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인 앨버트 메라비언의 연구에 따르면 감정과 태도를 전달할 때 우리가 받는 인상은 대략 말의 내용이 약 7%이고, 목소리의 톤과 속도, 강도가 약 38%이며, 몸짓, 표정, 자세 같은 시각 정보가 대략 55% 정도로 나뉜다고 합니다.
즉, "나. 괜찮아"라는 문장 하나를 듣더라도 우리는 단어보다 얼굴과 몸, 목소리에서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읽어냅니다. 그래서 입으로는 "괜찮아"라고 말해도, 표정이 굳어 있고, 목소리가 갈라지면 상대방은 '전혀 괜찮지 않구나'라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 저는 누군가가 "아니에요. 괜찮아요"라고 말하면 의식적으로 그 사람의 표정부터 보려고 합니다. 눈 밑이 살짝 처져 있는지, 입술이 굳어 있는지, 어깨가 축 내려가 있는지 살펴봅니다. 언젠가부터 저에게는 '괜찮아'라는 말보다 그 말이 나오는 얼굴과 자세가 더 큰 자막처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깨달음은 타인을 관찰하면서부터가 아니라 저의 표정 때문에 피드백을 받은 날부터 시작된 것 같습니다.
"말투는 괜찮은데, 표정이 너무 기운이 없어 보여"
어느 날 저녁,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였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아내와 인사하고 난 직후 아내는 "오늘 무슨 일 있었어요? 기운이 하나도 없는 얼굴이네"라며 안부를 물었습니다.
저는 놀라서 손을 저었습니다. "아니야. 아무 일도 없어. 그냥 좀 피곤해서 그래" 제 귀에는 제가 한 말이 나름 부드러운 톤으로 들렸습니다. 회사에서 쓰는 건조한 말투가 아니라 힘을 조금 뺀, 집에서 쓰는 말투였으니까요. 그런데 아내는 잠시 저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피곤한 얼굴이 아니라. 진짜 기분이 나빠 보이는 얼굴인데?"
그 말을 듣고서 화장실 거울을 슬쩍 들여다봤습니다. 눈썹 사이 미간은 주름이 굵은 선을 드러내고 있었고, 입술은 얇게 다물려 있었으며, 턱은 꽉 다물어진 채 앞으로 살짝 나가 있었습니다.
'음.. 이런 내가 봐도 얼굴에 뭔가 문제가 있어 보이네. 이런 얼굴로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네.'
그제야 이해가 됐습니다. 오늘 하루 종일 꽉 눌러두었던 여러 감정들, 아쉬움, 답답함, 억울함 같은 것들이 말보다 먼저 얼굴과 턱, 어깨에 가서 자리 잡고 있었던 겁니다.
머리로는 '사소한 일이다. 넘어가자'라고 정리해 두었지만, 몸은 그 말을 믿지 않았던 것이죠. 아내 입장에서 보면 "오늘 어땠어?"라는 질문에 돌아온 건 "그냥 피곤해"라는 말이 아니라, 굳어 있는 얼굴과 낮고 짧게 끊어지는 목소리, 그리고 슬리퍼를 끌고 들어오는 무거운 걸음이었을 겁니다.
심리학자 메라비언의 말대로라면 그날 아내에게 전해진 저의 신호 중 7%는 "피곤해"라는 단어였고, 93%는 "나 지금 예민하니까 건드리지 마"에 가까운 비언어 메시지였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서로의 비언어에 굉장히 예민하다
생각해 보면 저도 타인을 대할 때 말보다 몸짓을 먼저 읽으면서 살아왔습니다. 회의실에서 "괜찮습니다. 저는 이 안건에 동의해요"라고 말하는 직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저는 늘 그의 손과 어깨를 보게 됐습니다. 손가락은 계속 책상을 두드리고 있었고, 의자 등받이에는 몸무게를 싣지 못한 채 상체만 앞으로 살짝 기울어 있고, 눈은 슬라이드를 보지 않고 테이블의 한 점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죠.
그럴 때면 제 마음속에는 '아.. 이 사람은 전혀 괜찮지 않구나. 그냥 갈등을 피하고 싶어서 동의한다고 말하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정작 저는 저의 비언어 신호에 그렇게 예민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말을 조심해서 했으니까. 상대방도 분명히 그렇게 듣고 이해했을 거야.' 이렇게 믿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감정은 뇌와 몸과 표정과 목소리가 동시에 반응하는 전신 이벤트라서 말만 따로 떼어 조절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저 사람 오늘 좀 힘들어 보인다'라는 느낌을 우리는 생각보다 상당히 정확하게 맞히곤 합니다. 물론 정확하게 알아차리기는 힘들어도 기분이 좋은지, 아니면 어딘가 불편한지는 대체적으로 알아차립니다.
"혼내는 줄 알았어요"라는 피드백.
한 번은 회사에서 동료에게 성심성의껏 피드백을 하고 난 후에 오해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함께 일하는 기획자가 작성한 문서를 보고 저는 나름 친절하고 열정적으로 피드백을 해주었습니다.
"전체적인 방향은 괜찮은데요. 여기랑 여기 부분은 개발하려면 더 상세히 정리가 되어야 해요. 이렇게 쓰면 보는 사람이 조금은 헷갈릴 수 있겠네요."
