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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진상이 되어 간다

by 동화작가 몽글몽글


보름 사이에 주정차위반 과태료 통지서를 두 개나 받았다. 그것도 늘 다니는 집 근처에서.


첫 번째 통지서는 받자마자

- 내가 그랬겠지. 빨리 내고 빨리 잊자

그날 오후에 잽싸게 내고는 통지서를 기분 좋게 찢어서 분리수거까지 했다. 쭉쭉 찢을 때 약간의 쾌감까지 얹어가면서.

- 더 큰 일 아닌 게 어디야. 이런 일은 딱 5분만 기분 나쁘면 돼.

자기 합리화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뒤 비슷한 통지서가 한 장 더 날아왔다. 이건 그냥 내고 말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치도, 가물가물한 위반 날짜도 비슷했다. 처음엔 지난번에 낸 통지서에 대한 영수증인가 했다.

- 그래도 확인해 보는 게 좋겠지?

심호흡을 크게 쉬고 깨알같이 작게 적힌 단속 관련 문의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 20분 이상의 통화는 상담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자중하라는 뜻의 통화연결음이 조금씩 진상이 되어 갈 내 모습을 예견하는 것 같았다. 차분한 상담원의 확인 결과 또 다른 주정차 위반이 맞다고 했다.


- 그럴 리가요? 기억도 없는데요

- 주정차 위반 카메라가 찍는 거라 저희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상담원과의 통화가 오고 가고 보내준 사진 자료에다 나의 기억을 더듬어 보니 저녁 8시, 한 식당 앞에서 콩나물국밥 먹고 나올 동안 세워 두었던 7분이 단속된 것이었다. 알면 알수록 목소리가 올라갔다. 노련한 상담원은 내 마음을 다독이며 주정차 위반의 원칙을 설명했다. 내가 억울하면 할수록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원리원칙뿐 이란 걸 전직 공무원인 나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 네, 알겠습니다. 지금 말씀하시는 분께 드리는 얘기가 아니라...

공손을 가장한 통화이긴 했지만 나는 이미 진상이 되어 갔다. 내가 진상일 리 없어 라는 내 마음속 생각까지 수화기 너머 상담원은 다 느끼고 있었고 신중하게 고르는 한 단어 한 단어에 그만하고 싶어 하는 상담원의 마른 입술을 나도 그릴 수 있었다. 비 오는 오후의 잔잔한 평화와 그동안 갈고닦은 마음의 우아는 벌금 32000원과 식당 앞 주차 7분에 와장창 깨어졌다.


마음도 달랠 겸 산책 삼아 다시 그 거리에 서 보았다. 성능 좋은 360도 단속 카메라가 뱅글뱅글 돌고 있었고 국밥집 사장님이 붙여 놓은 단속 주의 문구도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상담원이 말한 원리 원칙은 잘 지켜지고 있었고 아무도 잘못한 사람은 없었다. 매일 다니던 그 길에 그동안 주정차 단속 카메라가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던 나의 무지가 있었고 뜨거운 콩나물국밥을 7분 30초 만에 먹고 나왔다는 식사 속도에 새삼 놀랄 뿐이다.


앞으로 밥 먹을 때는 식사뿐 아니라 식당 앞 안내 문구도 잘 보고 다녀야겠다 정도로 마무리하고 돌아오려 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억울했고 툭툭거릴 뭔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고작 생각해 낸다는 것이 이 단속이 일회성이 아니길, 나 이전에도 그래왔고 나 이후에도 그래야 할 것이야! 라고 카메라에게 말해보는 정도였다.


저 통지서에 적힌 금액을 내고 말 거면서, 그리고 잊어버리고 말 거면서 까치를 노려보는 고양이처럼 마음을 꼬고 앉은 나는 진상이 맞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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