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에이미 에드먼슨의 팀 연구에서 자주 다룬 개념인 심리적 안전감이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핵심은 아주 간단합니다. 관계 안에서 내가 실수하더라도, 바보처럼 보이더라도, 솔직한 마음을 말하더라도 창피를 당하거나 공격받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바로 이론의 핵심입니다.
이런 관계에서 사람은 아이디어도 더 내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요청하며 무엇보다 자기감정을 훨씬 솔직하게 꺼낼 수 있습니다. 정서적 안정감이 있는 관계, 비난 없이 비폭력대화인 I-Message로 말하기, 판단 대신 공감으로 받아주는 태도가 그 관계에서 심리적 안전감을 쌓는 아주 구체적인 방법입니다.
마음을 열고 나서, 더 멀어졌던 날들
저는 한때 솔직해지면 관계가 좋아질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정말 용기를 내서 가까운 친구에게 기동안 꾹 눌러 두었던 말을 털어놓았습니다.
"사실 나는 네가 약속에 자주 늦을 때마다 나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 사람 같아서 서운했어."
일반적으로 대답을 생각해 보면 "그동안 말 못 하게 해서 미안해"라든가, "그렇게 느꼈구나. 내가 배려가 부족했네" 같은 대화가 이어졌을 법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돌아온 말은 "전혀 몰랐는데? 그걸 왜 이제 와서 말해? 그럼 약속을 하지 말지 그랬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말문이 막혀 버렸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건 그 친구인데 오히려 제가 더 사과할 분위기가 되어버렸기 때문이죠.
'아.. 역시 괜히 말했다. 그냥 참을 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저는 씁쓸한 마음을 달래야 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상황에서 상대방을 탓하기보다는 비난의 화살을 저에게 다시 되돌리고 있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얘기를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 친구는 그냥 가볍게 지내려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문제는 '솔직함'이라는 그 자체가 아니라 솔직함을 받아줄 안전한 공간이 관계 사이에 없었으며, 둘 다 감정을 주고받는 방법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말을 해도 괜찮을까?'라는 질문이 사라지는 관계
시간이 지나면서 제 안에서는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누는 기준이 하나 생겼습니다. 말을 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 봅니다. 그 말을 해도 괜찮은지 열 번도 넘게 떠올리게 만드는 사람인지 아니면 입을 열기 전에 살짝 망설여지긴 하지만 결국에는 '그래도 이 사람이라면 들어주겠지'라고 믿게 만드는 사람인지 다시 확인해 봅니다.
후자의 사람이 옆에 있을 때 우리는 표정도 조금 느슨해지고, 실수담도 꺼내게 되고, "나 요즘 많이 힘들어" 같은 말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말을 해도 충분히 받아주고,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이런 상태를 심리학에서는 심리적 안전감이라고 부릅니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솔직히 느끼는 감정을 보여줘도 관계가 한 번에 깨지진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형성된 관계를 뜻합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을 때 사람은 비로소 자기감정을 언어로 꺼내볼 용기를 냅니다. 반대로, 그 믿음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관계에서는 감정 표현은 곧바로 위험이 됩니다.
저는 아버지와 관계에 심리적 안전감이 전혀 없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여러 번 용기 내어 고민을 이야기해 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넌 왜 별 것도 아닌 일에 예민하냐?"였거든요. 이런 대답을 40살이 넘는 중년까지 지속적으로 들어온 제 마음은 타인과 안전감을 형성할 수 없었습니다.
'괜히 말해서 내가 예민한 사람으로 보이면 어쩌지?', '저 사람이 나를 귀찮아하면 어쩌지?', '관계가 끝나는 건 아닐까?' 하며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워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제가 선택한 건 침묵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관계는 오래 봤는데도 서로를 모르는 느낌이 들고, 어떤 관계는 짧게 만났는데도 오래 만난 사람처럼 편안한 느낌이 듭니다. 차이는 화려한 대화 기술이 아니라, 어떤 말을 해도 충분히 괜찮다는 묵묵한 확신 하나였습니다.
