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치료의 '핵심 신념, 도식(schema)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자라오면서 반복된 경험 속에서 '나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나는 버림받을 사람이다', '나는 사랑받기 어렵다'와 같은 깊은 수준의 믿음(핵심 신념)을 형성하게 됩니다. 현재의 어떤 상황을 볼 때도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핵심 신념이라는 '렌즈'를 토대로 해석하게 됩니다.
이번에도 또, 같은 자리에서 무너졌다.
살다 보면 '아.. 또 이렇게 행동이 나와버렸네'라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장소도, 사람도, 상황도 조금씩은 다른데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느낌으로 이어진 행동이 늘 똑같을 때가 있습니다.
회사 회의실, 점심시간 식당, 주말 저녁 혼자 있는 방. 풍경은 매번 달라지는데 마음속에서는 같은 장면이 반복 재생됩니다. 저는 어떤 상황이 주어지면 책임감이 발동하며 집중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런데 함께 하는 사람이 저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거나, 의욕이 없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굳어버립니다.
'나만 혼자 열심히 하는 건가..'
'또 혼자 이러네..'
'나를 무시하는 건가..'
예전의 저는 이런 순간마다 '왜 나만 혼자 이렇게 억울하지?'라며 제 탓부터 했습니다. 그냥 넘기거나, 내 마음을 잘 표현하면 되는 일을 매번 이렇게 깊은 우울감에 빠지게 되면 스스로를 다그치게 됩니다. 그러면 어느새 감정은 더 깊이 가라앉아 버리곤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반복되는 감정에는 뿌리가 있다'라는 문장을 읽고, 처음으로 제 감정을 거꾸로 따라 내려가 보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회의 실 한가운데, '또'라는 단어가 떠올랐던 날
그날도 평범한 월요일이었습니다. 회의실 가운데에 앉아, 모니터를 함께 보며 다음 분기 계획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미리 준비해 둔 제 아이디어가 하나 있어서 타이밍을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여기 이 부분은 지금 현재 진행 상황을 보면 개발을 거의 다 변경해야 할 것 같은데, 일정을 다시 조정해 보면 어떨까요?"
말을 던지고 나니 회의실의 공기가 아주 잠깐 멈춘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팀장이 짧게 "음... 일단은 다른 계획부터 다 보죠"라고 짧게 말했습니다. 그 뒤로 화면은 다른 슬라이드로 넘어갔고, 회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계속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제 안에서는 작은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또.. 혼자만 고민하는 건가..'
가슴이 쿡 내려앉는 느낌. 얼굴에 열이 확 오르는 느낌. 그 와중에도 억지로 웃는 표정을 짓고 있는 제 모습이 어떨지 눈에 보듯 뻔했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복도로 나왔을 때, 머릿속에는 앞서 생각한 문장이 계속 떠다녔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감정은 '짜증'과 '서운함'이었지만, 그 안에는 훨씬 오래된 문장이 조용히 숨겨져 있었습니다.
가지에서 뿌리까지 감정의 나무를 거꾸로 내려가 보기
그날 밤 퇴근 후 집에서 책상 위에 놓인 감정 노트를 꺼내고 오늘의 감정을 한 번만 제대로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가지'부터 적었습니다. 그 순간 느꼈던 감정들을 차례대로 적어봤습니다.
'무시당한 느낌', '수고를 알아주지 않는 것 같은 서운함', '생각보다 크게 올라온 분노' 그다음에는 '줄기'를 적었습니다. 그 상황을 제가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적는 칸입니다. '내 말을 끊고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내 의견은 중요하지 않고, 혼자 고민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여기까지 적고 나니 오늘 하루의 감정을 대략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읽었던 책에서 거기서 한 단계 더 내려가 보라고 권하고 있었습니다.
뿌리. 즉 제가 상황 가운데 해석의 바닥에 깔려 있는 오래된 핵심 신념과 기억을 찾아보라는 것이었죠. 그래서 조용히 눈을 감고 내가 이렇게 느끼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을 거꾸로 더듬어 올라갔습니다.
생각보다 금방 하나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초등학교 어느 날, 중간고사를 모두 마치고 성적이 나온 날이었습니다. 올 '수'라는 성적으로 아빠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헐레벌떡 뛰어서 집에 도착한 날이었죠.
"아빠. 이번에 전 과목 다 합쳐서 5개밖에 틀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모든 과목이 '수'에요!"
저는 정말로 열심히 했었고, 성적에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반응은 제 예상과 전혀 달랐습니다. 아버지는 '5개 틀린 문제'에 집중하셨고, 모든 과목이 '수'라는 성적에는 만족하지 못하셨습니다. 우수한 학생이라는 선생님의 학생기록부 문장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퉁명스럽게 한 마디 툭 던지셨죠.
"더 잘해 임마"
저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성적표를 들고, 제 방으로 되돌아와 책상 의자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 이후로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아버지는 만족하지 않으셨고 칭찬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제 마음속에는 지금 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해도, 누군가가 더 열심히 하라고 말하거나, 내가 열심히 한 노력의 결과를 알아주지 못한다고 느끼면 깊은 우울감에 빠져들었습니다.
