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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바랜 개살구 May 13. 2024

남겨진 자의 아픔


왼쪽 어깨가 점점 뻣뻣해지더니, 팔을 위로 들려고 하면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다. 병원에 갔더니 복잡한 병명을 말하는데, 쉽게 말해 오십견이라는. 내 나이 아직 40대 초반이었다. 오십견이라니.

몸에 통증이 항상 따라다니니 신경이 더 예민해지고 수업하는 게 점점 더 버거웠다.   


        



당시 TV에서는 배드파마가 큰 이슈가 되고 있었다. 양육비를 안 주는 나쁜 부모들이라는 배드파마.

이혼 후 4년 동안은 아이 아빠에게 양육비를 넉넉하게 받았지만, 그 후로는 받지 않았다.

내가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 또한 힘들게 버는 돈인데, 절반을 가져다 쓰는 게 왠지 양심에서 꺼려졌다. 그렇게 사는 이상 나는 계속 그의 상징적인 아내로 있으면서, 새로운 연애도 못하고 살아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양육비를 받지 않으니, 돈 벌고 애 보느라 시간이 없어서 연애를 못 한다. 늘 짧은 썸은 긴 후유증을 남기며 외로움만 더욱 커져 갔다.


지나고 생각하니 내 생에 가장 자유롭고 행복했던 시간이 그때였다. 양육비를 받을 때.

세상을 살아가며 겪는 문제의 팔 할은 돈이 원인인 것 같다.


양육비를 받는 것은 당연한 법적 권리이거늘 그걸 받으면서 마음 한편이 불편했던,

모자라게 양심적이었던 나를 뒤늦게 자책해 봐야 소용없다.


아이는 이제 중학생이 되어 점점 돈 들어갈 일만 남았는데, 난 이제 양육비를 청구할 데도 없는 신세가 되었다. 내 신세가 한탄스러워 웃음이 나왔다.   


        



해가 바뀌면서 친구는 신년 운세를 보러 가자고 했다.

별생각 없이 따라나섰다. 크게 바라는 것도 없던 때였다. 그저 아프지나 말았으면…….


중2가 된 아들은 늘 중2다운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나 그래도 학생들 입시 성과가 꽤 좋은 과외 선생인데, 아들 성적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명문대 가면 뭐 할 것인가 죽어버리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하는 마음이었다.           





스님은 나를 보더니, 화들짝 놀라며 저승으로 가지 못한 영혼이 내 곁에 머문다고 천도재를 지내 영혼을 저승으로 보내주어야 한다고 했다. 오십견의 증상도 다 붙어 있는 영혼 때문이라고.

불교 신자들은 당연히 여기며 지내는 천도재인데, 난 불교 신자가 아니었기에 천도재라는 걸 그때 처음 들었다. 그럼에도 스님의 말이 믿어졌다.


“그런데요. 스님. 제가 그 사람한테 할 만큼 한 것 같은데요. 아직도 저를 원망하는 건가요? 제가 지금까지 겪은 일들을 봤다면 저 원망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영혼은 원한이 아니라 가장 미련이 남는 곳에서 곁을 맴돈다고 스님은 말하신다.


“할게요. 천도재.”


다음 날로 약속을 잡았다.

돌아오는 길에 친구는 나보다 더 안절부절못했다.


“일이 너무 커진 거 아냐?”


천도재를 지내야 영혼도 나도 편안해진다는데 까짓 거 못할 게 무어란 말인가.

친구가 걱정하는 것도 삼백만 원이라는 돈 때문이다.

다음 날 천도재를 지냈다. 잠깐은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같았지만, 난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기에 그 효과를 크게 나타나진 않았다.



오십견은 그 후로도 몇 달간 병원에 다니며 뼈 주사를 맞고서야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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