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수용한다'라는 문장을 책에서 읽었을 때 저는 솔직히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싫은 감정은 줄이고, 좋은 감정을 늘려야 하는 것 아닌가? 왜 굳이 불편한 감정을 받아들여야 하지?'라고 반감이 생겼습니다.
제 머릿속에서 감정은 기쁨, 설렘, 감사와 같은 좋은 감정은 붙잡아야 하고, 분노, 슬픔, 불안은 나쁘니까 빨리 없애야 할 것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화가 나면 '이런 걸로 화내면 안 되지'하거나, '나만 참으면 아무 문제없어'라며 눌러 버리고, 울컥하면 '여기서 울면 찌질해 보이겠지'하고 슬픈 감정을 억지로 참았습니다.
겉으로는 속과 다르게 "괜찮아요'를 입에 달고 살았지만, 마음은 점점 더 좁아지고 예민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보내면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모를 정도의 감정 불구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심리학 책에서 '감정은 없애야 할 문제가 아니라, 이해해야 할 신호입니다'라는 문장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 문장이 제 마음에 조용히 박혔습니다. 혹시 저는 그동안 이 신호를 제대로 읽어보기도 전에 '조용히 해!'라며 입을 막아왔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정을 눌러놓고 '괜찮다'라고 말하던 시절
예전 회사에서 클로즈 베타 테스트 중에 제가 개발했던 내용에 큰 문제가 생긴 적이 있습니다. 아주 간단한 개발이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실수 덕분에 팀 전체 일정이 꼬여 버린 날이었지요. 팀장님이 제 자리로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음부터 조금 더 꼼꼼히 개발하고 테스트를 진행해야겠네요."
말투가 날카롭지도 않았고, 지적 자체도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내면에서는 생각보다 큰 파도가 일었습니다. '아.. 나는 왜 항상 이 모양이지'라는 생각의 끝에는 죄책감이 생겼고, 가슴이 쿡 내려앉은 기분으로 얼굴이 뜨거워졌습니다.
당장이라도 자리에 앉아 눈물 한 바가지를 쏟고 싶었지만 머리 한쪽에서는 '이 정도로 흔들리면 안 되지. 그냥 아무렇지 않은 척 해.'라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평소보다 더 밝은 목소리로 "제가 더 신경 쓰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테스트 기간이 끝나고 버그를 고치고 일정을 마무리한 상태에서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창문에 비친 제 얼굴은 이상할 만큼 무표정했습니다. 머리로는 '별일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다'라고 말하면서도, 몸은 어깨가 축 처지고, 발거음이 무겁고, 집에 도착해서도 아무것도 하기 싫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제 마음은 '나는 창피하다. 실망스럽고 두렵다.'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누군가 '괜찮다'라고 말해주면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그 마음을 들어주는 대신 그 감정에게 '이런 일로 흔들리는 건 나약한 거야'라며 강하게 압박했습니다.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겉에서 보이지 않을 뿐 속으로 더 깊이 내려가 앉아 버렸습니다.
'억제'와 '수용'은 전혀 다른 이야기
감정을 공부하면서 제일 먼저 배운 건 감정을 다루는 두 가지 방식이었습니다. 억제는 '그만 느껴! 빨리 사라져'라면 수용은 '아.. 지금 내 안에 이런 감정이 올라오고 있구나'라며 감정을 그대로 알아차리는 겁니다.
그런데 저는 어린 시절부터 늘 '억제'를 배우며 자랐던 것 같습니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우는 거야', '그 정도는 너만 참으면 모두가 편해져', '화를 내면 지는 거야'라는 식으로요.
부정적인 감정은 표현하면 안 되는 것, 참아야 '성숙하고 괜찮은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여러 번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서도 감정이 올라오면 제일 먼저 감정을 차단하려고 애씁니다. 그런데 감정을 억누를수록, 그 감정은 더 강해지고 더 오래 남는다는 사실을 조금씩 몸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40대가 되기 전에는 신체가 건강해서 여러 스트레스와 불편한 감정을 이겨낼 힘이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부터 회의에서 억울했던 감정을 말하지 못하면 가족에게 괜히 별것 아닌 일로 날을 세우곤 합니다. 슬픔을 억지로 숨기고 돌아서면, 아주 사소한 일에도 눈물이 터져 나오는 식입니다.
