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은 아이의 반항을 감당 못하는 중학생 학부모들의 하소연을 들어줘야 한다.
얘기 중에 엄마들은‘아빠한테는 말을 못 했어요.’ 하기도 하고, ‘아빠가 워낙 완강해서.’라고 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일들은 사소한 것들이며, 내 앞에선 착하기만 한 학생이 엄마에게 무례하게 군다는 게 상상이 안 될 때도 있었다.
결론은 아이가 선생님 말씀은 들으니까, 잘 타일러 달라는 요청이었다.
“네. 제가 잘 타일러 보겠습니다.”
라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애 하나를 부모 둘이 어쩌지 못하고 패대기를 치는구나.’라고 비웃기도 했다.
우리 아이에겐 사춘기가 영원히 안 올 것처럼!
4학년 때까지 학교 가는 게 너무 즐겁다고 말하던 아이가 5학년이 되자 세상에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고 게임에 빠지며, 방문을 걸어 잠그기 시작했다. 아이의 표정만 봐도 뭘 어찌해야 하나 감당이 안 됐다. 그러면서도 나는 아이의 변화보다 입시생들 성적에 더 신경 쓰고 있었다.
6학년 어느 날, 최소한의 해야 할 일도 미루면서 게임에 빠져있는 아이를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일주일간 게임 금지 명령’을 내렸다.
아이도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했는지 쉽게 수긍했지만, 나 몰래 PC방에 갔다가 학원에 갈 시간이 30분이 지나서야 집에 들어왔다.
"너 게임 금지가 무슨 뜻인지 몰라?
나가! 너같이 말 안 드는 아들은 필요 없어!"
라고 말해버렸다. 아이는 제 잘못을 아는지 죄인 같은 표정으로 급하게 태권도복으로 갈아입고 뛰어나갔다.
입시생이 많아서 가뜩이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아이가 이제 슬슬 꼼수를 쓰며 엄마를 속일 생각을 했다는 게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그런데 막상 아이가 나가고 나니, 저녁도 안 먹고 어찌 운동을 하려나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는 학원이 끝날 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30분쯤 더 기다리다가 학원에 전화해 보니, 아이가 오늘 학원에 오지 않았다고 한다.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이가 갈만한 곳을 여기저기 수소문하다가 아이가 있는 곳을 찾았다.
어린 시절 돌보아주던 아주머니 댁에 가 있었다. 초등학교와 우리 집 사이에 아주머니 댁이 있었다. 아이도 아주머니, 아저씨와 정이 깊이 들었는지, 1학년 때는 하교 후, 그 집에 들러 눈도장을 찍고 집으로 오는 식이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그 빈도는 점점 줄어들었지만, 그 집에 종종 놀러 갔고, 고학년이 되어서는 아저씨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캠핑을 가기도 했었다.
아주머니는 저녁에 찾아온 아이를 보고, 그냥 놀러 온 줄로만 알고 계셨다. 학원을 빠지고 그 집에 가서 저녁 잘 얻어먹고 있는 아이를 나 혼자 발 동동 구르며 걱정했던 거다.
아주머니께 오늘은 혼나고 나간 거라고 아이를 집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그러나 아이는 밤 열 시가 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수업이 다 끝나고 아이를 데리러 갔다. 내가 데리러 갔는데도 아이는 집에 가지 않겠다고 10분 이상을 버틴다.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주머니가 아이를 달래서 겨우 밖으로 나왔다.
아이의 차에 오르고도 내내 씩씩거렸다. 아이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본다. 저도 엄마와 제대로 한 판 붙어보겠다는 작정을 한 모양이다.
집으로 오는 동안 서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난 이제 화가 나는 게 아니라 겁이 났다.
집을 나가라고 한 건 내가 잘못했지만, 나 여기서 밀리면 곧 중학생이 되는 아이의 씩씩대는 표정과 반항에 3년을, 아니 계속 끌려다니게 될지도 모른다.
집으로 오는 동안,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전복시켜야 하나 고민했다.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오는 동안에도 아이는 계속 씩씩대고 있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이에게 책상 잡고 엎드리게 했다. 그리고 효자손으로 있는 힘껏 아이의 엉덩이를 때렸다.
다섯 대를 맞고 난 아이는 앓는 소리를 하며 이제 그만 때리라는 신호를 보낸다.
"똑바로 대.”
난 아이의 신호를 무시하고, 엘리베이터에서 작정한 열 대를 채웠다.
"너, 엄마가 나오라는데 왜 안 나와?"
"아니, 큰엄마가 내 무릎 위에 앉아서.”
아이는 좀 전의 반항의 기색은 사라지고, 엉뚱한 변명을 했다.
매 앞에 장사 없다.
이 상황을 뒤집어 보겠다고 생각해 낸 게, 겨우 매를 드는 것이었다. 그런 나도 한심하긴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엄마가 나가라고 한 말이 화가 났다고 하고, 난 진짜 나가라는 뜻이 아니라 약속을 어긴 네 모습에 실망해서 실언한 거라고 아이에게 사과했다.
상황이 이렇게 마무리되고 나니, 아이가 엄마에게 혼나고 찾아갈 곳이 있었다는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주변에 외할머니와 이모가 살고 있는데, 그곳으로 가지 않고 아주머니 댁으로 간 것은 좀 씁쓸했다.
내가 속상할 때 나를 따뜻하게 안아줄 사람으로 아이는 외할머니가 아닌 아주머니를 떠올린 거다. 그런 아이의 마음이 이해되어 더 씁쓸했다.
다음 날 사건이 해결된 걸 알고, 아주머니는 아이에게 엄마한테 쫓겨나면 또 오라고 농담 섞어 말을 했다. (이런 일은 고2 때 한 번 더 있었다.)
그리고는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이제 곧 중학생이 되는 아이.
이제 키가 나만한 아이.
계속 크고 있는 아이.
이제 나보다 힘이 더 센 아이를
내가 지금처럼 잘 키울 수 있을까.
중학생이 되면, 학원비도 훨씬 많이 들 텐데,
아들을 혼자서 키운다는 게 물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점점 힘에 부친다.
아이 아빠에게 도움을 청해볼까 하는 고민이 되었다.
아이 아빠가 수학 강사인데, 중학생이 되면 수학 학원도 돈을 내고 보내야 하는 상황에도 자조 섞인 웃음이 나왔다.
혼자서 잘 키울 수 있다고 큰소리쳤던 터라, 아직은 자존심이 남았는지 하루하루 고민만 하며,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11월 입시생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한숨 돌리던 참인데, 낯선 남자가 내게 전화를 해서 아들을 찾았다.
불길한 예감이 몰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