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도 고갯마루를 넘어섰다. 이제 저녁이면 제법 쌀쌀하다. 강아지 산책길에 함께 하는 달빛이 유난히 따스하게 느껴지는 계절도 요맘때이다.
'저녁'이란 단어가 들어간 문장을 좋아하는데, 오늘 그 말이 들어간 좋은 글을 알게 되어서 무척 기뻤다. 특히 '물 묻은 저녁'이라는 시어에 공감이 가서 눈시울이 찡해왔다.
물 묻은 저녁이 끊임없이 찾아오듯이, 따스한 피가 내 몸속을 순환하는 한, 불안이 없을 수 없다. 불안은 날카로운 모서리를 지녔다.
무엇 때문에 불안해하는가. 쓸데없는 에너지를 낭비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달고 살아가야만 하는 불안. 수없이 경험한 그 '물 묻은 저녁'을 연상하면서... 눈시울이 붉어지는 이유.*
멈추지 않는 저녁 ㅡ안주철
눈을 감으면 저녁이 온다
물 묻은 저녁이 온다
멈추지 않는 저녁이
길을 잃지 않는 저녁이
방향을 바꾸지 않는 저녁이
온다
눈물과 함께 오기도 하고
식욕과 함께 오기도 하고
오지 않았는데 이미 도착해 있기도 한다
머물면서 집을 짓는 저녁이 있고
사라지면서 모든 걸 남기는 저녁이 있다
눈을 감으면 저녁이 온다
발소리를 주머니에 주워 담으며
엷은 어둠을 비비며
더욱 캄캄하게
ㅡ 《 불안할 때만 나는 살아 있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