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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야 May 20. 2024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심코 내뱉는 ‘죽고 싶다.’는 말이 난 너무나 이상하게 들렸다.

세상에 하고 싶은 게 없어서 죽고 싶다는 말인가. ‘죽고 싶다.’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기 싫다.’

즉, ‘살기 싫다.’가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아니, ‘이렇게 살고 싶진 않아.’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몇 달에 걸쳐 오십견을 치료하고 나니, 이번엔 허리 디스크가 찾아왔다. 의자에 앉았다가 일어날 때마다 허리에 통증이 있어 ‘아야야!’ 소리가 절로 나왔다. 엉거주춤 그렇게 겨우 일어나는데 한 10초의 시간이 지나갔다. 마음이 급해 허리를 다 펴지 못한 채 걷는다. 그렇게 한 다섯 보를 떼고 나서야 허리가 다 펴졌다. 학생들은 평소와 다른 내 모습이 낯선 듯,      


“선생님 왜 그래요?”

    

하고 묻는다. 몇 해를 같이 보낸 아이들.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해도 나 학생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창피했다.      


“죽을 때가 됐나 보다.”     


“에이. 말도 안 돼.”     


심각한 허리 상태를 외면한 채 우스갯소리로 상황을 넘기며, 병원에 갈 여력도 없이 또 한 해의 입시를 치러냈다.

몸과 마음 모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계속 이대로 살다가는 아니, 버티다간 나조차 언제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아이는 아직 중학생이다. 적어도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살아있어야 한다. 나 살고 싶어서 과감히 교습소 문을 닫기로 했다.

아이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이 먼저였는지, 이렇게 힘든 순간에도 내가 삶을 포기하지 못해 아이를 핑계 대고 있는 건지 나 자신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수중에는 1년 치 정도의 생활비밖에 없었다.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짐을 줄이고, 집값이 비교적 싼 구도심으로 이사를 했다.      

1년은 살 수 있다. 어차피 내린 선택이라면 1년은 살고 싶은 대로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10년 간 접어 두었던 소설 원고를 다시 펼쳐 들었다.





이혼 후, 난 드라마 작가가 되기 위해 시나리오 작가 교육원에서 열심히 공부했었다. 당시 난 삶에서 일과 사랑 중에 하나는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이혼이란 사랑에 실패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니, 어린 시절부터 꼭 하고 싶은 일에서 성공해서 남은 인생을 살아보자고 굳게 결심했다. 믿을만한 분께 아이를 맡기고, 일주일에 두 번씩 서울을 오가며 공부했다. 오가는 동안엔 글을 어떻게 써야 하나 생각에 잠겼고, 춘천으로 돌아와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와 놀다가 아이가 잠들면 생각이 날아갈 새라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 후, 드라마 제작사에서 일하며 기대주란 평을 듣기도 했지만, 드라마 작가란 어린아이를 키우며 할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드라마 제작사에서 원고를 쓰는 일을 그만두고, 춘천에서 과외 교습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실은 그때부터였다. 항우울제와 함께 살기 시작한 것이.      

나이를 점점 먹어 가니, 이제 드라마 작가란 꿈은 포기해야 했다. 그래도 글쓰기는 멈출 수가 없어 혼자서 조금씩 소설을 써 나갔지만, 수업하고, 아이를 돌보고 나면 나만의 시간이란 건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게으른 탓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소설을 쓰자 마음먹었다. 그러면서도 난, 나 자신이 진짜 글을 쓰고 싶은 건지, 그저 돈 버는 일에서 자유롭고 싶은 명분을 찾는 건지 스스로도 헷갈렸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우연히, 정말 기적처럼 우연히 한 출판사의 편집장을 알게 되었다. 서로 뭘 하고 사는 사람인지 얘기하다가 그에게 원고를 보여 주게 되었고 출간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드디어 내 책을 내게 되었다. 그렇게 소망하던 작가라는 이름을 얻는다.

‘그래. 이젠 내 인생에도 먹구름이 걷히고 햇빛 쨍쨍한 날이 찾아오는 거야.’

새 희망에 기운이 났다.  


이젠 계속 행복한 날들만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인생은 늘 그랬다. 행복한 순간은 스치듯 지나가 버리고, 고통의 순간은 긴 후유증을 남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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