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
나는 어스름이 좋다. 날이 저물 무렵, 컴컴한 어둠이 시작되기 전, 박명薄明에 분잡 했던 마음이 고요해진다. 해가 대모산 고갯마루를 넘어간다. 아직 하늘엔 푸르름이 남아 있다.
흠, 그 하늘색이 참 곱지 않은가.
짐승들은 하룻밤 안식을 찾아 산품을 파고들고, 물고기도 지느러미를 물품 속에 맡길 것이다. 새는 은밀하게 틀어둔 둥지를 향해 날아가 아침이 올 때까지 피곤했던 날개 죽지를 쉴 것이다. 낮동안 땀 흘리던 사람들도 피곤한 다리를 쉬러 갈 것이다. 산 그림자 내리는 마을은 깊은숨으로 감빛 푸른 물색으로 깊이 심호흡한다. 저만치 하루가 놀빛으로 저물어 간다.
나는 돌아갈 집이 없는 것도 아닌데, 괜한 서러움이 밀려와 눈가가 아릿해졌다. 공원에 서서 멀리 전등 불빛에 살아나는 도시의 불빛을 가는 눈으로 바라본다. 바람이 세게 부는 것도 아닌데 옷깃을 여미며 내가 이름 지어 준 반려견 로코의 보드라운 머리털을 쓰다듬어주었다. 이 정도면 오늘 하루도 잘 보냈다. 잘 버텼다. 무엇이 되었든 힘들지 않으면 삶이 아니지.
때가 되면 모두 사라져 고요한 어둠 속으로 그림자를 감추고 안식을 찾아드는 시간. 이제 신께 참회와 감사의 기도를 드릴 시간이다. 두 뺨에 스치는 바람이 가벼워서 허공이 가벼운 줄 알았다. 찰랑이는 물비늘이 경쾌해서 호수의 깊이가 얕은 줄 알았다.
생각하기에 따라 심해는 도심 어디에나 있었다. 사람은 죽어서 스스로 빛을 내는 별이 될까. 깜깜한 어둠을 뚫고 반짝이는 어무이 별 하나. 별빛이 왜 깊은 줄 비로소 알 것 같다. *
저녁의 노래ㅡ이상국
나는 저녁이 좋다
깃털처럼 부드러운 어스름을 앞세우고
어둠은 갯가의 조수처럼 밀려오기도 하고
어떤 날은 딸네집 갔다오는 친정아버지처럼
뒷짐을 지고 오기도 하는데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게 좋다
벌레와 새들은 그 속의 어디론가 몸을 감추고
사람들도 뻣뻣하던 고개를 숙이고 집으로 돌아가며
하늘에는 별이 뜨고
아이들이 공을 튀기며 돌아오는
골목길 어디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나기도 한다
어떤 날은 누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아서
돌아다보기도 하지만
나는 이내 그것이 내가 나를 부르는 소리라는 걸 안
다
나는 날마다 저녁을 기다린다
어둠 속에서는 누구나 건달처럼 우쭐거리거나
쓸쓸함도 힘이 되므로
오늘도 나는 쓸데없이 거리의 불빛을 기웃거리다가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