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 즈음에

겨울, 길목에서

by 리시안


입동이 지났다. 겨울의 시작, 동물들은 동면 들 준비를 하고 1층 집이라 추운 우리도 난방을 켰다. 베란다 밖 여름 내내 푸르던 은행 나뭇잎들도 이젠 샛노랗다. 우수수 떨어져 쌓여있는 것이 마치 확장된 거실에 노란 카펫이 깔려 있는 것 같아 따뜻해 보인다. 1층에 살아서 볼 수 있는 나름 코앞의 풍경이 좋다. 머플러를 칭칭 감고 집 앞 야외 벤치에서 앉아 있는데 마시고 있던 뜨거운 커피가 어느새 아이스커피가 되었다. 발목 양말 맨살 위로 찬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와 소름을 만든다. 추워서 어깨에도 자꾸 힘이 들어간다.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를 좋아했었다. 채우지 못한 하루에 대한 쓸쓸함의 가사는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사람들에겐 많은 공감을 주었다. 그리고 직장생활 후 결혼과 아이 엄마의 삶을 받아들이는 하루가 쉼 없었던 고단한 초보 엄마의 마음에 딱이었다. 세월이 훌쩍 지났다. 아직도 사랑노래를 들으면 설레고 예쁜 옷을 보면 눈이 가는 데 이제는 내 나이에 맞는 옷이 먼저이고 주변을 신경 써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 만큼 규현의 '광화문에서'를 좋아하는 데 세월의 간극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아들들이 말하는 대화를 듣다가 무슨 말이냐고 묻기도 하고 공감하지 못하기도 한다. 자유로움 보다 눈치 보고 신경 쓸 일이 더 많아졌다. 물론 나이 듦이 싫은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이 있기에 나이가 주는 압박이 느껴진다.


남편과 나는 동갑내기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다 누구 아빠, 누구 엄마가 되었다. 우리는 20여 년 동안 여보와 자기라는 말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아마 내내 못하지 않을까 싶다. 차라리 이름을 부를지는 모르겠다. 스물한 살에 친구로 만나 7년을 연애하고 결혼 22년을 맞았으니 함께한 것이 30년이 되어가는데도 호칭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성격유형검사가 유행이었다. 신기하게도 각자의 특징에 맞게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는 표현들이 절묘하게 맞았다.

남편은 나와 반대의 성격이다. 이성적이고 따지고 파헤치기 좋아하는 성격의 남편은 검사 결과에도 그런 사람이라고 나왔다. 특히 '악인 옹호'라는 특징을 남편은 은근히 재밌어하면서 즐기는 것 같다. 서운할만치 누구의 편도 잘 들지 않는 남편의 성격을 보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남의 일에 별로 관심을 두지도 않는다. 굉장히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성격의 남편이다.


그러던 남편이 달라졌다. 말을 길게 하는 것도 싫어해서 핵심만 말하기를 좋아하던 사람이 나의 주변에 관심을 보인다. 아들들과 하는 이야기에 궁금해하고 하나를 물어보면 열을 말한다. 드라마가 시작하면 다른 방에 있던 나를 불러 앉힌다. 못 본 장면은 열심히 설명도 해준다. 게다가 주인공에게 감정이입도 하며 세상 감성적으로 변했다. 어쩔 때는 우는 게 아닌가 슬쩍 확인하기도 한다. 듣는 것을 한 번도 못 봤던 음악채널을 열어 따라 부르고 밤이면 잔잔한 음악을 켜놓고 자려고 한다. 그러면 나는 불빛을 피해 벽에 붙어서 잠을 청한다.


남편의 변화가 예사롭지 않다. 빈말 한 번도 하지 않고, 아이들이 아무리 잘했어도 고작 하는 칭찬이 잘했네가 다였던 남편이었다. 일희일비 금지가 가훈 같았다. 그랬던 남편이 인터넷으로 장을 보고, 아들들과 어떻게 해서든 같이 식사하고 싶어 하는, 내가 없을 때는 음식 사진을 찍어 확인시켜주고 칭찬을 기다리는 남편이 되었다. 우리 가족들에겐 드라마틱한 변화다. 아들들은 아빠의 변화가 싫지 않은 듯하다. 아니 유쾌하게 생각한다. 남편은 좋아하는 술에 관한 고집만 빼고는 굉장히 논리적이고 명쾌하다. 하지만 남편은 점점 나처럼, 나는 남편처럼, 감정선이 바뀌고 있다. 어쩌다 잡은 남편 손이 따뜻하다. 갱년기 발열로 따뜻함인지 아닌지 몰라도 남편의 변화되는 모습이 낯설지만 괜찮고 재미있다.


그렇게 우리 부부에게 갱년기가 왔다. 나는 핸드폰만 손에 들고 다녔었는데 이제는 짧은 외출에도 짐이 많아졌다. 부채와 머플러가 필수다. 가방이 커지고 점점 외출은 가볍지 않게 되었다. 커피를 마시다가도 쉬도 때도 없이 더워졌다가 추워졌다가를 반복한다. 갱년기에 생기는 안면홍조는 없지만 두통이 살짝 생겼다.


가끔 욱하는 마음도 생겼다. 드라마를 보다가도 불의를 보면 갑자기 화가 난다. 우습게도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 살아온 걸 생각해보면 의도치 않게 튀어나오는 분노가 내심 반가울 때가 있다. 하지만 여성 갱년기의 특징은 감정의 급변이다. 이내 모든 건 나의 잘못이라면서 자책한다. 더 지혜롭게 살아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 보면 마음이 좋지 않다. 감정의 변화, 달갑지만은 않다. 아직 할 일이 많고 지켜내야 하는 것이 많아서 힘든 갱년기는 사절이다.


남편과 나는 서로의 갱년기를 위로해줄 여유가 없다. 동시에 왔기 때문에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면 될 것 같다. 언젠가 친한 동생에게 남편의 자는 모습을 보다 발을 보고 짠한 맘이 든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러냐고 의아해하던 동생이 얼마 전에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고 했다. 남편 자는 모습에 그런 마음이 들더라고. 부부가 살다 보면 측은지심이 생길 때가 있다. 사실 측은지심이 생겨버리면 화가 나도 화를 내기가 어렵다. 아니 화가 잘 나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문득 유명한 육아 멘토 오은영 박사의 대화의 방법이 생각이 난다. 비단 아이들에게만이 아니라 부부지간에도 필요한 말 같다. "그랬구나. 그런 맘이었구나. 속상했겠구나."

우리 부부, 갱년기를 무사히 넘기고 잘 살아내지 않을까. 20여년을,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아픔을 겪었고, 같은 기쁨을 겪은 부부니깐.

바람 같은 세월이었어도 나이테처럼 천천히 쌓였을 함께한 세월의 내공을 나는 믿는다. 남편 역시 내 마음 같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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