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학교들이 방학을 했다. 작년 나에게 여름방학은 가도 가도 끝없는 구부능선 같은 산이었다. 바닥 긁히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끝없이 퍼 올려야 하는 샘물 같았다. 남아있는 기력이란 기력을 모두 끌어모아 물을 길어 올렸다. 그래도 안 되어 한약을 지어먹었고 링거를 맞으며 출근을 했다. 방학이라는 골든볼을 넣기 위해 나는 연장전에 투입된 선수 같은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정작 방학을 한 날은 허기지고 맥 빠져 이대로 집에 갈 수가 없었다. 아니 이대로 집에 가도 된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아직 해가 지지 않는 여름 오후, 낮잠이라도 자고 일어난 아이처럼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그런데 퇴직을 하고 보니 님들의 방학은 왜 이다지도 빨리 오는 것인가? 어디서부터 시간이 왜곡되기 시작한 건까?
변화가 있고 흥미 있는 경험으로 차 있는 시간은 진행 중에는 짧은 것 같아 보이나 뒤돌아보면 길게 보인다. 이와 반대로 경험한 것이 없는 공허한 시간 폭은 진행 중에는 긴 것 같지만 회고하면 짧아 보인다.
윌리엄 제임스가 시간에 대해 말한 부분을 읽을 때 내가 보낸 그 한 학기는 공허한 시간이었을까에서 생각이 잠시 멈추었다. 발바닥에 스프링 달린 10대들에게는 오늘과 내일은 흥미 있는 경험으로 가득 찬 하루하루였을 것이다. 그러니 엄청 빠른 속도가 하루가 지나간다. 버티기 작전의 나의 하루하루와는 너무도 다른
기어이 오고야 마는 방학을, 방학이 아니면 더는 안 되겠다고 느끼는 순간부터 나의 퇴직은 결심되었다. 이 정도에 허덕일 체력이라면, 혹은 직업윤리라면 내려놓아야 하는 게 맞다 싶었다. 나의 모든 에너지에 약의 에너지, 다른 사람의 기운까지 받아서 끌어가야 하는 일이라면 그건 나에게 부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에너지를 변화 있고 흥미 있는 하루로 보낼 수 있게 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 여섯을 낳았던 내 부모는 막내에게 늘 미안하다고 했다. 젊은 부모이지 않아서, 함께 많은 걸 해 주지 못해서. 담임이라는 위치도 비슷한 것 같다. 젊은 시절의 나를 만난 제자들에게 해 주었던 것들을 다 해 주지 못한 느낌, 한다고 해도 모자란 느낌, 내가 아니었다면 다른 분들이라면 더 잘해주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들. 그것들이 퇴직의 마지막 해에 만난 아이들에게는 더 짙게 남아있다.
그래서 아직도 그 아이들의 모습을 카톡 프사에서 지우지 못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잘 커 주기를, 잘 자라주기를, 그래서 오늘 하루도 신나고 즐겁게 순식간에 지나갔기를.
- 얘들아, 방학 축하해. 그리고 선생님들 진짜 수고 많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