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주변에서 이혼 이야기를 들었다. 조금 놀랐지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평소 원만해 보여서 이유가 궁금했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그들의 지난 모습을 테이프 감아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한집에서 오래 함께 살다 보면 서로에게 너무 익숙해서, 원만하고 원만하지 않고의 경계가 없다. 경계란 바둑알처럼 흑백이 분명한 것일텐데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그 사이는 너무 익숙해서 그 날카로운 것이라고는 없다. 어떤 땐 오히려 벽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느낄 정도다.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주는.
사랑이 있고 없고의 문제였을까? 사랑. 그 말 자체가 낯설고 어떤 땐 내게도 있었던가 싶다. 그것이 무슨 감정인 지조차 잊고 익숙하게 살고 있다. 사랑은 매일 먹으며 만지는 밥그릇과 숟가락 같다. 그 테두리를 깬다는 것은 무언가 지진과 같은 스파크가 일지 않고는 쉽지 않은 결정.
머릿속에 온갖 단어들이 지나간다. 배신, 폭력, 성격 차, 권태, 개성 등등. 딱히 어떤 한 단어를 꺼내 놓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어디론가 시원한 곳으로 보내고 싶다. ‘정말 원만해 보였는데... ’
‘적과의 동침’이라는 영화에서 주인공 로라는 완벽주의자 남편 마틴에게 고통당한다. 마틴은 돈 많은 미남인데 결벽증과 의처증이 있다. 한마디로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이다. 표제인 적과의 동침이 상징하듯이 19금이지만 내용은 그저 그런 스토리를 비빈 것이다. 그런데 배경음악이 기가 막히게 자극적이다.
이 특별날 것 없는 내용에 음악은 당겨진 활시위와 같은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주인공 로라가 폭력을 당하는 장면에서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이 깔린다. 이 곡은 짝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는 작곡가의 고뇌와 격정을 주제별로 엮은 것이다. 나는 취향 상, 마음 편히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좋아해서 푹 빠져들 정도로 좋은 줄 모르겠는데, 전문가나 지독한 실연의 아픔을 겪어본 남자라면 이 음악에 깊이 공감할지 모르겠다. 그는 미칠 듯한 비애와 버림받은 듯한 소외감 속에서 바로 이 '환상 교향곡'을 썼기 때문이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루 살로메와 같은 열정적이고 아름다운 사랑만 창작의 동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듯하다. 오히려 실패한 사랑, 정열적인 짝사랑이 더 매혹적이고 깊은 창작의 동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 음악은 학대를 전조 하는 경고의 음으로 사용되었다. 전주곡으로 나오고 마틴이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짐승으로 변하면, 로라가 음악에 어떻게 반응할지 짐작하시리라.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영화다. 그렇게 지독한 요소가 아니고 삶에서 소통 불가의 요소는 작은 요소 이기 쉽상이다. 서로 소통할 수 없는 낯선 언어( 자기만 익숙한 언어)로 평생 살아가야 한다면, 배우자를 적과의 동침으로 비유한다고 지나칠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아주 원만해 보여도.
생물은 저마다 고유한 사랑의 언어가 있다. 다만 인간은 문자가 있고 언어로써 감정을 표출할 줄 안다. 단 아픈 사람에게 사용하는 언어는 조금 다를 것 같다. 사람이기에 사랑과 배려를 표현하는 언어는 수만 가지나 되는 것이 아닐까.
그 많은 언어를 내가 자주 사용이나 했던가 싶다. 말 그대로 부드럽게 배려하고, 사랑스럽게 사랑하는 상대에게 전달하는 언어의 감촉 자체가 나에게 있었던가 싶을 때가 있다. 수 만가지 숫자와 비등하게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언어를 이해하고 또 그 언어를 구사해야 할 것 같다. 사람이란 이기적점이 있어서, 헤아릴 수 없이 좋았던 많은 순간보다 한 번의 좋지 못한 말의 기억을 쌓아가는 존재이니까.
한 순간이라도 보금자리를 전쟁터로, 가장 가까운 사람을 적이라고 느끼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이런 류의 영화는 내재한 문제가 크던 작던 두 가지 선택으로 결말 짖는다. 첫째는 그저 마비된 뇌로 유행가 사랑의 대목을 입으로 중얼거리며, 요령 있게 밥그릇과 숟가락 설거지를 하며 생활을 지속하는 것이다. 둘째로, 용감하게 전쟁터를 빠져나오는 것이다. 로라는 어떻게 했을까. 해피 앤딩일까 쌔드 앤딩일까.
로라는 전쟁터 탈출에 성공하고 새로운 사랑을 만난다. 여기까지 보면 해피 앤딩이다. 그러나 새로 찾아온 사랑에게 지난날의 아픔을 말하는 과정에서 다시 괴로움은 지속된다. 행복과 불행의 분명한 선 긋기란 쉽지않다. 결국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환상 교향곡이 위압감 주는 큰 공룡이 다가오듯이 절정으로 치닫는다.
이쯤에서 사랑의 언어란 입체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순하게 사실적인 묘사를 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묘사해야 하는. 늘 설레고 달콤하고 따뜻하고 아름답지만, 불통하면 안타깝거나 잔혹한 이별이란 것이 그 뒤를 정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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