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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야 Jul 02. 2021

단편 영화 <해미를 찾아서>

협소한 공간을 통해 건드리는 보편의 윤리

<해미를 찾아서>

2019, 허지은, 정경호 감독


현재 이 작품은 영화 플렛폼 '퍼플레이'를 통해 보실 수 있으며 링크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s://purplay.co.kr/service/detail.php?id=193






정경호와 허지은의 작품이다. 두 사람의 전작인 <오늘의 자리>(2017)나 <신기록>(2018)처럼 특정 상황에서 약자의 자리에 설 수밖에 없는 여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이야기의 태도는 눈에 띄게 변했다.(변하고 있다는 편이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가장 표면적으로는 ‘헨드헬드 샷’과 ‘클로즈업 샷’들일 테지만, 이야기적인 측면에서도 드러난다. <오늘의 자리> 속 희망을 가진 인물은 눈앞의 벽을 마주하며 무기력하게 침잠하고, <신기록>의 불안한 인물은 위태로운 자리에 선 누군가의 모습으로부터 형성된 일종의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감각적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해미를 찾아서>는 좀 더 적극적일 텐데, 재회(再會)한 선아(임예은)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숨기거나 자책하지 않고, 더 나아가 약자를 보는 윤리적 시선에 대한 질문마저 던진다.




다가가고 흔들리는 카메라     


시작부터 흥미로우면서도 우려가 된 것은 이 작품이, 정확히는 허지은과 정경호가 헨드헬드를 선택했다는 점일 것이다. 전작들과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간 해온 이야기 그리고 화면의 색감과 함께 ‘흔들리는 카메라’는 인물이 처한 갈등과 감정을 좀 더 효과적으로 보여주거나 반대로 오히려 과잉된 상태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리라. 게다가 클로즈업 역시 그렇다. 상황을 설명할만한 장소의 특색이나 소품의 활용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대화나 주인공의 클로즈업만으로 갈등의 한가운데, 또는 중심에 놓인 인물을 짧은, 게다가 단편이라 더 짧은 시간 안에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것은 분명 고려할 점이 많았을 과감한 선택이다.

출처 - Indieground


망원 렌즈를 사용한 클로즈업들을 통해 선아를 주변 인물들로부터 차단하는 것은 분명 흥미로운 연출이다. 좁은 공간 안에서 카메라는 계속 움직이지만, 선아를 포함한 두 사람이 화면에 담기는 경우 초점을 조절해 선아와 다른 인물(민주(이태경)나 연지(한선화) 등)과의 거리를 표현하고, 혹여 카메라로부터 두 사람의 거리가 같더라도 인물을 구도의 양옆에 배치하며 두 사람의 내적 거리를 표현한다. 이는 컴퓨터 앞에서 붙어 있거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민주와 연지의 모습을 통해 좀 더 확실한 차이를 드러내기도 한다.

출처 - Indieground


그리고 동시에 또 다른 우려가 있다. 이런 카메라의 움직임과 거리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다르덴’ 형제의 연출이라는 사실인데, 개인의 특정한 상황과 감정이 담긴 상황 속에서 주변을 물음표로 채운 뒤 진행하는 이야기와 함께 그 공간을 하나씩 설명하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게다가 복도에 선 선아의 모습을 뒷모습부터 보여주는 것 역시 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결국 개인의 감정에서 시작한 이야기를 어떻게 설득하고 유효한 질문을 덜질 것인가가 핵심이 될 텐데, 결론적으로 <해미를 찾아서>는 단편이라는 형식 속에서 그것을 기대 이상으로 해낸 것처럼 보이며, 그 공은 단순히 헨드헬드와 클로즈업에만 있지 않다.

출처 - Indieground

미장센과 윤리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물리적인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아무도 누군지 모르는 ‘해미’가 쓴 글이다. 그만큼 이 이야기에서 문자의 힘이 중요할 것이고,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들이 바로 동아리 방 벽에 붙은 대자보나 문구들 그리고 그림 등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많이 배치한 미술 요소들, 즉 미장센들을 이 작품은 의도적으로 숨긴다. 정확히는 선아가 카메라에 담기는 순간에 그렇다. 물론 이는 앞서 말한 것처럼 인물 뒤에 있는 요소들이 흐릿한 건 망원 렌즈로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아와 함께 벽면을 가득 채워진 미장센들을 정확히 보여주는 순간은, 뭔가를 알아내기 위해 동아리를 방문한 (듯한)선아의 ‘시점 샷’뿐, 선아가 담긴 거의 모든 컷에서 뒤로 보이는 것들은 존재만 알릴 뿐 정체성을 갖지 않는다.(즉, 이것이 망원 렌즈를 사용한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른다.)


앞서 표현한 것처럼 이것은 물음표들과 같다. 미장센을 통해 의도치 않은 메시지를 가리는 것이도 의도가 될 수 있고, 마지막의 반전을 좀 더 효과적으로 표현하려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동아리 방에 찾아간 선아의 감정은 헨드헬드나 클로즈업을 통해 팽창하지만, 그녀의 생각이나 의도는 차단된다. 그리고 이것은 더 나아가 그녀에 대한 ‘우리의 추측’을 막는 하나의 방법으로도 보인다.

출처 - Indieground


이 이야기에서 선아는 피해자이다. 어떤 것도 그 사실을 부각시키거나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 그리고 <해미를 찾아서>는 그럴 가능성이 있는 모든 것들을 차단한다. 덕분에 자신을 해미라 소개하는 선아의 모습 자체와, ‘피해자다움’ 등과 같은 부정적인 사회적 시선의 존재를 연결지으며 한 인물의 변화와 방향을 제시한다. 결국 헨드헬드나 클로즈업과 같은 이 작품 속 기술적(으로 보이는) 선택은 작품의 의도를 미학적으로 설득하려는 연출로서 가치를 갖는다.


‘아홉 번째 해미’ 선아는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가 민주, 연지와 재회하고 마침내 한 화면 안에 담긴다. 이때 역시 선아를 제외한 두 사람의 초점이 나가 있지만, 이 작품 속에서 세 사람이 한 화면에 들어온 시간 중 가장 길게 담기며 ‘거리’가 아닌 또 다른 관계의 시작을 알린다. (이는 <신기록>의 마지막 장면이 보여줬던 일종의 ‘연대’로도 작용한다.)

출처 - Indieground





결국 허지은과 정경호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다뤄온 거장의 시선을 자신들의 이야기 속으로 옮겨 오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어느 시점부터 과용된 ‘윤리의 카메라’라는 단어는 설득보다는 설명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아 설득력이 떨어지지만, <해미를 찾아서>의 카메라는 윤리라는 단어를 납득시키며 질문을 던지는 순간에 도달한다.


허지은과 정경호라는 작가이자 연출가로부터 마주한 거장의 실루엣이 부디 착각이 아니길.

출처 - Indieground





위에 언급한 허지은, 정경호 감독의 전작 <오늘의 자리>와 <신기록>에 대한 글의 링크입니다.


<오늘의 자리>

https://brunch.co.kr/@ssklsypen/8

<신기록>

https://brunch.co.kr/@ssklsypen/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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