이제는 감정이 올라오면 예전처럼 바로 눌러버리기보다 먼저 '아.. 지금 내 안에 감정이 올라오고 있구나. 그럴 만도 하지. 이런 상황이면 누구라도 그럴 수 있어'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해주려고 노력합니다. 이 한마디가 억제와 수용의 경계를 가르는 첫 단계가 되어 주었습니다.
1단계: 아.. 내가 지금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구나
어느 날 퇴근길에 지하철을 탔는데, 앞에 서 있던 사람이 갑자기 뒤로 밀리면서 저의 발을 꽤 세게 밟았습니다. 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며 다시 앞을 막고 섰습니다. 순간, 가슴에서 훅 올라오는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뭐야.. 지금? 사람 발을 밟아 놓고 사과도 없네.'
예전의 저는 그 자리에서 바로 생각을 눌러버렸을 겁니다.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가도 괜찮다고, 괜히 말하면 싸움만 나니까 예민하게 굴지 말자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날은 일부러 속으로 '아.. 지금 화났구나.'라며 말해 봤습니다.
단지 감정의 이름을 붙였을 뿐인데 신기하게도 조금 전까지 온몸을 휘감던 열기가 조금은 가라앉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상황이 바뀐 것도 아니고, 사람이 사과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바뀐 건 단지 제가 느낌 감정에게 '그래. 너 거기 있구나'라고 말을 걸어준 것뿐이었습니다. 감정 수용의 1단계는 생각이나 판단 없이 그저 감정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입니다.
"나는 지금 초조함을 느끼고 있다."
"나는 지금 서운함을 느끼고 있다."
"나는 지금 불안을 느끼고 있다."
감정이 '틀렸다. 맞다'를 따지기 전에 '있다. 없다'부터 인정해 주는 것이 바로 감정의 수용입니다. 거기서부터 작은 변화가 시작됩니다. 물론 수용하기 전에는 인식이 먼저입니다. 내가 이런저런 감정을 느끼는 순간을 알아차리고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수용까지 왔다면 상당히 진전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단계: 감정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연습
감정이 올라올 때 우리는 보통 '빨리 없애야 한다'라는 마음으로 달려듭니다. 어린 시절부터 이러한 형태의 교육으로 감정을 빨리 없애려고 행동했다면 어른이 된 후에도 여전히 빨리 없애야 할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행동합니다.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거나, 핸드폰을 붙잡고 영상을 계속 보거나, 억지로 농담을 하면서 분위기를 바꾸려 합니다.
물론 그때는 잠깐 나아지는 것 같지만, 감정은 금방 다시 고개를 듭니다. 그래서 두 번째 단계에서는 감정을 없애려 하기보다 그 감정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연습을 합니다. 주말 밤, 괜히 마음이 가라앉는 날이 있습니다. 특별히 힘든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문득 '나는 퇴직하면 뭐 하고 살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먹먹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그럴 때 게임을 켜거나, 유튜브 쇼츠를 끝없이 내리거나, 야식을 먹으면서 그 기분을 덮어버리려고 했습니다. 요즘은 조금 다른 선택을 해보려고 합니다. 조용히 등을 기대고 앉아,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살펴보는 명상을 해봅니다.
'지금 이 감정은 내 몸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가슴이 텅 빈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목이 콱 막힌 것 같기도 하고, 배 쪽이 묵직해지기도 합니다. 그 느낌을 잠깐 바라보면서 속으로 이렇게 말해 봅니다.
'그래. 거기 있어도 괜찮아. 너를 당장 내쫓지 않을게. 너는 내 일부일 뿐. 전체는 아니야.'
