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아, 이제 이 아이는 나 없이도 자기 세계를 만들어 가는구나.”
아이와 함께 PC방에 갔던 날이 바로 그런 순간이었습니다. 게임이라는, 어쩌면 제게 가장 익숙한 세계에서조차 아이는 어느새 저보다 반 걸음 앞서 있었습니다.
저는 게임을 참 좋아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게임은 제게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창문 같은 것이었습니다. 혼자 플레이하는 게임도 좋지만, 늘 마음에 남는 순간은 결국 누군가와 함께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친구 집에 모여 한 화면을 보면서 손에 땀을 쥐고 버티던 대전 게임, PC방에서 줄줄이 붙어 앉아 밤을 새우던 시절. 웃음과 탄식, “한 판만 더!” 하던 외침들이 뒤섞여 있던 시간들 말입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고 가장 먼저 들였던 전자기기는 거창한 TV도, 비싼 오디오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닌텐도의 wii였습니다. 몸을 직접 움직이며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이라면, 아내도 재미를 느끼지 않을까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이 함께 웃고 소리치면서 저녁 시간을 보내는 풍경을 꿈꿨습니다. 하지만 제 상상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아내는 게임에 그다지 흥미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 나는 도통 재미를 모르겠어. 화면만 보고 있으면 머리도 아프고..”
아내는 제 취향을 존중해 주었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같이 하지는 않았습니다.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마음 한쪽에서는 서운함이 올라왔습니다. '같이 하면 얼마나 좋은데, 왜 이 즐거움을 모르지?' 하는 아쉬움이었습니다.
그러다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제 안에 한동안 숨겨져 있던 기대가 슬며시 얼굴을 들이밀었습니다.
'그래, 게임은 결국 같이 해야 재밌는 법이지. 아내 대신, 이제는 아이와 함께하면 되겠구나.'
아이와 처음으로 같이 했던 게임은 고전게임인 버블보블이었습니다. 알록달록한 화면, 단순한 조작, 반복되는 BGM. 저에게는 추억이고, 아이에게는 신기한 새 세계였습니다. 한 화면 안에서 같은 방향으로 달리고, 같은 적을 피해 다니고, 가끔 서로 방해도 하다가, 마지막에 “이번엔 우리가 이겼다!” 하고 소리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둘만의 비밀스러운 놀이 같았습니다.
조금 더 자라서는 마인크래프트를 함께 했습니다. 어떤 날은 같은 서버에 접속해 블록을 쌓고, 집을 만들고, 몬스터를 피해 도망 다녔습니다. 아이는 온라인 세계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디스코드로 떠들며 이야기를 나누고, 저는 한발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아, 요즘 아이들은 이렇게 친구를 사귀는구나.”
현관문을 나가 놀던 제 세대와는 다른 방식이지만,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웃고,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것. 방식만 조금 바뀌었을 뿐이지요.
그날도 평범한 오후였습니다. 아이를 밖에 내보내고, 저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아이가 집에 들어왔는데, 스쳐 지나가듯 코끝에 익숙한 냄새가 잡혔습니다.
담배 냄새였습니다. 순간적으로 가슴이 철렁했지만, 곧바로 '설마 초등학생이 벌써 그럴리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 얼굴에는 흔적이 전혀 없었으니까요. 대신 떠오르는 장소가 하나 있었습니다.
PC방.
“어디서 놀다 왔어?”
아무렇지 않은 척 물어보자, 아이는 숨기지 않고 말했습니다.
“친구들이랑 PC방 갔다 왔어.”
역시나 싶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PC방은 몸에 안 좋다', '공부에 방해된다'는 잔소리가 먼저 튀어나왔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이가 이제는 또래와 어울릴 시기가 되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혼자 방 안에서만 게임을 하는 것보다, 친구들과 함께 웃고 떠드는 것도 분명 필요한 시간이니까요.
