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전되기 전 나를 지키는 '의식적인 충전'

by 곽준원

우울하고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 우리는 흔히 '기분 좋아지면 운동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나도 좀 챙기겠지'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울감이 너무 심한 경우에는 한 걸음도 내딛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깊은 우울감에 빠져들기 전에 먼저 '의식적인 충전'이 필요합니다.


인지행동치료의 '행동 활성화' 이론에서 활성화는 '기분이 좋아져야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니라, 먼저 몸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해야 기분이 달라진다'라고 말합니다.


작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소소한 성취와 즐거움을 경험하고, 그 경험이 쌓이면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기 신뢰가 형성됩니다. 이러한 신뢰가 다시 기분과 자존감을 서서히 끌어올리면서 선순환을 일으킵니다.


즉, 생각, 감정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경험으로, 경험이 감정과 생각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하나씩 쌓는 방식입니다. 자기 돌봄 루틴은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라 하루 10분 정도의 작은 행동이고, 그 반복이 스스로를 돌볼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메시지로 전환됩니다.


쉬어야 하는데, 쉬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

저는 일에 한 번 몰입하면 생리적 욕구만 해결하고 거의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꼬박 10시간을 넘깁니다. 이렇게 일하던 30대에 제 입에서 가장 자주 나온 말은 '좀 쉬어야 하는데..'였습니다.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막상 주말이 되면 컴퓨터를 켜고 키보드와 마우스에 손이 먼저 날아갔습니다.


스트레스를 풀어본답시고 게임을 하고, 유튜브 쇼츠를 하나 보기 시작하면 몇 시간이 지나도록 멈출 줄 몰랐습니다. 몸은 분명 회사와 분리되어 집에 있었는데 머리는 더 지친 느낌이 들었습니다. 밤이 되면 하루 종일 무엇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다는 생각에 허무함이 몰려왔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쉬어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쉬는 법을 모르는 어른이었습니다. 일이 많으면 많은데로 몸은 지치고 힘들지만, 막상 일이 없는 날에는 어쩔 줄 몰라하며 일거리를 찾는 일중독자였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자기 돌봄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나를 건강하게 지키려는 의식적인 행동이다'라는 문장은 제가 그동안 주말에 한 행동을 되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그동안 하고 있던 건 '자기 돌봄'이 아니라 그냥 자기 방치에 가까웠다는 걸 인정하게 됐습니다.


자기 돌봄이라는 단어를 보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우선순위였습니다. 자기 돌봄이 좋은 말이긴 한데, 지금 너무 일이 많아서 할 시간이 없다고 느껴졌습니다. 일이 많아서 야근하는 날이 늘어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만 해도 수면 시간을 줄여야 했습니다.


운동도 하고 싶고, 감정 노트도 한 줄이 아니라 일기로 쓰고 싶고, 명상도 해보고 싶지만, 이러한 모든 자기 계발을 '시간이 남는 사람이 하는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직장에서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내고 집에 돌아오면 하루가 거의 다 끝나가는 상황에서 자기 돌봄은커녕 그냥 버티는 것만으로도 벅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몸이 먼저 경고를 보냈습니다. 귀와 턱 사이에 임파선이 엄청 부어오르며 통증을 느꼈습니다. 그전부터 사실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한 느낌이 전혀 없었고, 퇴근길에는 지하철에서 억지로 책을 읽었고, 집에 도착하면 책의 내용을 정리하고 다시 복기하느라 수면 시간을 줄이기 일쑤였습니다.


주말에는 독서 모임을 진행하고, 오후에는 아이와 놀아주거나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일요일 저녁에는 피로가 여전히 풀리지 않은 느낌으로 잠을 청합니다.


하루는 출근 준비를 하다가 문득 거울을 봤는데 표정이 상당히 낯설었습니다. 눈 밑의 다크서클은 매우 진했고, 눈빛은 흐릿했습니다. 임파선염으로 한 달가량 독서와 글쓰기를 중단하며 쉬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몸을 혹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떠오른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반복된 자기 방치는 무기력을 낳고, 반복된 자기 돌봄은 활력과 자기 신뢰를 만든다.'


바쁘다는 핑계만 대다가 다시 임파선염으로 고생할지도 모른다는 자각이 들면서 '언젠가' 하겠다는 생각 대신 '아주 작게라도 지금부터' 해야겠다는 마음이 조금씩 생겼습니다.


하루 10분, 나를 위한 시간을 갖는 연습

물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도 나를 위해 충분히 필요한 시간입니다. 그 시간 외에 거창한 계획 대신 '하루 10분 자기 돌봄 루틴'을 만들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처음 목표는 딱 세 가지였습니다.


1.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 개고 물 한 컵 천천히 마시기.

2. 점심시간에 10분 마음 챙김 명상하기.

3. 자기 전에 나에게 한 줄 칭찬 쓰기.


종이에 이렇게 적어두고, 책상에서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붙여놓았습니다. 작게 쓰지 않고, 눈에 띄게 크게 썼습니다. 솔직히 이렇게 해본다고 한들 제 인생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이 가득했습니다. 다만 적어도 하루에 10분 정도는 나를 돌보는 시간에 공들이자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아침에 알람 소리를 들으면 5분만 더 자는 습관부터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스마트폰에서 알람 소리가 들리면 바로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이불을 갭니다. 그리고 부엌으로 가서 찬물보다는 미지근한 물 한 컵을 천천히 마십니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행동은 오늘 하루 시작할 준비를 알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바로 책상으로 돌아가 앉으면 유튜브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날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자기 돌봄을 계획한 날부터는 자리에 앉아 명상 영상을 틀어 놓고 무조건 10분 동안은 명상을 진행했습니다. 마음 챙김 명상으로 호흡에 집중하다가, 잠시 딴생각이 들면 바로 알아차리고 다시 호흡에 집중하는 훈련이죠.


