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실패한 사람인가?'라는 질문
두 번째 권고사직의 이유를 들은 날, 제 마음속에는 분노보다 먼저 허탈함이 자리했습니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도 잘릴 수 있다.'라는 사실이 저를 무너뜨렸습니다.
첫 번째 회사에서는 병원에 실려 갈 만큼 몸이 부서지도록 일했습니다.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프로젝트 자체가 정리되면서 '나가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두 번째 회사에서는 이제 막 다시 시작해 보자고 마음을 붙잡은 지 2주 만에 팀 전체가 잘렸습니다. 이번에는 심지어 제 실력이나 태도와도 상관없는 이유였습니다. 그저 '팀 단위로 불신'이라는 한 줄로 정리됐습니다.
그때 제가 받은 감정은 수치심이었습니다.
‘나는 사회에서 쓸모없는 사람인가?’
‘나는 왜 이렇게 빨리 밀려나지?’
‘왜 나는 자꾸 밖으로 던져지는 거지?’
‘나는 아직 시작도 못 했는데, 벌써 끝난 사람 취급을 받는 건가?’
문제는 잘잘못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힘이 내 삶을 바꾸고 있다.'라는 절망이었습니다. 열심히 한다고 버틸 수 있는 게 아니고, 나만 잘한다고 살아남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운’이라는 단어가 커리어를 좌지우지하는 현실.
이건 굉장히 무섭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라는 감각은 인간에게 공포로 다가오거든요. 그 순간 저는 정말로 이렇게 느꼈습니다.
'내 인생의 운전대를 내가 안 잡고 있구나.' 그 감각은 성취감의 반대편이 아니라, 존재감 자체를 무너뜨립니다. '내가 나를 책임질 수 없다.' 그 인식은 사람을 아주 깊은 곳까지 가라앉게 만듭니다.
몸은 먼저 굳는다
사람이 큰 충격을 받으면 도망가거나 싸우거나 멍해진다고 하죠. 저는 그 셋 중 어느 것도 아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저는 ‘굳어버렸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의욕이 없어서 하기 싫은 상태가 아니라, 몸 자체가 움직이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생각은 떠오르는데, 행동은 안 나오는 상태. 머릿속에서는 '일단 뭐라도 해봐야지.'라는 말이 떠오르는데, 몸은 반응하지 않는 상태. 그건 마치 강한 빛을 맞은 동물이 그대로 얼어붙는 것과 비슷했습니다.
도망칠 힘도, 싸울 힘도, 외칠 힘도 없이 그냥 경직되는 상태. 저는 그대로 굳었습니다. 휴대폰 전원은 꺼버렸습니다. 다시 켤 이유도 없었습니다.
누가 전화를 한다면, 그건 대부분 “요즘 뭐 하고 지내?”라는 질문일 텐데, 그 질문이 제일 듣기 싫었습니다. 그 질문은 관심이 아니라 현황 보고 요구처럼 들렸습니다. “넌 요즘 어떤 가치 있는 움직임을 하고 있어?”라는 압박으로 들렸습니다. 제가 대답할 수 있는 문장은 하나뿐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못 하고 있어요.” 이걸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연락 자체를 끊었습니다. 아예 세상과 선을 그어버렸습니다.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다음부터 제 하루는 아주 단순해졌습니다. 아침에 눈을 뜹니다.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갑니다. 어머니가 밥을 차려주십니다. 저는 말없이 앉아서 밥을 먹습니다. 밥을 다 먹으면 “잘 먹었습니다”라는 말도 제대로 못 하고 그냥 고개만 끄덕입니다. 그리고 다시 제 방으로 들어갑니다. 문을 닫습니다.
그게 하루의 틀 전부였습니다. 방 안에서는 컴퓨터 전원을 켰습니다. 인터넷에 접속합니다. 그리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를 켰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기 저를 붙들어 준 건 현실이 아니라 가상세계였습니다.
그전까지 WOW는 단순히 '너무 재밌는 게임'이었습니다. 이제 WOW는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되었습니다. 현실은 저를 자꾸 밖으로 밀어냈습니다.