저는 꽤 오랫동안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해 왔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는 비록 말수가 줄어들어도, 개인의 고민을 들어주면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고 비밀을 철저히 지켜주는 성향이어서 스스로를 그렇게 평가한 듯싶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소울 메이트는 저에게 "형은 고민을 잘 들어주는데, 가끔은 너무 빨리 결론을 내리는 것 같아. 기분을 잘 듣는 게 아니라 '이렇게 하면 되잖아'라고 해결책을 바로 주는 느낌?"라고 말을 건넸습니다.
사실 저는 감정을 잘 파악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황 판단을 먼저 하는 인지적 감정이 우선인 사람이었습니다. 돌이켜보니 저는 상대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그건 이렇게 가는 게 맞는 거야", "그래도 그 사람 입장도 이해해 봐야지", "쉽게 생각해. 그냥 넘겨도 될 일 같아"라는 말을 참 많이 했더라고요.
제 입장에서는 고민을 털어놓는 그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서, 상대의 고통을 빨리 줄여주고 싶어서 해준 현실적인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상 저는 상대의 감정이 완전하게 머물 공간을 허락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감정은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먼저 "그렇구나"라고 머물게 해주는 시간이 필요한데, 저는 늘 그 시간을 건너뛰고 해결과 조언으로 곧장 달려가 버린 겁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적어도 한 번은 조언하고 싶은 제 입을 잠그고 속으로 생각해 봅니다.
'지금 이 사람에게 꼭 해결책이 필요한 걸까. 아니면 그냥 옆에서 같이 있어줄 사람이 필요한 걸까.'
I-Message는 결국 '안전하게 다가가는 방식'
감정을 나눌 때 말의 내용만큼 중요한 게 방식이라는 걸 진짜로 체감한 건 가까운 사람과 크게 부딪친 어느 날이었습니다. 약속 시간에 늦은 그 사람에게 저는 "넌 왜 항상 약속 시간에 그렇게 늦어? 너는 사람을 뭘로 보고 그래?"라며 쏘아붙였습니다.
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표정이 굳더니 "항상이라니? 오늘 15분 늦은 거잖아. 그 정도로 사람을 뭘로 보네 마네까지 나와야 하냐?"라며 반박했습니다.
저는 더 화가 났습니다. '아니. 늦은 사람이 사과를 먼저 해야지. 지금 말다툼이 하고 싶은 건가?'라며 오히려 불쾌한 감정을 얼굴 표정으로 드러냈습니다. 그날 밤 둘 다 지친 얼굴로 헤어지고 나서 집에 도착해서 다시 상황을 떠올려 봤습니다.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비난이 아니라 저의 욕구를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네가 늦는 날마다 혼자 기다리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해. 나보다 다른 일이 더 중요한 사람처럼 느껴져서 서운해. 그리고 나는 약속 시간에 늦을까 봐 나름 엄청 신경 쓰거든. 근데 그런 노력이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아쉬워"
이게 바로 I-Message의 구조입니다. "너는 왜 그러냐?"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느낀다"로 표현하는 것이죠. 상대의 인격 평가가 아니라 내 감정과 경험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말하는 건 상대를 바꾸려는 무기가 아니라, 내 마음을 안전하게 표현하는 방법에 가깝습니다. 그 이후로 다시 비슷한 상황일 오면 저는 I-Message를 활용해서 저의 감정을 자세히 전달합니다.
비난이 아닌 저의 감정을 설명하면 대화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사실 바뀐 건 상대도, 상황도, 약속의 구조도 아닙니다. 달라진 건 말을 꺼내는 방식 하나였습니다.
