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한 직업

by 햇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요리프로가 많이 늘었다. 요리 재료나 조리 과정을 삶에 비유하곤 한다. 삶뿐만 아니라 글쓰기나 사람의 성격 등을 비유하자면 요리만 한 것도 없다.

직업으로서 요리사를 생각해 보았다. 요즘은 셰프라고 하던가. 생명을 유지하려면 누구나 먹어야 한다. 생각을 생명으로까지 비약하지 않고도, 먹고사는 것을 가꾸어가는 직업이니 숭고하다는 생각이 든다.


생명을 생각하면 병을 고쳐주는 의사를 빼놓을 수 없다. 큰애가 의사가 된다고 했을 때 무엇보다 반가웠던 것이 마음만 먹으면 자신의 의술로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뻤다. 정신에 생수를 공급하는 성직자가 된다고 했으면 어땠을까.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먹고살 수 있는 직업을 찾아야 하는 세상에서 참 한가로운 생각을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은 숨 한번 쉴 틈이 없을 정도로 일상이 각박했거나, 어려웠던 생계의 위협을 지나 조금 풍족해지면 무엇인가 타인에게 이로운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는 것 같다.


어려운 형편으로 한창 공부할 어린 나이에 중국집 배달부부터 시작해 역경을 견뎌낸 성공한 요리사가, 여전히 자신의 팔뚝으로 대량의 짜장면을 뽑아 어려운 이웃이나 해외의 고독한 동포에게 요리를 해주는 장면은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긴 면발을 들어 흐뭇하게 한입 먹는 주름진 노인의 오물거리는 입이나 짜장이 뭍은 어린애의 입가를 보면 소리 없는 미소가 고인다.

또 미용사들이 독거노인들의 머리를 다듬어 주는 화면을 보고 있으면 향기로운 커피를 타서 앞에 두고 있는 듯 잠시나마 기분이 좋아진다.

사람을 이롭게 하는 기술 하나 있다는 것이 생계를 떠나 얼마나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까. 그런 재주 하나 없다면 인생을 헛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던 장면들이다.


오래전 복지센터에 자원봉사를 신청해서 무료 급식을 하는 파트로 배정받은 적이 있다. 배식판에 반찬을 담아 주거나 밥을 퍼주는 일을 맡았다. 배식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척척 손발이 맞아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등줄기로 땀이 흘러도 배식이 끝나고 집으로 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런데 한 달 후 손목에 터널 증후군이 와서 젓가락 하나도 제대로 다룰 수 없게 되어 어쩔 수 없이 그만두고 말았다. 봉사란 마음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애들이 왜 몸을 혹사하느냐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라는 말에 그렇구나 하고 새삼 젊은 애들의 판단력이 예리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짧은 지식이나마 언어를 가르쳐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을 이리저리 뒤져서 몇 가지 재능기부 신청을 해 놓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노인복지관과 사설 어린이 정신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복지관 어르신들보다 그래도 어린이가 마음적으로 편한 생각이 들어서 그리로 갔다. 방문 첫날은, 행동수칙 등 교육을 받았는데 환자들이 돌발적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겁이 나기도 했지만 어린 나이인데도 눈빛이 이상하고 행동이 자유롭지 못한 애들을 보니 더 비장한 마음까지 들었다.

지루한 교육이 끝나고 두 번째 날에 무슨 병인지는 모르지만, 휴교 상태라는 여학생을 만나게 되었다. 새삼스럽게 학습계획서를 써 가면서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몇 시간 동안 열심히 가르쳤다. 이동 시간을 합하면 녹초가 되어 하루를 보냈다. 2주를 하고 그만두었다. 주걱 대신 연필을 든 손목은 멀쩡했는데 사실 난 몸이 아팠다. 그것도 심하게. 몸살이 온 것이 틀림없었다.


병원에서 행동규칙에 따라 긴장 상태를 유지했던 시간이 몸에 무리를 주었나 보았다. 몸 앓이는 점점 심해졌다.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고 진통제가 잘 듣지도 않아서 고통과 몽롱한 상태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 길어졌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무래도 내 마음이 따라주지 못했던 것 같다. 이후 체력이 회복되었으나 도무지 내가 봉사를 하고 있는 것인지 잘 판단이 서지 않았다. 봉사는 행복해야 한다는데 왠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후에도 여러 가지 일을 시도를 해 보았지만 번번이 지속하지 못했다.


나는 요리도 특별하게 잘하는 것 같지 않고, 애들 머리카락도 잘라 주어 본 적이 없고, 체력도 남보다 그리 튼튼하지 못한 편 같다. 별 특별한 재주 하나 없는 내가 그래도 유일하게 일궈낸 것이 있다면 자식들이 나쁘게 큰 것이 아니라는 것. 나는 그저 이렇더라도 애들이 스스로 이타적인 생각으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본다.


봉사를 하면 행복해진다고 하더라, 참 좋다고 하더라 등의 말로, 그러니 너희들도 해 보라고 강요할 수 없는 일이다. 요리사나 미용사의 얼굴과 팔뚝에서 정말 행복할 것 같은 기분이 스쳤듯이 어떤 계기로 스스로 느껴야 하리라. 화려하게 자랑스러운 스펙 쌓듯이 후원이든 기부 등 자신을 장식하는 사람을 종종 본다.

하지만 노동이든 열정이든 스펙이든 어떤 계기가 되었던 시작하는 마음 자체를 가져보는 일이 싹을 퍼트리고 틔우는 일이 될 것 같다.

평생 자신의 방 한 칸 없이도 봉사를 찾아서 하는 사람의 웃는 얼굴은 확실히 더 빛난다. 마음에 볕을 쬐는 일이 틀림없는 것 같다. 평생 지속할 수 있는 숭고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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