“당신 필요 없어요.”
“여긴 자리 없어요.”
“오늘까지 만이에요.”
하지만 게임 속에서는 아무도 저에게 나가라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환영해 주었습니다.
“어 왔네.”
“오늘 같이 던전 갈래?”
“저기 퀘스트 도와줄까?”
현실에서 저는 이미 두 번이나 밀려났지만, 게임 속에서 저는 여전히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는 플레이어였습니다. 같이 싸울 수 있는 동료였습니다.
그 차이가 컸습니다. 정말 컸습니다. 현실은 저에게 '너를 쓸 곳이 없다.'라고 말했지만, 온라인은 '너랑 같이 해도 된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말이 저를 살렸습니다.
WOW 안에서만은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었다
저는 하루 종일 게임을 했습니다. 누군가는 그걸 회피라고 부르실 수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회피였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건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도 했습니다. 현실에서의 저는 신입도 아니고 경력자도 아니고 그냥 정리 대상자였습니다. 말 그대로, '문제는 없지만 필요도 없는 사람.'
그런데 게임 속에서는 역할이 분명했습니다. 탱커는 탱커대로, 딜러는 딜러대로, 힐러는 힐러대로 제 몫이 있었습니다. 제 캐릭터가 없는 파티는 구성이 불완전했고, 제가 들어가면 완성됐습니다. 현실은 저를 여분 취급했고, 게임은 저를 구성원 취급했습니다.
이건 정신적으로 엄청난 차이였습니다. 인간은 '네가 있어야 돌아간다.'라는 말을 들을 때 버티는 힘이 생깁니다. 반대로 '없어도 돼.'라는 말을 반복해서 들으면 존재감 자체가 무너집니다. WOW에서 저는 '없어도 돼.'가 아니었습니다. '같이 하자'였습니다.
그 경험이 저를 한 달 동안 버티게 했습니다. 그건 단순히 도피가 아니라, 붕괴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구조물이었습니다. 저는 거기 매달려 있었습니다.
연말의 공백
두 번째 권고사직은 12월 중순이었습니다. 한 해가 정리되는 시기입니다. 보통은 연말엔 송년 모임도 있고, 만나서 술 한잔하면서 "올해도 고생 많았다."라고 말하는 자리도 생깁니다. 저는 그 모든 자리에 가지 않았습니다. 이건 단순히 의욕이 없어서가 아니라, 갈 자격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슨 낯으로 나가?’
‘나한테 축하할 게 뭐가 있어?’
‘사람들이 “요즘 어디 다니세요?”라고 물으면 뭐라고 답하지?’
‘나는 지금 소속이 없는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제가 실제로 혼자가 됐다고 느낀 것이 단순히 직장을 잃어서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사회적인 이름을 잃었습니다. “어디 다녀요?”라는 질문은 한국 사회에서 거의 자기소개와 같은 문장입니다.
그 질문에는 두 가지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하나, 당신은 소속이 있을 것이다. 둘, 그 소속은 당신을 설명할 것이다. 저는 그 두 가지 모두가 비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연말 약속을 모두 끊었습니다. 아무에게도 가지 않았습니다. 누가 어떻게 생각할까 보다, 그냥 스스로 그 자리를 못 견딜 것 같았습니다.
사람 많은 곳, 웃는 분위기, “잘 지냈지?”라는 인사 말투. 그 모든 것이 저를 뚫고 들어와 상처낼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상처를 막을 힘조차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모든 것에서 일단 빠졌습니다. 말 그대로 잠적했습니다.
어머니의 침묵
그 한 달 동안 어머니는 거의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밥 먹으러 나올 때 외에는 집 안에서도 어머니와 눈을 잘 마주치지 못했습니다. 제가 죄송하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나는 잘 살겠다고, 게임하겠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쳤는데 결과가 이게 뭔가.”
“결국 집에 다시 앉아 있는 철없는 애처럼 보이겠지.”
