폰을 하면 벌금이 있기 때문에 핸드폰 사용이 금지된다. 나같이 두 손을 잡고 타야 되는 사람의 경우 핸드폰 사용은 생각도 하지 못한다.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찍어보고 싶었으나 벌금을 낼까 긴장한 채 앞만 보고 달렸다.
문제는 남편의 자전거가 너무 빠르고 무조건 아빠를 따라가라고 한 내 말을 잘 들은 둘째는 열심히 페달을 밟았고 큰 애는 자전거 때문에 뒤쳐지는 나를 걱정한다고 계속 뒤를 돌아보며 자전거를 탔다. 나는 큰 애에게 엄마는 핸드폰이 있으니 길을 잃어도 갈 수 있으니 너도 아빠를 따라가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또 나는 낙오가 되었다. 직진인지 우회전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신호는 왜 이리 짧은지 나만 느끼는 건지.. 다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남편은 이제 알아서 와야 한다고 했다. 구글 지도를 켜고 오란다. 집으로 가는 방향을 구글 지도를 켜고 출발했다. 한참을 페달을 밟고 가는데 저 멀리 남편과 아이들의 손짓이 보였다. 진짜 눈이 내리는 날 눈물인지 내리는 눈인지 얼굴을 땀범벅이었다. 큰 애랑 둘째는 내가 교통사고가 난 줄 알고 기도를 했단다. 사실 길을 잃어버리고 자전거도 자전거도로에서 타야 하니 조금 무서웠다. 그리고 눈이 계속 내려 길도 미끄러웠다. 나는 독일 와서 자전거를 탈 때 자전거 헬멧도 아주 열심히 쓰고 있다. 혹여 넘어졌을 때 머리는 다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기다린 남편과 아이들을 만나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왔다. 나는 남편에게 내 자전거가 아무리 페달을 밟아도 나가지 않는 느낌이라 느렸다고 이야기를 했다. 남편은 자기가 생각해도 내가 자전거를 잘 탔는데 왜 이리 못 따라오나 싶었단다. 다시 고쳐주겠다고 했다. 한국에서 잘 나가던 자전거도 적응 중인지 왜 안 나간 건지 내가 못 탄 건지...
나는 독일에서 한국에서 갖고 온 자전거를 타며 신나게 달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긴장이 많이 되었다. 자전거의 새로운 규칙들도 알아야 하고 독일의 큰 반려견들과 자전거 도로에 익숙해져야 할 거 같다. 근데 이 와중에 남편과 큰 애는 워낙 자전거를 잘 탔지만 둘째가 언제 컸는지 자전거를 조금 타면 힘들다고 했었는데 어느새 커서 남편의 속도를 따라 질주하는 걸 보고 대견스러웠다.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크는 거 같다.
앞으론 주말마다 나가서 자전거를 타봐야겠다. 그래야 독일 자전거도로에도 익숙해지고 수신호도 익숙해질 거 같다. 아이들이 성장하고 배우는 속도를 따라갈 순 없지만 어느 정도 발은 맞춰야 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