감정을 하나의 방문자라고 상상해 보면 조금 더 수월해집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손님처럼 내 안에 불쾌함, 두려움, 슬픔이 들어왔을 때 문을 쾅 닫고 "나가!"라고 소리치기보다, "그래. 잠깐 앉아 있어. 너 왜 왔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일단은 여기 자리를 내줄게." 이렇게 말해보는 연습입니다.
감정에게 자리를 내어준다는 것은 그 감정에 휩쓸려 행동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감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조용히 허락해 주겠다는 뜻입니다.
3단계: 나에게 다정하게 말 걸어주는 법
감정 수용의 마지막 단계는 '자기 연민'의 언어를 사용하는 일입니다. 저는 이 부분이 가장 어색했습니다. 남이 힘들다고 하면 "그럴 수 있죠. 많이 힘드셨겠어요"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저에게는 그런 말을 거의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실수를 하면 '또 이러네. 나는 진짜 왜 이럴까', 지치면 '다른 사람들은 잘 버티는데 너는 왜 그래'라면서 스스로를 다그치는 데에는 유난히 재능을 보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 어떤 책에서 문장을 소리 내어 읽어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지금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건 괜찮아. 그럴 만했어. 힘든 상황이었잖아."
처음에는 이 문장을 소리 내어 읽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스스로에게 이런 위로의 말을 해주려고 했지만,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억지로라도 몇 번 반복해서 말해 보니 조금씩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마치 제 안에 단호한 선생님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 옆에서 조용히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힘든 감정이 올라올 때, 이제는 가끔 '지금 화나는 건 당연해. 이런 말 들으면 누구라도 속상할 수 있어.', '오늘 하루 정말 버티느라 수고했다. 지금의 나에게는 쉬어갈 자격이 있어.'라는 말을 시도해 봅니다.
누군가 옆에서 늘 위로해 주고 공감해 주면 좋겠지만, 어쩌면 가장 자주, 가장 많이 해줄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자신'이라는 말이 깊이 내면에 담아두고 실천하려고 합니다.
감정은 이겨야 할 상대가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할 친구
감정을 수용한다고 해서 삶에서 불편한 감정이 나타나지 않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여전히 회의 시간에는 긴장되고, 관계에서 상처받을 때도 있고, 이유 없이 마음이 가라앉는 날도 있습니다.
달라진 건 '태도' 한 가지뿐입니다. 예전에는 감정을 적으로 생각했습니다. 불안은 없애야 하는 것, 슬픔은 숨겨야 하는 것, 분노는 참아야 하는 것이라고요. 그러나 이제는 조금 다르게 바라봅니다.
불안이 생기면 이번에는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것인지, 슬픔이 오래 머물면 그만큼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잃었다는 뜻이라는 걸 알아채고요. 분노가 강하게 올라오면 그건 내 안의 어떤 경계선이 침해당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입니다.
감정은 이겨야 할 상대가 아니라 내 삶의 중요한 정보를 전해주는 친구 같은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아직도 저는 자주 실패합니다. 감정이 올라오면 반사적으로 눌러버리고, 한참 지나서야 '아.. 또 무시하고 받아들이지 못했네' 하며 뒤늦게 깨닫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감정이 올라올 때 이렇게 한 번쯤은 말해보려고 노력합니다. '괜찮아. 오늘은 여기까지. 그래도 예전보다 조금은 나아졌어. 이번에는 적어도 감정이 올라왔다는 걸 인식했으니까.'라고 스스로 되뇝니다.
글을 읽고 있는 지금, 혹시 마음 한편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는 감정이 있다면 그 감정에게 이렇게 말을 걸어보면 어떨까요.
"나는 지금 OO라는 감정을 느끼고 있다. 이 감정이 여기 있어도 괜찮다. 이 감정은 언젠가 지나갈 것이고, 나는 이 감정을 느껴도 괜찮은 사람이다."
감정을 없애는 연습이 아니라, 감정과 함께 숨을 쉴 수 있는 연습. 이러한 연습을 하루에 딱 1분만이라도 해본다면 언젠가 감정이 아닌 '내가' 조금 더 단단히 삶의 중심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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