그러자 문득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요즘 PC방은 어떤 모습일까? 내가 다니던 시절과는 많이 다를까?라고 말이죠. 언제부턴가 저는 PC방을 ‘아이들이 가는 곳’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발을 들여놓기에는 어쩐지 나와 상관없는 공간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고, PC방에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하니, 그곳이 어떤 곳인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어 졌습니다.
“다음에 아빠도 같이 가면 안 될까?”
제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아이의 눈이 반짝였습니다.
“진짜? 아빠가 나랑 PC방 같이 가준다고? 완전 좋은데!”
마치 어린 시절, 친구와 처음 PC방에 가보던 제 표정이 저를 향해 돌아온 것만 같았습니다. 우리는 주말 오후, 동네 PC방으로 향했습니다.
길모퉁이를 돌아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 접어들자, 예전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살짝 어두운 복도,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모니터 불빛, 문 틈 사이로 번지는 키보드 소리와 웃음소리.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었지만, 동시에 어딘가 더 정돈되고 밝아진 느낌도 있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특유의 공기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커피, 라면, 컴퓨터 본체의 뜨거운 열, 사람들의 체취가 뒤섞인, PC방만의 냄새였습니다. 예전보다 환기 시스템이 좋아졌는지, 흡연실이 따로 있어서 그런지 담배 냄새는 많이 줄어 있었습니다. 제게 익숙했던 것은 컴퓨터와 모니터, 키보드였습니다. 하지만 이 날은 조금 다른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아빠, 이쪽 자리가 좋아. 키보드랑 마우스가 다른 자리보다 여기가 괜찮아.”
아이의 표정은 어느새 PC방 가이드였습니다. 마치 예전에 PC방 선배들이 “저쪽 자리가 명당이야”라며 안내해 주던 것처럼, 아이는 자연스럽게 PC방의 규칙과 노하우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자리에 앉자, 아이가 먼저 컴퓨터 전원을 켰습니다. 키보드와 마우스를 능숙하게 움직이며, 로그인 화면을 띄우고, 사용 시간을 선택하는 법을 차분히 알려주었습니다.
“아빠, 시간은 이렇게 먼저 결제하고, 게임은 여기 아이콘 누르면 바로 들어갈 수 있어. 요즘은 자리에서 음식도 시켜서 먹을 수 있어.”
이 장면이 참 신기했습니다. 예전에는 늘 제가 컴퓨터를 고치고, 제가 게임을 설치하고, 제가 아이를 도와주던 쪽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역할이 뒤바뀌었습니다. 제가 약간 어리숙한 사람처럼 앉아 있고, 아이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버튼을 누르고, 화면을 전환시키며 저를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아주 단순한 생각이 조용히 스쳤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이 느끼는 가장 큰 행복 중 하나로 ‘타인을 돕는 경험’을 꼽습니다. 도움을 주는 사람은 자신의 유능감을 느끼고, 필요한 존재라는 감각을 얻습니다. 도움을 받는 사람은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과 함께 관계의 따뜻함을 느낍니다. 결국 이 과정 전체가 양쪽 모두에게 긍정적인 경험이 됩니다. PC방 자리에서 아이에게 도움을 받으면서, 저는 그 사실을 새삼 체감했습니다.
“아빠, 이 게임 같이 할래?”
“여기, 이 서버가 제일 핑도 잘 나오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어.”
“키보드는 이게 더 눌리기 좋아. 아빠는 이쪽 써.”
아이가 저를 챙기는 모양새가 참 귀엽고도 든든했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아이의 손을 잡고 세상을 설명해 주었다면, 이제는 아이가 자신의 세상 일부를 제 손에 쥐어주는 듯했습니다. “아빠, 내가 놀고 있는 세계는 이런 곳이야. 같이 와볼래?” 하고 초대장을 건네는 느낌이었습니다.
