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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시안 Apr 12. 2022

기분 좋은 일

오전 한 시 사십육 분. 각자의 방에서 가족들이 깨어 있는 시간이다. 거실 식탁에 앉았다. 거실 전체 불을 끄고 노트북만 켜고 있다. 좀 전까지 야식을 먹은 가족들이 들어가고 늦은 정리가 끝나 이제야 검은 고요 안에 들어와 있다. 노트북의 불빛과 빈 공간이 지금부터 내가 채울 시간이다.


이사 온 후 꽃이 꽂혀있던 꽃병이 며칠째 비어있었다. 이번에는 무슨 꽃을 살까 싶었는 데 꽃가게를 가지 못해서 비어진 상태였다. 그런데 왠지 비어 있는 화병이 편해 보였다. 입구가 좁은 호리병 같은 화병에 꽃 한단이 들어가면 답답한 느낌이 있었다. 그렇다고 한 두 송이를 꽂으려니 허전하고 그러다 빈 화병이 되었지만 꽃을 골라 채울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은 괜찮은 일이. 물론 귀찮은 마음이 더 커지기 전까지는 기분 좋음이 움직이게 한다. 깜깜한 거실에 켜져 있는 노트북의 빈 화면을 보면서도 무언가를 채울 수 있는 이 시간이 좋은 것이다. 사는 건 가끔 별게 아닐 때가 있단 걸 아니깐. 별거인 삶 안에서 소소한 즐거움이 있다는 것은 무료하지 않고 얼마나 다행일까.

꽃병에 꽃을 끊기지 않고 채워 놓는 것이 살짝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 한 단을 매주 사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 또한 고정 지출이 돼버리니깐 자유롭진 못하다. 꼭 한단일 필요는 없지, 한송이만 살까 해서 꽃시장이나 다녀올까 싶었다. 집에서 지하철로 20분이면 꽃시장에 갈 수 있어 마트를 가려다 방향을 틀었다. 큰아이 학교 근처엔 꽃가게와 옷가게들이 아주 많아서 가끔 들렸었는데 다녀온 지 2년이 넘은 것 같다. 2년 전에 그곳에서 샀던 옷들이 거의 끝이었으니깐. 이사를 하다 보면 옷장도 많이 비어진다. 본의 아니게 미니멀 옷장이 되기도 한다.


아주 오랜만에 옷가게도 둘러볼 생각에 현금을 조금 찾았다. 사실 꽃값 아낀다고 지하철까지 타고 꽃가게를 가려고 한 거였는데 무슨 바람인지 맘에 들면 하나 사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참. 그런데 그곳은 가지 않으면 안 사지만 가서 사 오지 않으면 왠지 아쉽기도 하다. 워낙 저렴한 옷들이 많은 곳이기도 2년 만이니 날 위해 하나쯤 사도 된다며 뜬금없는 관대함이 일어 발길을 그쪽으로 향하게 했다.


가격들이 부담이 없는 곳이라 사람들이 늘 많은 것이 좀 그렇지만 그날은 다행히 한산했다. 우선 꽃집을 찾아 꽃을 샀는데 한 다발이 아니면 동네와 다르지 않았다. 좋아하는 푸른 수국 한송이를 사고 나서 휙 한번 둘러나 보고 가야지 싶었는데.

그때, 눈에 딱 들어오는 원피스를 봤다. 아, 원피스는 안되는데. 우선 지나쳤지만 자꾸만 그 원피스가 생각이 났다. 검은색 원피스였는데 목 앞 쪽에 단정한 시폰 카라 밑으로 금색 단추가  쪼르륵 달려 있었다. 팔부분엔 베이지색 비치지 않는 시폰이 달린 원피스였다.


원피스를 좋아는 하지만 원피스를 산지는 아주 오래됐고 마스크를 쓰고 입을 일도 없었다. 결정적인 것은 사도 맞지가 않다는 것이다. 가격 대비 맘에 들었지만 문제는 사가도 맞지 않으면 그냥 걸어둬야 한다는 것, 시선을 안 주려고 했지만 결국 내손에 들려있었다. 이런.

프리사이즈라 안 맞으면 어쩌나, 아냐 살 빼서 입을까. 말도 안 되는 소리. 이런저런 생각들이 줄지어 주저하게 했지만 좀 크게 나왔어요 한마디에 이미 팔목엔 종이가방이 흔들흔들 걸려있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원피스를 입어보았다. 목에서부터 안 들어가면 어쩌나 싶었는 데 들어갔다. 잠긴다. 게다가 조금 날씬해 보이기도 하는 것 같고 이 클래식한 원피스가 뭐라고 기분이 좋아졌다. 역시 옷이 크게 나왔다. 이름 모를 어느 디자이너의 배려가 고마웠다. 프리사이즈란 말에 아주 정직한 옷이었다. 엑스 라지에서 스몰까지 프리 사이즈를 사는 순간은 그 옷에 맞혀지는 것이다. 그러니 선택한 것은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조금, 아주 조금 쪼이거나 아주 넉넉한 채로 말이다.

정말 단순해지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아들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는 젊어 보인다고 했고 첫째는 엄마 옷 중에 제일 예쁘다는 찬사를 해주었다. 첫째는 정장 분위기 느낌의 옷을 좋아하고 둘째는 와이드 한 편안한 스타일의 옷을 좋아한다. 그래서 둘의 소감도 참 달랐다. 같은 옷을 보면서 클래식하다고 느끼기도 하고 어려 보인다고 느끼기도 하는 걸 보면.