단어만 놓고 보면 그리 거친 말은 아니었습니다. 욕을 한 것도 아니고, "왜 이렇게 밖에 못 써요?"라고 비난한 것도 아니니까요. 그런데 며칠 뒤, 다른 동료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날 대화하는 모습을 보니까 엄청 혼내는 줄 알았어요"
혼내는 줄 알았다니. 저는 몹시 억울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열성적으로 알려줄 것뿐이라며, 오해를 풀긴 풀었습니다. 그런데 열성적으로 알려준 내가 뭘 잘못했는지 퇴근 후에 천천히 떠올려 봤습니다. 저는 그 동료에게 설명할 때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목소리는 어땠는지, 자세는 어땠는지를 하나씩 복기해 봤습니다.
문득 동료에게 설명하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메모장에 설명을 하는 순간에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크고 날카롭게, 그리고 빠르게 설명하는 저의 모습을 알아차렸습니다.
사실 열성적으로 말했다고 했지만, 몸은 이미 심판자 모드였을지도 모릅니다. 표정, 자세, 목소리가 보내는 메시지는 "괜찮은데, 여기만 고쳐보죠"가 아니라, '지금부터 내가 문제점을 지적할 거니까 잘 받아 적을 준비해라'에 가까웠을지도 모릅니다.
그 뒤로 저는 누군가에게 설명을 하는 자리에서는 일단 목소리의 톤을 낮추고, 천천히 말해야 한다는 걸 조금씩 체감하고 있습니다.
거울과 녹화 영상 앞에서 배운 것들
비언어 감정 표현을 알아채고 조절하는 간단한 훈련을 소개해 봅니다. 저는 거울을 보며 기쁨, 분노, 당황, 불안을 지어보는 표정을 연습해 봤습니다. 가끔은 한 단어를 주제로 2분 정도 스마트폰으로 녹화하고, 목소리 톤과 표정을 확인해 보기도 합니다.
처음 영상을 촬영하고 다시 살펴보면 정말이지 '내가 이런 표정을 지었나'라며 다른 모습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공유하고 피드백을 보내 달라고 하면 어김없이 '경직'이라는 단어가 나오더군요. 피드백을 듣고 다시 영상을 재생해서 보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분명 평범하게 말한다고 느꼈는데도 불구하고, 눈은 카메라를 정확하게 주시하지 못하고, 입술은 생각보다 말라있어서 덜 움직이고, 목소리는 끝을 또렷하게 맺지 못하고 중간에서 툭 끊기는 부분도 많았습니다.
이런 영상을 녹화하고 재생하는 연습을 해보면서 '아.. 내가 다른 사람 앞에서 말할 때 이런 비언어 신호를 보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네'라고 생각했습니다. 발표를 할 때마다 청중이 조금 답답한 표정으로 집중하지 못했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그 뒤로는 발표 전에 슬라이드만 확인하지 않고, 어깨를 한 번 크게 올렸다가 툭 내리고, 턱의 힘을 풀고, 첫 문장을 말하기 직전에 숨을 한 번 깊이 들이쉬는 몸의 준비 동작도 챙겨보려고 합니다. 내용을 완벽하게 준비하는 것 못지않게 그 내용을 실어 나르는 몸과 표정, 목소리의 상태가 중요하다는 걸 이제는 인정하게 된 셈이지요.
비언어를 바꾼다는 건, 가식을 늘리는 일이 아니다
비언어를 의식적으로 바꾼다고 하면 어떤 분들은 가면을 쓰는 것 아니냐며 걱정하기도 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연습하고 관찰한 결과 비언어를 돌본다는 것은 '가짜 웃음 짓는 법을 배우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지금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먼저 알아차리고, 그 감정을 상대에게 어떻게 보여주고 싶은지 선택하는 힘을 기르는 일에 가까웠습니다.
분노가 올라온 뒤에 팔짱을 끼고 눈을 치켜뜨는 대신, 잠깐 숨을 고르고 어깨를 편 채 "이러저러한 부분이 저는 조금 불편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내 감정을 숨기는 게 아니라 더 건강한 방식으로 꺼내 놓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결국 심리학자 메라비언의 7-38-55 법칙은 우리에게 '말을 고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몸과 표정, 목소리가 함께 바뀌어야 진짜 소통이 일어난다'라는 메시지를 주는 듯합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저는 키보드를 치는 제 손가락과 어깨를 한 번씩 관찰해 봅니다. 혹시 쓸데없이 힘이 들어가 있지는 않은지, 눈썹이 괜히 찌푸려져 있지는 않은지. 비언어를 완벽하게 관리하는 건 프로 연기자도 어려워하는 영역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어떤 신호를 주고 있는지 만큼은 내가 먼저 알아차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하루 지냈던 상황을 잠깐 생각해 보며, 누군가에게 '괜찮아요'라고 말했던 순간, '아니에요. 전 뭐 상관없어요'라고 말했던 순간, 혹은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상대가 '오늘 기분이 안 좋아 보여요'라고 말하는 순간이 있었다면 표정, 몸짓, 목소리만 슬로우 모션으로 다시 본다고 상상해 보면 어떨까요.
아마 거기에는 말로는 다 하지 못했던 진짜 마음이 조용히 흘러나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가장 먼저 알아차려 줄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바로, 그 장면을 떠올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나'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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