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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에서

by 햇쌀

산은 계절마다 다른 향을 풍긴다.



산등성에 소나무가 늘어선 오솔길에 접어들자 바람에 솔솔 실려 향긋한 냄새가 풍겨왔다. 유심히 주위를 둘러보니 뿌리가 뽑혀 길섶에서 말라가는 이름 모를 풀들.

한 번 더 숨을 깊이 들이켜 보았다.


'이처럼 작은 풀이

이처럼 깊은 향기를 남기고 갈 수 있다니.'




홀로 청청한 소나무와 더불어 잡풀도 저마다의 향기를 지니고 있다. 사람도 그런 것 같다. 짙은 향기로 한 번에 다가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면에 잔잔한 향초를 품고 있는 사람이 있다.


오솔길이 말을 건다.

종종 자신이 지닌 향기는 잊은 채 남의 향기를 쫓느라 바쁘지는 않은가. 자신을 망각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풀도 저마다 고유한 향기를 지니는데...





산이 날 에워싸고 ㅡ 박목월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며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


어느 짧은 산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딸을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 한다.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


그믐달처럼 살아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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