아들만 둘인 나는 아들들에게 물어본다. 그 애들이 뭘 알까 싶기도 하지만 그냥 물어본다. 엄마 이쁘냐고. 그런데 질문부터 잘못되긴 했다. 어떠냐고가 아니고 이쁘냐고 물으니 웬만하면 예쁘다 해주는 것이  낫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았을 것이다. 알면서도 이렇게 즐거울 수가. 자꾸 입꼬리가 올라갔다. 나는 클래식하고 얌전해 보이는 옷이라 나이가 들어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트렌드고등학생 작은애의 말에 그만하면 되었고, 날씬해 보이기까지 한다는 큰애친절한 부연 설명에 한껏 기분이 좋아졌다. 학교 올 때 입고 오라는 말까지 하는 걸 보면 원피스가 큰애는 쏙 마음에 들긴 했나 보다. 예전엔 가끔 일이 있어 큰애 학교 앞에서 만날 때가 있었다. 아직 한 번도 못 입었지만 비어진 옷장에 걸려 있는 원피스를 볼 때마다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뭐 그럼 됐다. 햇살 좋은 봄날 입고 나갈 일이 있지 않을까. 맘에 드는 옷 하나 걸렸다고 빈 옷장이 꽉 찬 느낌이 든다.


기분이 왠지 가라앉아 있을 때, 기분이 올라가는 순간은 생각보다 간단할 때가 있다. 지내다 보면 가족들의 기분 좋음을 끌어내는 방법이 보인다. 가장 간단하고 쉬운 것은 남편인데 함께 술 한잔을 해주는 것이다. 집에서 혼술 하는 남편에겐 함께 마셔주는 시간이 기분 좋음에 가까워지는 시간이다. 미안한 것은 내가 집에서 잘 마시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래서 어쩌다 한 번이 크게 다가가는 것일 수도 있다. 남편이 기분이 좋을 때 나오는 흥얼거림이 있는데 그건 나만 아는 것 같다. 아이들은 잘 모른다. 항상 같은 리듬의 두 구절인데, 그게 무슨 노래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허밍 같은 것 같다.


큰애의 기분 업을 위한 일도 어렵지 않다. 아주, 맛있는 음식을 먹이면 된다. 음식은 밥상일 때도 있고 맛있는 빵일 때도 있다. 맛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우울하려고 했던 마음에 힘이 생기나 보다. 언젠가는 연어일 때가 있었고, 어느 날은 문어였고, 마블링 잘된 고기 한 점일 때도 있었다. 얼마 전에도 집 근처 빵집 투어를 해서 맛있는 빵만 사다 주었는 데 성공했다. 나한테 성공은 그저 이런 순간이다. 큰애와 나는 먹고 싶은 거 사 먹을 정도면 된다는 생각을 한다. 큰애는 새로 나온 치킨을 고민 없이 사 먹고 어쩌다 맛집 찾아가 맛있는 식사 할 수 있을 정도면 좋겠다고 한다. 나도 나이가 들어도 아이들을 계속 사줄 수 있었으면 좋겠고 바란다면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아들들이 언제든 사줄 수 있는 것이면 만족이지만 쉬운 일이 아닐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제일 어려운 것은 작은애의 마음을 업시키는 일인데, 쉽지 않은 것이 큰애에게 드는 비용보다 크다는 것이다. 먹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이 전자 기계들이 대부분이라 그렇다. 최근에 살짝 공부 슬럼프가 와서 힘들어할 때도 선뜻 기분 좋음으로 바꿀 수가 없었다. 작은애의 기분 좋음에 관여할 수 있는 것은 남편의 허락이 있어야 하는 것이 우리 집에 룰 같은 것이다. 하나, 컴퓨터나 핸드폰의 영역은 내 영역이 아니다. 그건 어쩌면 남편의 자존심 같은 것 같아 가족들이 따라준다. 그래서 다른 것에 비해 그 벽이 높았다. 무언가를 바꾸려면 남편은 기다림이라는 쉽지 않은 숙제를 준다. 다만 그것이 사춘기 아들에게 잘 받아들여지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으니 그게 어려운 일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사주면서 즐거워하는 것은 남편이다, 그럴 때 남편의 허밍이 느껴진다. 그런데 요즘은 남편의 높은 벽도 조금씩 낮아지는 느낌이 든다. 나이가 든다는 건 그런 일 같다. 아빠가 나이가 들고 아들들의 키가 더 커지면 어쩔 수 없는. 그래서 남편의 그 벽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다. 남편이 벽을 낮췄을 때는 잘했다며 칭찬해준다. 남편의 벽은 나의 칭찬에, 아들들의 웃음에 그렇게 낮아지고 있다. 어쩌면 벽을 높여 지켰던 마음보다 다른 즐거움이 마음을 채우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들들이 선풍기를 찾는 걸 보니 이제 완연한 봄날인가 보다. 벌써 거리엔 벚꽃 잎들이 바람에 날려 있다. 빈 화병에 수국 한송이가 들어가 식탁이 환해졌다. 빈 화병일 때는 여백을 채우는 즐거움이 있었고 예쁜 꽃을 꽂고 보며 느끼는 즐거움은 또 다르다. 마음이 비어질 때는 좋아하는 것으로 채우면 된다. 빈 화면이었던 모니터엔 어느새 까만 글자들로 찼고, 허전했던 시간은 글로 채워졌다. 지금 시간이 네시 반. 세 시간 동안 나는 나의 기분 좋음에 충실했다. 오늘도 멈추지 말고 써 보자는 것을 지킨 하루였다.

베란다 의자에 앉아 새벽이 오는 풍경을 본다. 드문드문 불 켜지는 건너편 아파트의 모습이나 어스름했던 밤하늘에 푸른빛이 도는 것을 보니 새벽이 오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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