<명상하는 뇌>에서는 수천 시간에서 수만 시간에 이르는 명상 수련가들의 뇌가 어떻게 활성화되는지 연구한 내용을 보여줍니다. 하루에 10분이 과연 도움이 될까 생각할지 모르지만, 책에서는 확실히 짧지만 습관처럼 지속하면 충분히 효과가 있다고 말합니다.


명상, 독서, 글쓰기와 같은 행동들은 결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래 시간이 축적된 어느 날 뒤돌아보면 자신이 조금 변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됩니다. 잠복기가 상당히 오래도록 지속되어, 66일이면 습관이 생긴다고 하지만, 그 시간을 훌쩍 넘겨야 습관으로 자리 잡는 분도 상당히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자기 전 나에게 한 줄 칭찬 쓰기는 정말 어려웠습니다. 어떤 말로 칭찬을 해야 할지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기도 했고, 정확한 수면 시각을 정해놓지 않아서 칭찬 쓰기를 하지 않고 잠에 든 경우도 많습니다.


그냥 평소처럼 하루를 보냈던 날에는 도무지 칭찬할 문장도 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간단한 문장부터 써봤습니다. '오늘 하루 잘 버텼다'라는 문장처럼 그동안 당연시 했던 내용을 칭찬과 위로의 메시지로 변환해 스스로에게 보냈습니다. 자기 돌봄 루틴은 나의 완벽함을 증명하는 체크리스트가 아니라, 오늘도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기록에 가깝습니다.


사실 이러한 세 가지를 매일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피곤해서 아침 물을 그냥 지나친 날고 있었고, 점심시간에 명상 대신에 자리에 엎드려 잠만 잔 날도 많습니다. 자기 전 한 줄 칭찬은 메모장을 보고도 머릿속에서 사라져서 그대로 이불로 쓰러져 잠드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예전에 내면의 목소리는 분명 '역시 넌 꾸준함 하고는 거리가 멀어', '이렇게 간단한 것도 못 지키면서 무슨 자기 계발이냐'라며 비난 일색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렇게 하루를 지나가도 '오늘은 진짜 힘들었나 보네. 그래도 다시 내일부터 하면 되지'라며 스스로를 달랬습니다.


행동 활성화 이론대로라면 중요한 건 완벽하게 지키는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입니다. 자기 돌봄 루핀은 자기 비난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철칙을 하나 세우게 되었습니다.


'또.. 못 지켰어'라고 자신을 몰아붙이는 리스트가 아니라 '다시 해볼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발판이라고 생각하면서 루틴을 조금씩 습관화하려고 애써봅니다.


관계도 '자기 돌봄'의 일부

자기 돌봄이라고 하면 혼자 하는 활동만 떠올리기 쉽습니다. 혼자 걷기, 책 읽기, 명상하기처럼 말이죠. 그런데 자기 돌봄의 한 축으로 관계적 돌봄도 있습니다. 한동안 저는 관계를 맺는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매우 애썼습니다. 상대가 정중히 부탁하면 다 들어주려 했습니다.


내 일정이 꽉 차 있어도, 이미 에너지가 방전 직전이어도, "그건 어렵다"라는 말을 하면 관계가 어색해질까 봐 결국 밤늦게까지 타인의 일과 내 일을 함께 붙잡고 있다가 거절하지 못하는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때는 다른 사람이 나를 혹사시키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먼저 혹사시키고 었었음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래서 요즘 자기 돌봄 루틴에는 거절하는 연습도 포함하도록 적어놨습니다. 지금 상황을 파악해 보고, 누군가에게 '이건 어렵습니다'라고 말해보기.


처음에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거절의 말이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거절하면 상대가 실망할 것 같기도 하고, 관계가 멀어질 것 같아서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 바쁘면 어쩔 수 없죠.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네요"라고 말을 하더군요.


억지로 웃으며 다 들어주던 예전보다 관계가 더 나빠지지도 않았고, 오히려 서로의 경계를 조금 더 존중하게 되었습니다. 거절하는 연습 역시 자기 돌봄 루틴의 중요한 일부라는 사실을 조금씩 몸으로 배웠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어떤가요? 오늘 나를 '사용'만 했습니까? 아니면 조금이라도 돌봐줬나요. 저는 하루를 떠올려 보면 할 일 목록, 약속, 메신저, 이메일 속에서 끝없이 '사용'하기만 했던 날도 많습니다.


그래도 그 와중에 물 한 컵을 천천히 마셨다면,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명상을 했다면, 잠들기 전에 '오늘도 잘 버텼다'라는 한 줄을 적었다면 그건 분명 자신을 돌보는 행동이었고, 그 행동은 아주 작지만 분명한 자존감의 씨앗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매번 자기 돌봄 루틴을 지키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그걸로 스스로를 심하게 책망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중요한 건 완벽한 행동이 아니라 '그래도 또 해보자'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횟수입니다.


'오늘은 물 한 컵 마시는 것 밖에 지키지 못했네'라고 생각하는 대신 '그래도 오늘은 물 한 컵은 천천히 마셨네. 그 정도면 잘했다'라고 스스로 위로하는 연습이 자기 돌봄의 핵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mindunf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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