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별을 마주할 때

by 리시안


손톱을 깎는다


손톱이 자랐다

울어도 자랐고 밥을 먹지 않아도 자랐다

하고 싶지 않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줄 알았는 데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손톱이 자라고 있었다

사람들은 손톱이 자라는 것도 모르고

밤과 낮을 살았다


손톱을 깎는다

초침 없는 시계는 여전히 흘러가고 있었다

멈춘 줄 알았던 시간에

슬픔이 쌓이고 자라났다

하얗게 단단해진 슬픔이

나에게서 떨어져 나간다

초승달 같은 슬픔이 깎인다

슬픔이 뚝 뚝 떨어져 나간다






몇 년 , 친정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을 때다. 엄마가 엉엉 소리를 내시며 우셨었다.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 앉았다. 불안했던 마음이 한꺼번에 심장을 요동치게 했다. 엄마의 불안이 폭발한 걸까. 엄마, 엄마 몇 번을 불리고서야 지금 갔다고 하셨다. 엄마의 반려견과의 이별의 순간이었다. 오랫동안 홀로 되신 엄마 옆에서 지켜주던 가족이었다.

오늘 다시 엄마는 반려견과 사진을 찍고 계신다. 나에게도 예쁘게 찍어달라고 하시며 다가 올 이별을 준비하신다. 감정에 강한 엄마가 유일하게 소리 내어 우실 땐 반려견과의 이별일 때다.

40여 년 동안 친정에는 강아지들이 있었다. 어릴 적 학교에서 돌아와 강아지들이 보이지 않으면 골목골목 이름을 부르며 찾아다녔었다. 진돗개 진순이가 새끼를 배고 예민해졌던 일, 포밀리언 밍크와 밍크 아들 아구. 아구 엄마 밍크가 하늘나라로 떠났을 때 아구가 엄마인 밍크털을 입에 물고 다녔었다. 그 모습이 너무 가슴 아팠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몰티즈 아빠 모모와 요크셔테리어 엄마 아롱이. 모모와 아롱이의 새끼들이 이제는 친정엄마의 나이를 닮아간다.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는 데 마주쳐버렸다. 이마의 땀들이 눈 속으로 들어와 따가웠다. 따가워서 눈물이 난 건지 슬퍼서 인지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 앞에서 눈물을 보이면 안 될 것 같아서 참으려 해도 울컥울컥 했다. 엄마가 반려견과 사진을 찍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회사 화장실에서 언니가 눈물이 났다고 했다. 오후 내내 친정엄마 앞에서 언니는 재미있는 이야기로 엄마를 웃게 해 줬다. 나도 한 톤 올려 언니와 깔깔거렸다. 엄마가 즐거우시라고. 언니와 둘이 얘기하며 웃는 모습에 엄마가 좋으시라고. 잠시 이별에 대한 생각은 잊으시라고.

15년을 살았던 곳을 떠나 지금의 집으로 이사할 때 나는 지나치게 감정적이 되어 이별의 아쉬움에 슬퍼했다. 가깝지만 살던 동이 달라진다는 건 나의 감정을 몽글몽글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아주 가까운 동네의 지인들은 내가 15년 만에 살던 곳을 떠나는 것에 감정을 실지 않았다. 지인들은 나의 새로운 가구들과 인테리어 이야기를 하며 오히려 즐거운 분위기였다.

있던 곳을 떠나는 나만, 매사에 의미부여 많은 나만 울적해하는 것 같았다.

왜 그땐 몰랐을까. 왜 나는 떠나는 나만 서글프다 생각했을까. 시간이 지난 요즘에야 지인들의 아무렇지 않은 이별의 모습이 이유가 있음을 알았다. 나는 이사 오고도 자주 지인들과의 시간을 가졌다. 이사 가지 않은 사람처럼, 나의 아파트 놀이터에서, 지인들의 아파트 벤치에서 만남은 늘 같았다. 나는 그대로 나의 지인들 속에 있었다. 울며 헤어진 다음 날 또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민망할 수 있는지 모두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이별을 대하는 모습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무엇이 낫다 아니다의 차이가 아닌 각자의 방식대로 이별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담담하게, 누군가는 무심한 척, 그리고 누군가는 아무 일 없는 듯이 이별을 마주한다. 그것이 떠나는 상대방을 위한 배려였음을 알겠다.

오랜만에 단톡에서 안부들이 오고 갔다. 첫애들 엄마로 만나서 친했지만, 최근 들어 자주 만나지 못한 동생이 이사를 한다고 했다. 한 시간 거리나 되는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했다. 새집으로 이사 가는 것이 모두들 부럽다고 인사를 나눴다. 나는 멀리 이사를 간다 하니깐 기분이 좀 이상하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 중에 더 자주 만났을 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런데 말로 한다는 건 고작 기분이 이상하다는 정도였으니. 표현은 마음의 양과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던 곳을 떠나올 때처럼 나 역시 웃으며 안녕을 고했다.


이별을 할 때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고 슬프지 않은 것이 아님을 알겠다. 웃으며 보내는 것이 마음이 없어서가 아님을, 눈이 벌겋게 되어도 눈물방울 안 떨구게 참는 것도

슬프지 않아서가 아니다. 이별은 누구에게나 아픈 일이지만 자신이 가장 덜 슬픈 방식을 안다. 처음부터 이별에 강한 사람이 있을까.

어쩌면 몇 번의 이별로 자신도 모르게 배운,

슬픔에서 온전할 수 있는 가장 덜 슬픈 방식으로 마주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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