'수용자'가 한 번이라도 되어본 사람만이 '표현자'가 된다
삶을 살다 보면 누구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면서도, 막상 다른 사람의 감정을 경청할 때는 서툴러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저도 처음부터 경청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충고하고 싶고, 조언하고 싶고, 판단이 앞서는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힘들 때는 '왜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까' 하다가도 누군가가 자신의 속 깊은 내면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금방 머릿속으로 '누가 더 힘든지' 저울질을 하곤 했습니다. '그건 별거 아니야. 나는 더 심했어'라는 생각입니다.
이런 말을 대화에서 꺼내게 되면 듣는 사람 입에서는 위로라고 생각하며 말할지 모르지만,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낸 사람 입장에서는 '아.. 내 감정은 여기에 둘 자리가 없구나'라는 신호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감정을 안전하게 주고받는 관계에서는 표현자와 수용자의 역할이 계속 바뀝니다.
오늘은 내가 감정을 꺼내는 사람, 내일은 내가 그 감정을 경청하고 공감하는 사람이라는 두 가지 경험을 두루 해본 사람만이 어디에서든 '지금은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할까'를 조금 더 자연스럽게 선택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누군가가 용기 내어 "사실 조금 서운했어요", "그 말 들었을 때 기분이 조금 이상했어"라는 말을 꺼낸다면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하기 전에 "아. 그런 마음이었구나. 말해줘서 고마워"라고 먼저 말해보려고 노력합니다. 해결은 그다음 문제고, 옳고 그름은 더 나중 문제라는 걸 깨닫고 해결해주고 싶은 마음은 잠시 뒤로 미루는 연습을 해보는 중입니다.
작은 루틴이 심리적 안전감을 만든다
우리는 업무 회의할 때는 그렇게 열심히 '진행 상황'을 체크하면서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과는 '마음 상태'를 거의 묻지 않고 살 때가 많습니다.
처음부터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주 간단한 것부터 시작해 보세요.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서로에게 "오늘 하루, 제일 많이 느낀 감정이 뭐였나요?"라고 서로 주고받는 겁니다. 처음에는 어색해서 농담처럼 넘길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며칠 계속하다 보면 조금씩 문장이 길어집니다.
"많이 지치네요"라는 문장에서 "오늘은 진짜 하루 종일 정신없었어요. 도움이 필요하기도 했고,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니까 실수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거든요"처럼 표현력이 섬세해집니다.
이렇게 하루를 정리해 주고받는 시간은 길어야 5분도 채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짧은 5분이 관계의 질을 조금씩 바꿔 주는 역할을 해줍니다. 그 사람이 겉으로 보기와 달리 여러 감정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거든요.
그걸 미리 알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과 전혀 모른 채 각자 방으로 들어가는 것은 생각보다 큰 차이가 있습니다. 혼자 생활하는 분들은 친근한 관계의 상대방과 가벼운 메시지를 주고받아도 괜찮지만, 음성으로 통화하거나 직접 대면으로 나누는 대화가 훨씬 강력합니다.
이제는 감정을 잘 표현하는 사람이 대단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안전한 공간을 함께 만들어 가는 사람'이 더욱 대단하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 공간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게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너랑 나누고 싶어서 말해볼게"라고 먼저 말해주는 용기, "그랬구나. 그 말 들었을 때 진짜 속상했겠다"라고 한 번이라도 공감해 주는 경청, "지금은 피곤해 보여서, 이 이야기는 나중에 여유 있을 때 해도 괜찮아"라고 타이밍을 조절해 주는 배려가 모여서 어떤 관계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안전지대로 남고, 어떤 관계는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쉽게 무너지는 불안한 땅으로 남는 것 같습니다.
오늘 저의 글을 다 읽고 나서 혹시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있다면 그 사람에게 조심스럽게 내면의 이야기를 꺼내보면 어떨까요. 완벽한 문장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한 줄을 건네는 순간 그 관계 안에는 예전보다 조금 더 넓은 심리적 안전감의 공간이 생겨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 사람이 또 자신의 마음을 열고 조심스럽게 우리 앞에 서게 되었을 때, "괜찮아요. 그런 이야기 해도 됩니다"라며 받아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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