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가 새집으로 가는 이삿짐에 따라왔다. 아침마다 싱크대에 새끼들이 오글거린다. 이놈들은 아무리 작은 틈새라도 이동 통로가 되고, 발에 빨판이라도 달린 듯 벽이며 천정을 기어오른다. 개수대를 따라 구정물 속도 헤엄쳐 가고, 언제 어디서나 민첩하게 숨어버리는 재주가 있다.
그 종족의 진화는 놀랍다. 훼손된 신체를 재생하는 능력자이다. 몸속에 독성물질을 해독하는 유전자까지 갖추고 있다. 인간이 신개발한 살충제에 대한 내성도 빠르게 키워서 각종 살충제를 먹이로 삼는다.
살충제를 이긴 것도 혀를 내두를 일이지만, 해괴하게 번식한다. 곤충이면서 번데기도 없는 불완전 변태의 신속한 발육에 암컷만으로도 번식할 수 있다. 지독한 인간과 동고동락 해온 이유를 알 것 같다. 전문가에게 박멸을 의뢰할까 생각하다가 엄마에게 물었다.
“네 올케는 보이는 족족 없앴더니 사라졌다고 하더라.”
이후 나도 보이는 족족 그렇게 해 보았는데 새끼들의 출현은 여전했다. 짧게나마 비행 가능한 날개가 있고,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먹어 치우는 식성에, 어둠에도 익숙하다고 하니 밤이면 부엌이 제집인 듯 더 활개를 치며 다닐 것 같다. 수십 가지 세균을 달고 이 그릇 저 그릇 옮겨 다닌다고 생각하니 괘씸하다.
어느 날 문득 ‘먹잇감이 없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내 배가 몹시 고팠던 날이었든지, 식량이 부족해서 죽어가는 아프리카 난민들을 화면에서 본 뒤였을 게다. 음식물 찌꺼기를 먹고사는 바퀴벌레가 생각난 것은.
매일 밤, 음식물 찌꺼기의 미립자조차 없애버릴 심사로 개수대를 깨끗이 소독했다. 매일 싱크대 아래 살림살이를 이쪽 칸에서 저쪽 칸으로 옮겼다. 매일 놈들이 숨을 만한 곳을 시끄럽게 뒤적거렸다. ‘새끼를 보이는 족족 눌러 죽였다. 수돗물에 빠뜨려 죽였다. 신문으로 내리쳐서 때려죽였다. 굶겨 죽였다.’라고 상상한 것도 큰 죄가 될까.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살생까지도 경계하여, 뜨거운 물조차 함부로 개수대로 흘려보내지 않는다는 한 스님의 말이 생각나서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너무 지독하게 못살게 굴어서인지 어느 날부터 싱크대에 더는 출연하지 않았다. 종족 보존의 위기감을 느끼고 다른 곳으로 이주했나 보다. 여하튼 부엌에는 더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그들의 생태에 절대 적합한 사람이 아닌 모양이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밤에 자는데 얼굴이 근질거렸다. 나도 모르게 얼굴로 손이 갔다. 무언가 있었다. 복수인가. 소름 치며 몸에 붙은 모기를 때려죽이듯 얼굴을 쳤다. 잠결에 문질렀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침대에 산산조각 찢어진 녀석의 사체가 있었다.
원래 아지트가 이곳이었나 보았다. 침실 매트리스 사이에 바퀴벌레 퇴치기를 놓았다. 먹이로 유인해서 물고 가면 다른 놈까지 죽게 한다는 특제품이다. 놈들의 이동 경로는 일정하다고 하니 침실 출입은 하루 이틀 사이가 아니었으리라.
어느 날, 퇴치기를 열어 보았더니 여왕인 듯 덩치 큰 놈이 새끼들을 한 몇십 마리쯤 꽁지에 줄줄이 매달고 버둥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밤마다 스멀거리는 공포가 없지 않았다. 끈끈이에 붙어서 사족을 못 쓰는 놈과 오물대는 새끼를 진저리 치며 바라보았다.
혹시 그냥 버리면 살아날지 모르니 종이를 접어 꼭꼭 눌러 압사시켜야 할 것만 같았다. 바퀴벌레와의 전쟁에서 “인간은 이길 수가 없다”라고 했던가. 야릇한 승리감이 스쳤다. 우리 집에서 바퀴벌레를 박멸했다. 내가 몇 억 년을 이어오는 바퀴벌레보다 잔인한가.
바퀴벌레는 심장이 없다. 뇌나 식도 등 중요 부위는 사람과 비슷하다는데 말이다. 마음도 없고 생각도 없을까. 따뜻한 심장이 없는 그들과 오순도순 살아갈 방법은 없을까.
인류가 나타나기 전인 기원전 4억 5천만 년 전에 출현하여, 공룡이 멸종했던 빙하기에도 위기를 넘기고 살아남은 놈이라고 했다.*
(아파트는 자체 소독합니다. 아주 오래 전에 썼던 글, 옛날집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