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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 국화 맺었던 마음 시월 단풍에 떨어지고

구순 노모를 뵈러 간다. 평일은 노치원을 다니시니 주말에만 가면 된다. 효심을 단전에서 끌어올려 보려 해도 쉽지는 않다. 사람은 많고 치매도 다양하겠지만 엄마의 치매는 분명 엄마 맞는데 또 엄마가 아닌 그런 치매이다. 환자로 대하기에는 멀쩡하고 정상으로 대하기엔 병중인 것도 맞다.


엄마와 2박 3일이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번엔 달랐다.

- 일요일 돌아오는 길, 그래 막힐 테면 막혀봐라. 월요일 출근 안 한다!

든든한 월요일이 있어 출발 전부터 힘이 났다. 엄마에게 더 다정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은 퇴직 후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엄마와 몇 달 살기였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퇴직이 다가오는 그 몇 년 동안 엄마도 변했고 나도 변했다. 엄마와 몇 달 살기는커녕 어쩌다 오는 주말 함께 보내기도 숙제하듯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 무슨 물을 그리 쓰노?

설거지하지 말고 내 옆에서 내 이야기 들어라는 말씀이다. 외로움을 수다로 털어보자는 말씀인데 나도 이미 수백 번은 들었던지라 고개 끄덕일 마음도 없었다.

- 엄마, 우리 화투 칠까?

화투판을 꺼내고 연두색 이불을 깔아드렸다.

- 되것나?

하시더니 8승 2패! 엄마의 승리였다. 기분이 좋아 보이신다.

- 엄마, 이렇게 쭉 늘어놓고 하던 거는 뭐였어요?

여세를 몰아 다음 놀이로 슬쩍 유도해 본다. 할아버지한테 쫓겨나 이틀 만에 큰 언니 낳은 이야기 무한반복만 아니면 뭐든지 할 수 있다.

- 일 년 열두 달 운세 보는 거지

손에 남는 화투패 없이 똑 떨어지면 그 달 운세가 좋은 거란다. 정월부터 시작하니 그믐달까지 가려면 한참은 할 수 있다.

- 엄마, 내 운세도 봐주세요.

자식이 여섯이니 이 화투패로 오전은 넘길 수 있는 놀이다. 내 삼월, 사월 운세가 좋단다. 용하다! 신이 난 내가 맞장구를 몇 번 치니 엄마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신다.

- 삼월 사꾸라 산란한 마음 사월 흑싸리에 다 떨어지고 오월 난초 나는 나비 유월 목단에 춤을 추고 칠월 홍돼지 홀로 누워 팔월 공산에 달 떠 온다

구월 국화 맺었던 마음이 시월 단풍에 떨어지길 몇 번을 했을까? 엄마의 달력은 지금 어느 계절, 어느 달을 지나고 있을까?


- 네 젊음이 너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나의 잘못에 대한 벌이 아니다

누군가의 격언처럼 엄마의 잘못이 아님을 알기에 잠시 해방을 맛본 내가 먼저 말을 건네본다.

- 엄마, 큰언니 낳느라고 힘들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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