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을 받은 어린잎들이 너도 나도 뽐을 내듯 반짝이는 신록의 계절, 매년 초여름에는 대한 수학회에서 주최하는 수학 올림피아드 1차 시험이 열린다.
과학고나 영재고를 준비하는 아이들은 연례행사처럼 KMO―수학 올림피아드―에 응시해서 그동안 쌓아온 실력을 평가받는다.
지금은 사교육의 과열 때문에 폐지되었지만 나무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즈음만 하더라도 KMO의 수상은 특목고 진학에 가장 중요한 실적이 되었다.
KMO를 보는 날, 고사장으로 지정된 학교에 도착하면 누구나 그날의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시험을 보는 아이들 모두가 레드카펫 위를 행진하는 주인공이 된 느낌이랄까.
차에서 내려 고사장으로 향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어른들의 시선은 아이들에 대한 각별한 호기심으로 아이들의 동선에 따라 섬세하게 움직이고 있고 아이들의 표정 또한 본인들이 미래의 주인공이 될 거라는 걸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자긍심으로 가볍게 들떠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경시대회를 신나는 이벤트로 생각하는 나무도 중학교 1학년의 나이에 중학교 과정도 채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수학 올림피아드를 보았다.
그런데 잊지 못할 에피소드로는 인터넷으로 접수하는데 신청서의 필수 기재사항에 재학 중인 학교를 입력해야 하는 칸이 있었다.
홈스쿨링을 하고 있는 나무는 반드시 입력해야 하는 필수기재 사항을 채울 수 없었다.
선은 대한 수학회에 전화를 걸었다.
“홈스쿨링을 하는데 KMO 신청서에 재학 중인 학교를 쓰는 곳만 있어서요. 홈스쿨링을 하는 학생은 접수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문의드리려고 전화드렸습니다.”
“아! 예…… 한 시간쯤 후에, 다시 접속해 보시겠어요? 저희가 다시 만들어서 올려드릴게요. 안 되면 다시 전화 주세요!”
담당자는 친절하게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이) 긍정적인 답변을 주었다.
한 시간 후에 나무가 다시 접속했을 때, 홈스쿨링도 접수할 수 있도록 서식이 바뀌어 있었다.
선은 두 가지의 측면에서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첫 번째, 홈스쿨링에 대한 열린 마음이었다.
교육계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홈스쿨링을 교육에 대한 새로운 시도로 받아들이고 따뜻하게 지지해 주는 분위기였다(그런 면에서 존경할 만큼의 열린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선은 홈스쿨링을 하면서 줄곧 교육과 관련된 그룹은 달라도 뭔가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수용성에 차이가 있었다. 수용성의 차이란 생각의 차이가 아닐까.
그 생각의 차이만큼 사회의 변화를 생산해내고 있는 것 같았다.
또 전화를 받으시는 분의 친절한 응대와 일에 대한 열정은 나무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었다.
두 번째는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개척에 대한 성취감이었다.
홈스쿨러는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기존에 있던 방식을 부수고,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수학 올림피아드 시험의 접수 경험처럼, 그 과정을 자연스럽게 겪은 나무는 새로운 시도를 당연하고 익숙하게 받아들였다.
이렇듯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치도 홈스쿨링 과정에서 얻어진 나무의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무가 말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조사를 하고 여러 경우의 수에 대비해 리스크를 체크하고 도전하면 실패가 없는데, 사람들은 이런저런 생각도 하지 않고 무조건 자기 방식대로 생각하다 안 되면, 주변 환경이 자기 생각대로 세팅될 때까지 기다리니까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더라!”
그리고 시키는 일만 잘하면 그건 B급밖에 안 된다고,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무가 능동적이고, 매사, 치밀한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은 홈스쿨링의 특별한 경험에서 얻어진 효과가 아닐까, 하고 선은 생각했다.
중학교 1학년 나이에 본 KMO 1차의 결과는 장려상이었다.
그리고 그다음 해 본 결과는 전국 동상이었다.
사교육을 받지 않은 나무의 성과는 칭찬할만한 것이었다.
선은 나무가 3학년의 나이가 되었을 때, KMO가 시작되기 전, 우연히 인터넷에서 대치동의 KMO 전문 강사가 운영하는 카페에 들어갔다.
그 강사는 본인이 직접 강의하는 KMO 준비과정 문제를 복사해서 판매한다고 카페에 올렸다.
선은 8만 원을 입금하고 문제집을 구입했다.
나무는 그 문제집을 풀고 KMO 1차 시험을 보았다.
결과는 금상이었다. 그것도 전국 5등 안에 드는 점수였다.
선은 사교육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KMO 2차를 준비하면서 대치동? 사교육?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지만 경제적인 부담도 있고, 이렇게 해서 얻어진 실적이 과연 나무의 인생에 어떤 도움을 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게 온전한 내 실력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것은 공부의 문제뿐 아니라, 삶의 문제까지 연결되는 것이었다.
삶에서 어떤 문제에 부딪쳤을 때, 적극적으로 풀어가려는 의지보다 더 쉬운 방법을 찾으려고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교육에 의해 부풀어진 실력과 온전히 내 것이 아닌 타이틀을 가지고 사는 삶은 분열적인 삶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부모가 만들어준 허상의 왕관일 뿐이었다.
공부는 결국 혼자 하는 게 아닌가.
인생도 결국 혼자 가는 게 아닌가.
지금까지 잘해왔는데, 이제 와서 실적을 위해 사교육을 받는 게 과연 나무의 성장에 옳은 일인지 신중하게 생각해 볼 일이었다.
(선은 대형 프랜차이즈 영어학원에서 하는 특목고 입시 설명회에 간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는 유명 외고의 교무부장이 와서, 외고 입시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유명 외고의 교무부장이 학원 입시 설명회에 따라다니다니! 역겨웠다. 교육의 순결성을 훼손시키는 거 같았다. 그들은 학부모들의 교육열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선은 그 자리에서 뛰쳐나왔다.)
나무는 1차에서 금상을 탄 자격으로 간 KMO 여름캠프에서 친구들을 사귀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2차에서는 동상에 그쳐 KMO 겨울 캠프에는 참가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