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감정의 굴레를 끊는 '4단계 관찰법'

by 곽준원

감정에 관심을 갖기 전까지 저는 '왜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감정을 느낄까'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상황이 짜증 나니까 짜증을 내는 거고, 화가 나니까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혼자 있으니까 외로운 거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나는 이런 상황에서 감정을 느낄 때마다 깊은 우울감에 빠져들까? 예전에도 분명히 겪었던 것 같은데..' 겉으로 내뱉는 말은 조금씩 달라져도, 감정의 결의 결과는 항상 비슷했습니다. 사람만 바뀌었지, 마음 안에서는 늘 똑같은 패턴이 되풀이되고 있었습니다.


늘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감정들

회사에서 회의가 열릴 때면 저는 늘 비슷한 자리에 앉습니다. 책상 배치가 정해져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마음속 자리도 늘 똑같았습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꽤 오랫동안 고민한 아이디어를 용기 내어 말한 적이 있습니다. 개발 과정에서 나타난 비효율을 제가 생각하기에 효율적인 방법이었죠. 그렇지만 어렵게 말한 내용은 그대로 묵살당했습니다. 본부장의 반응은 그런 내용보다 성과를 내야 한다고 압박했죠.


성과와 관계없는 아이디어를 고민할 시간에 개발을 더 하라는 의도가 다분했습니다. 물론 그냥 지나가는 말 한마디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제 내면에서는 작은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의욕이 확 떨어지고, 얼굴은 달아올랐습니다. 머릿속에서는 '역시 내가 말하는 건 수용하지 않는군'이라는 생각이 순식간에 몰려왔습니다.


괜한 걸 고민했다는 후회와 다음부터는 이런 제안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불편한 감정을 다루는 제 방식은 늘 같았습니다. 겉으로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네. 알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회의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오는 길에 복도에서 깊은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때 제가 스스로에게 붙인 이름은 '소심한 신경증을 겪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손윗사람이 남성일 경우에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당황하고 위축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냉정하게 돌아보면 '소심하다'는 말은 감정의 결과일 뿐, 왜 그런 감정을 반복해서 느끼는지 알려주는 답은 아니었습니다.


감정에도 '공식'이 있다.

감정과 관련된 심리학 책을 찾아보다가 <감정은 패턴이다>라는 책을 만났을 때, 처음에는 크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냥 상황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면 화나는 거지, 무슨 패턴까지 있을까' 그런데 감정을 이렇게 나눠서 바라보는 방법을 알게 된 뒤 조금씩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반복되는 상황: 언제, 누구와 있을 때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지.

자동으로 떠오르는 생각: 그때 머릿속에 제일 먼저 스치는 말은 무엇인지.

감정: 그 생각 위에 어떤 감정이 올라오는지 (1차 감정, 2차 감정)

행동: 그 감정 이후 나는 보통 어떻게 행동하는지.


이러한 네 가지를 적어보면 감정은 더 이상 '순간의 기분'이 아니라 어느 정도 구조를 가진 하나의 공식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


한동안 저의 감정 노트에는 '짜증'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했습니다. 짜증은 사실 2차 감정으로 어떤 감정으로 나타납니다. 화가 나도, 우울해도, 불쾌감을 느껴도 짜증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오랜 시간을 보내는 직장 내에서는 자주 느끼는 감정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직원은 "이 내용은 OO님이 더 잘 아시니까. 이왕이면 맡아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했을 때보다 훨씬 빨리 끝날 것 같아서요."라는 일 떠넘기기의 고수입니다. 저는 겉으로는 "아.. 바쁘시면 제가 해볼게요."라고 대답해 놓고, 속으로는 '나를 호구로 보는 건가.'라는 말을 생각합니다. 어느 날 퇴근 후 이러한 상황을 네 칸으로 나눠 적어봤습니다.


반복되는 상황: 누군가가 "당신이 더 잘하니까"라는 말을 덧붙이며 일을 부탁할 때.
자동으로 떠오르는 생각: 내가 거절하면 어떤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거절하면 왠지 이기적인 사람 같아 보여. 어차피 안 해주면 할 사람도 없겠지.
감정: 겉으로는 괜찮은 척 하지만, 속으로는 '이용당하는 느낌', '억울함', '거절하지 못한 자신에게 향하는 실망감'
행동: 결국 일을 떠맡는다. 밤늦게까지 일하면서 속으로 계속 투덜거린다. 다음 날까지 표정이 굳어 있고, 집에 가서는 아무 말도 하기 싫어진다.

이렇게 적어 놓고 보니까 제가 짜증 내는 대상은 꼭 '동료' 만이 아니었습니다.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워하는 저의 성향과 '거절하면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라는 불안감,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나를 이용하는 것 같다'라고 느끼는 모순이 얽혀 있었습니다.


제가 반복해서 느끼던 감정의 핵심은 사실 '짜증'이 아니라 '무력감'이었습니다. '나는 이 상황을 선택할 수 없다'라는 느낌이 강하게 압박했습니다.


또 하나 자주 등장하는 감정은 '나는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인지 오류였습니다. 가족과 여행 계획을 짤 때도, 친구들과 약속 장소를 정할 때도, 결정권에서 자연스럽게 밀려나는 태도를 취합니다.


"아무 데나 괜찮아. 내가 맞출게."