어쩌면 그때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나, 선택받지 못하는 나'라는 도식이 마음 한구석에 깊이 자리 잡게 되어, 훗날 회사 회의실에서 의견이 가볍게 지나쳐지거나, 무언가 몰입해서 일을 진행해도 함께 하는 사람이 그 노력을 인정하지 않으면 '아버지와 대화를 나눴던 안방'이 다시 열리듯 똑같은 감정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던 겁니다.
과거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건네 본 한마디
책에서는 '그때의 나와 대화해 보라'라고 제안합니다. 그래서 눈을 감고 예전의 기억으로 다시 돌아가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물론 내면의 어린아이를 마주할 때 견디기 힘들 정도로 감정이 올라오면 억지로 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이 감당할 정도의 기억을 꺼내는 연습을 먼저 해보고, 차츰 강도가 높은 예전 기억을 찾아봐야 합니다.
성적표를 들고 해맑게 웃으면서 숨이 차도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집에 도착해서 안방으로 달려가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버지와 대화하는 제 손에는 모든 과목이 '수'라고 적혀있었고, 아버지는 퉁명스럽게 "더 잘해 임마"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시무룩해하는 아이 옆에 지금의 제가 조용히 앉아 말을 겁니다.
"OO야. 진짜 노력 많이 했구나. 그렇게 인정받고 싶었던 사람한테 앞으로 더 잘해라는 말을 들었으니 얼마나 서운했겠니. 근데 아버지가 더 잘하라고 말하는 건 앞으로도 열심히 공부해 보라는 격려였을 거야. 아버지는 말주변이 없어서 자신의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으시는 분이잖아."
상상 속 장면인데도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찌릿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내면의 아이에게 한 번도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계속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어. 더 열심히 해.'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오래된 문장을 조금씩 다른 말로 바꿔보는 연습을 해봤습니다. '충분히 최선을 다했고 잘한 일이야. 네가 잘못한 건 없고, 그렇게 느끼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야.'라고 말이죠.
아마도 반복되는 감정의 근원을 찾아간다는 건 큰 진실을 발견하는 일이라기보다, 한때 상처받았던 내면 아이를 조금 더 따뜻한 눈으로 다시 만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나는 예전과 같은 아이가 아니다
물론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고 해서 지금의 감정이 단번에 바뀌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회의 시간에 의견이 묵살되거나, 평가에서 잘하고 있지만 조금 더 노력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여전히 아무 말 없이 혼자 우울감을 느끼는 날이 있습니다.
달라진 건 아주 작은 부분입니다. 감정이 올라올 때 저는 이제 예전보다는 조금 더 빨리 '아.. 또 그때 감정이 왔구나. 더욱 잘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그 아이가 다시 반응하고 있구나'라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지금 팀장이 압박하고 있다'라는 생각이 전부라고 믿었다면, 이제는 그 옆에 '과거의 상처받은 내면 아이가 함께 튀어나왔다'라는 해석을 살짝 붙여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조금 다른 행동도 시도해 봅니다. 평가 면담이 끝난 뒤, 팀장 자리로 조심스럽게 다가가 말해봅니다.
"저는 최선을 다해서 일을 했다고 생각했는데요.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더 힘내달라는 말을 들으면 지금까지 한 일이 부정적으로 느껴져서 압박감을 느낍니다."
사실 이런 말을 처음에 꺼내는 건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마치 '내가 이렇게 느끼는 건 당신 잘못이야'라고 비난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말을 꺼내 본 날 돌아온 대답은 생각보다 단순했습니다.
"아. 더 힘내달라는 건 그동안 일했던 내용을 부정하는 건 아니고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 힘내 달라는 응원의 의미였습니다."
물론 모든 상황이 이렇게 따뜻하고, 매끄럽게 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해집니다. 반복되는 감정의 근원을 안다는 건, 같은 자극이 나타났을 때 조금 다른 선택을 해볼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반복되는 감정은 오래된 나의 이야기.
이제는 감정이 크게 요동치는 날이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려 합니다.
"이 감정, 나에게 처음 찾아온 건 언제였지?"
"그때의 내면 아이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을까?"
"그 내면 아이에게 지금의 나는 뭐라고 말해주고 싶을까?"
반복되는 감정은 내가 약해서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오래도록 깊이 묻혀 있던 이야기가 여전히 힘이 있다는 증거인지도 모릅니다. 그 이야기를 억지로 지워버리려 하기보다 조금 천천히, 조금 다정하게 다시 읽어 내려가는 일. 즉, '감정의 근원 찾기'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삶의 태도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 밤 잠들기 전에 혹시 마음에 자주 떠오르는 문장이 하나 있다면 조용히 노트에 적어보면 어떨까요.
"나는 왜 늘 이 말부터 떠올릴까?"
그 문장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언젠가 자신의 내면 아이가 교실 어딘가, 운동장 어딘가, 혹은 집구석 어딘가에서 살짝 고래를 들고 서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내면 아이에게 한마디만 건네줄 수 있다면 용기를 내보세요.
"그때 너는,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었어. 이제는 내가 네 편이 되어 줄게."
그 순간부터 반복되는 감정의 이야기는 조금씩 다른 결말을 향해 조용히 방향을 틀기 시작하리라 믿습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mindunfold
#심리치유 #감성에세이 #내면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