그 죄책감이 제 눈을 아래로 떨구게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다그치지 않으셨습니다.
“언제까지 이럴 거냐”라는 말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정신 차려야지”라는 말도 꺼내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 말이 맞잖아”라는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밥을 차려주셨습니다. 그것뿐이었습니다. 아마 마음속으로는 수천 가지의 불안이 올라오셨을 겁니다.
'얘가 무너지면 어떡하지.'
'다시 못 일어나면 어떡하지.'
'내가 뭐라도 말해야 하나.'
'아버지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하지만 어머니는 그걸 제게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그 침묵은 통제된 침묵이었습니다. 억지로 꾹 참고 만들어낸 침묵이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침묵 덕분에 저는 부서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습니다. 제가 그때 필요했던 건 해답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해라.”가 아니었습니다. 저에게 필요했던 건 그냥 당장 무너지지 않을 안전 구역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그걸 만들어주셨습니다. 그 안전 구역은 부끄럽게도 제 방이었고, 제 방 안의 컴퓨터 앞이었습니다.
조금씩 풀려가는 몸
그렇게 한 달 정도가 흘렀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12월 중순부터 다음 해 1월 중순 정도까지. 겨울 한 달. 그 한 달 동안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안에서는 아주 느리고 아주 작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처음 며칠 동안은 손발에서 힘이 빠져 있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 있는 일도 힘들고, 누워 있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도 귀찮았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저는 제 몸을 제가 운전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제 몸은 아주 조금씩 긴장을 풀기 시작했습니다.
잠을 자도 잠 같지 않던 상태에서, 어느 날은 잠이 실제로 휴식처럼 느껴지는 날이 왔습니다. 게임을 하면서도 그냥 기계적으로 키보드만 누르던 게 아니라, 상대와 농담을 주고받을 만큼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WOW 안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오프라인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조금은 제 속마음을 꺼냈습니다.
“취업을 했는데 잘렸어요.”
“또 2주 만에 잘렸어요.”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놀랍게도, 거기 있는 사람들은 저를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가르치려 들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이런 말을 들려줬습니다.
“아 그거 진짜 빡세네...”
“그럴 땐 그냥 쉬어야지.”
“지금은 몸 회복부터 해.”
단순한 말이었지만, 그게 제게는 굉장히 큰 의미였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때까지 ‘쉬는 것’ 자체를 허락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쉬면 죄책감이 자동으로 따라오는 상태였거든요.
그런데 누군가(심지어 나를 잘 모르는 사람)가 '지금은 쉬어도 된다.'라고 말해주는 걸 들은 순간, 제 안에서 아주 작은 긴장이 탁 끊어졌습니다. 마치 굳어 있던 어깨에서 조금씩 힘이 빠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아... 아직은 안 끝났구나. 그냥 쓰러진 상태일 뿐이구나.'
그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건 회복의 시작이었습니다. 물론 완전한 회복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죽지 않았다.'라는 감각은 분명히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의 의미
지금 돌이켜보면, 그 한 달은 제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정지’였습니다. 그전까지의 저는 계속 달렸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맞으면서 버텼고, 대학교 때는 전공 앞에서 도망쳤다가 다시 붙잡혔고, 대학원에서는 논문과 졸업 앞에서 밤새웠고, 학원에서는 목숨 걸고 코딩했고, 첫 회사에서는 몸을 갈아 넣어가며 UI를 뒤집어 고쳤고, 입원했고, 퇴원하고 돌아오자마자 팀이 해체됐고, 팀째로 옮겼다가 2주 만에 잘렸습니다.
멈춘 적이 없었습니다. 멈춘다는 것은 곧 뒤처지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늦는다는 것은 곧 도태된다는 의미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멈추는 게 강제로 찾아왔습니다.
그 한 달은, 제 생에 처음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살아 있는 것만' 한 시기였습니다. 그 한 달이 없었다면 저는 다시 일어설 힘조차 남기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저는 이미 소진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 한 달을 이렇게 부르고 싶습니다.
'사라지지 않기 위해 숨어 있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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