제가 평소에 자주 하던 말입니다. 문제는 정작 마음속에서 '어차피 내가 말해봐야 받아들여지지 않는데 뭘'라는 말이 함께 올라온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감정도 네 가지로 나눠서 적어 보았습니다.


반복되는 상황: 함께 무언가를 정할 때, 의견이 무시당하거나, 스스로 먼저 "난 상관없어"라고 말할 때.
자동으로 떠오르는 생각: 내가 고집을 부리면 민폐일 거야. 내 의견은 딱히 중요하지 않고, 맞추는 쪽이 편해.
감정: 겉으로는 "괜찮아요"라고 말하지만, 내면에서는 서운함, 외로운, 소외감, 때로는 스스로를 향한 무기력.
행동: 그 자리에서는 별일 아닌 것처럼 행동하지만 집에 와서는 괜히 텅 빈 느낌이 들어 스마트폰만 계속 만지작거린다.


이러한 패턴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결국 하나의 믿음으로 굳어졌습니다. '나는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구나'. 그런데 그 누구도 저에게 그렇게 말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몇 번의 경험을 제 나름대로 해석해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해 버렸고, 그 믿음이 이후의 감정 패턴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이상심리학 이론을 공부하면서 이러한 믿음은 인지 오류라고 하더군요. '나는 별로인 사람이다',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믿음은 잘못된 명명으로 '낙인찍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패턴을 본다는 건, 나를 탓하는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 '감정 패턴'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약간 겁이 났습니다. '또 내 성격을 분석해서, 내가 잘못된 부분만 들추는 건 아니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와중에 또 다른 문제를 수정해야 하는 과정이 오히려 완벽주의를 더 부추기는 듯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제 감정의 반복 구조를 적어 보니 느낌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건 공격이 아니라, 지도에 가까웠습니다. 내가 자주 미끄러지는 지점이 어디인지, 어떤 말에 특히 예민하게 반응하는지, 어떤 상황 가운데 유난히 작아지는지를 확인이 가능한 지도를 펼쳐 놓고 보니까 이제는 적어도 '왜 이렇게 되는지 모르겠다'라고 막막해하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동료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나'를 떠올리면 예전에는 '왜 이렇게 줏대가 없지'라는 자기 비난으로 끝났지만, 지금은 다르게 생각해 봅니다.


'나는 거절하면 관계가 깨질까 봐 무서워하는 사람이구나.'


이러한 원인을 알아차리는 순간 감정을 다른 방식으로 다루는 질문이 생깁니다. '비슷한 상황이 온다면 거절이라고 벽을 세우지 않고 '조건을 붙인 수락' 정도만이라도 해볼까?', '한 번만이라도 내가 힘들어서 부탁을 들어줄 수 없다는 걸 솔직하게 말해볼까?'라는 여러 갈래의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거대한 변화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패턴을 의식적으로 살피는 것만으로도 조금 다른 선택지를 떠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익숙한 감정이 꼭 편한 감정은 아니다.

재미있는 건 반복해서 느끼는 감정이 꼭 '좋아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불안한 상태가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막상 안정된 상황이 주어지면 어쩐지 낯설고 어색해서 스스로 문제를 만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아무 문제 없이 지나가도 되는 건가?'


그래서 평온한 순간에도 머릿속에서는 '미리 걱정할 걸' 찾느라 바쁩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날이면 '오늘은 별일 없네. 좋다'라고 느끼기보다는 '이렇게 아무 일 일어나지 않고 평온한 게 더 무섭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불편한 평온을 견디지 못해 일부러 과한 목표를 세우고, 스스로를 다시 쫓기는 상황으로 밀어 넣기도 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저는 불안이 싫다고 말하면서도 불안한 상태가 더 익숙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익숙함은 때로 안전지대처럼 느껴집니다. 비록 그 감정이 나를 지치게 만들더라도 몸과 마음은 이미 그 환경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회사에서 일이 많으면 몸이 힘들지만, 오히려 일이 없으면 더 불안한 마음이 생기는 것과 같달까요. 그래서 감정 패턴을 바꾸는 일은 단지 마음가짐을 고치는 문제가 아니라, 오랫동안 머물던 익숙한 방에서 천천히 다른 방으로 이사 가는 일에 가깝습니다.


감정 패턴을 안다는 것의 의미

감정 패턴을 인식했다고 해서 당장 모든 반응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여전히 회의 시간에 위축될 때가 있고, 여전히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떠맡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 달라진 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제는 그런 제 모습을 보면서 '나는 왜 아직도 이 모양이야'라고 비난하기보다는 '아.. 내가 또 익숙한 패턴으로 반응했구나. 그래도 이번에는 그걸 알아차렸네.'라고 말해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감정 조절의 시작은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패턴을 알아차리고 수용하는 태도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혹시 마음에 오래 남는 장면이 하나 있다면 그 장면을 네 줄로 적어 보면 어떨까요. 그 네 줄 안에는 지금까지 무의식처럼 반복해 온 나만의 감정 패턴이 조용히 숨겨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패턴을 알아보는 순간, 지금까지 해오던 선택과 다른 방향으로 사고방식을 옮겨 볼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오늘 ___한 상황에서
___라는 감정을 느꼈고,
그때 내 머릿속에는 ___라는 생각이 자동적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나는 ___하게 행동했다.

[상황-감정-생각-행동의 4가지]


https://brunch.co.kr/brunchbook/mindunfold


#심리치유 #감정패턴 #감성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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