우리는 한동안 같은 게임을 했습니다. 헤드셋을 쓰고, 화면을 바라보며, 마우스를 움직이고, 가끔은 동시에 감탄하거나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옆자리에서는 친구들과 목청 높여 떠드는 학생들이 있었고, 맞은편에서는 누군가 혼자 조용히 RPG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모든 풍경을 한 발짝 떨어진 어른의 눈으로 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속에 다시 녹아드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아, 나도 한때는 이들이었지.'
하지만 이제 저는 아이와 함께 이 공간을 경험하는 사람입니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이곳을 보는 동시에, 부모의 시선으로도 이곳을 살펴봅니다.
'자리 간격은 적당한가, 조명이 너무 어둡지는 않은가, 직원들은 친절한가, 게임 외의 위험 요소는 없는가..'
언뜻 보기에는 그저 컴퓨터가 빼곡한 공간이지만, 부모의 눈으로 보면 체크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결론은 단순했습니다.
'아이가 PC방을 가는 건 막을 수 없다. 그렇다면 함께 가서, 어떤 곳인지 함께 알아가는 게 낫다.'
아이의 생활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대신, 그 아이가 발 딛는 장소들을 직접 경험하고, 이해하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PC방을 다니지 못하게 막는 것보다, 어떤 PC방이 더 안전하고, 어떤 습관이 건강한지 함께 이야기하는 쪽이 더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임을 좋아하는 아빠로서 이날의 PC방 나들이는 여러 의미에서 저에게 선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첫째, 오랫동안 발을 들이지 않았던 공간에 다시 들어가 보며, 제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아이의 현재가 한 자리에 포개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둘째, 아이가 저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 PC방의 이모저모를 설명해 주는 모습을 보며, 아이가 어느새 제 자리를 일부 이어받아 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셋째, 단순히 화면 속 게임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 하나의 문화를 함께 경험한 시간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습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아이의 기억 속에도 '아빠와 함께 간 PC방'이라는 장면이 하나 남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언젠가 아이가 더 자라 어른이 되었을 때, 어떤 날 술자리에서, 혹은 후배에게 이런 이야기를 할지도 모릅니다.
“우리 아빠 게임 되게 좋아했거든. 한 번은 나랑 같이 PC방도 갔어. 그때 내가 자리 골라주고, 컴퓨터 켜주는 법도 알려줬다?”
그 말을 듣게 되는 날이 오지 않더라도 괜찮습니다. 그저 지금, 아이와 나란히 앉아 같은 화면을 바라보며, 같은 게임을 하고, 같은 공간의 공기를 마셨던 이 시간이 제게는 충분히 소중합니다. 아이와 함께 PC방을 다녀온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더 크기 전에, 아직 나를 친구처럼 받아들여 줄 때, 이렇게 함께 어울리는 시간을 더 많이 만들어야겠다.”
언젠가는 제가 아이의 세계에 초대받지 못하는 날도 오겠지요. 친구들과의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아지고, 연인과의 약속이 우선이 되는 시기가 올 것입니다. 그때가 오기 전에, 지금 이 시기를 붙잡고, 함께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많이 해보는 것. 그게 지금의 제게 주어진 작은 숙제이자 기회인지도 모릅니다.
PC방에서 돌아온 그날 오후, 문득 아이 방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모니터 불빛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도 다행이다. 이 아이가 어떤 세계를 좋아하는지, 그 세계에 나도 조금은 발을 들여놓을 수 있어서.'
유튜브로 게임 공략을 찾고, PC방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온라인 서버에서 함께 건물을 짓고, 뜻 모를 신조어를 쓰는 요즘 아이들의 세계는, 어쩌면 제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세계의 일부를 함께 경험해 보려는 시도 자체가, 아빠로서 제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작은 신호일 것입니다.
'나는 네 세계에 관심이 있다. 그리고 그 세계를 함께 나누고 싶다.'
아이와 함께 PC방에 다녀온 그 하루는, 그 신호를 조금 더 분명하게 보낸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