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실패했다'와 '나는 실패자다'의 차이점

by 곽준원

심리학자 캐럴 드웩은 <마인드셋>에서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두 가지로 나눠서 설명합니다. 고정 마인드셋과 성장 마인드셋입니다. 고정 마인드셋은 능력이 정해져 있고, 실패는 무능함의 증거라고 느끼는 사고방식입니다. 반대로 성장 마인드셋은 능력은 노력과 경험에 따라 자랄 수 있고, 실패는 '성장의 밑거름'이라고 보는 관점입니다. 그래서 실패해도 다음 도전의 자양분으로 삼으려고 무엇을 바꾸면 좋을지 고민합니다.


결국 실패를 '나의 한계 증명'으로 볼 것인가, 실패를 '나의 성장 자료'로 볼 것인가의 차이가 고정 마인드셋에서 성장 마인드셋으로 옮겨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오래도록 고정 마인드셋으로 삶을 살아왔습니다. IQ 148의 수치를 기록한 그 순간부터 저는 실패할 수 없는 사람이었죠. IQ가 높다고 어떤 일이든 성공으로 이끄는 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주변 시선은 너는 실패하면 안 된다는 완벽함을 강요했습니다.


'이번에 탈락하면 그냥 안 되는 사람이다'라고 믿었던 시기

몇 년 전 회사 내부에서 꽤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회사에서 앞으로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솔루션으로 활용하려는 개발 프로젝트였습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설계 단계부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전에도 비슷한 업무를 한 경험을 토대로 '이번에 제대로 도전해 봐야겠다'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어느 정도 진행한 프로젝트의 결과를 임원에게 보고하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발표 자료를 만들고, 주말에도 자료를 확인하며 발표 연습을 했습니다. 보고가 끝난 후 개발한 프로그램을 시연하는 과정도 포함되어 있어서, 시연 시나리오도 실수가 없도록 여러 번 리허설을 진행했습니다.


발표 자료를 만들면서 오랜만에 '나도 회사에 기여할 수 있겠다'라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임원 보고에서 CEO는 회사의 비즈니스 방향과 어울리지만 효율성과 비용 측면에서 무리가 있어서 프로젝트는 중단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오래도록 노력했지만 결국 성과가 '제로'인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때 제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은 '이번에는 안 됐구나'가 아니었습니다. 오래도록 무언가에 매진한 이후에 성과나 인정이 따라오지 않으면 저는 상당히 침울해집니다. 이런 우울감은 자기 비하로 이어지고 정체성까지 흔들어 버립니다.


'역시 나는.. 실력이 형편없는 사람이지. 괜히 기대했다. 처음부터 무리였어.'


단순히 내부 프로젝트에서 '중단'이라는 통보를 받은 것뿐인데, 저는 프로젝트의 중단을 듣고 '나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다'라는 결론까지 생각이 이어졌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실패보다 더 아팠던 건 결과가 아니라 스스로 내면에서 해석한 인지 오류인 듯싶습니다.


그날 저녁,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서 집으로 퇴근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게임 속으로 회피했습니다. 1시간가량 게임을 하고 잠시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났는데, 서재에 꽂혀있는 책이 한 권 눈에 들어왔습니다. 캐럴 드웩의 <마인드셋>이었습니다. 책을 다시 펼쳐보았습니다.


고정마인드셋인 사람들은 '능력이 타고난 것이며, 실패를 필수적인 기본 능력의 결여라고 해석한다'라는 문장을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책의 문장을 읽고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잠시 컴퓨터의 전원을 끄고 떠올려 봤습니다.


사실 저는 오래도록 내부 프로젝트에 전념했고, 임원 보고도 나름 문제없이 마무리했습니다. 그러나 효율성과 비용이라는 회사 내부의 사정으로 프로젝트가 중단된 것뿐이었습니다. 객관적인 사실은 그저 내부 사정으로 중단된 것뿐인데, 그 위에 제 해석은 '역시 나는 능력이 부족해'라며 다른 방향으로 향해 있었습니다.


사실과 해석을 꼭 구분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실패했다'와 '나는 실패자다'는 전혀 다릅니다. 내부 프로젝트를 진행한 결과에서 비록 실패로 마무리되었지만, '실패자'라는 해석은 인생 전체를 한 번에 재단하는 낙인이라 해도 무방합니다.


고정 마인드셋에 빠져 있으면 우리는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이번에 실패했네. 난 역시 능력이 부족해. 맞아 난 원래 그런 사람이야'라며 세 문장으로 결론을 내려버리며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빠르게 마무리해 버립니다.


실패의 경험을 성장 마인드셋의 언어로 바꾸는 연습

며칠이 지나고 실패를 그냥 흘려보내기에는 마음 한구석에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 질문을 토대로 답변을 적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진실을 이끌어내는 질문'으로 구성된 내용입니다.


1. 우리가 의도한 결과는 무엇인가.

2. 실제로 얻은 결과는 무엇인가.

3. 무엇이 이러한 결과를 초래했는가.

4. 똑같은 순간이 찾아오면 무엇을 할 것인가.

5. 무엇을 다르게 할 수 있는가.


질문에 하나씩 답을 적어 내려가다가 문장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의도한 결과는 회사에서 성과를 내는 일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이렇게 질문에 하나씩 답변을 하다 보면 실패에서 무엇을 얻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완전히 망했다. 나는 실패자다'라는 표현보다는 '최선을 다해 노력했지만, 회사의 방향성과 맞지 않구나'라는 상황을 인정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똑같은 순간이 찾아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다르게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조금 더 깊게 생각했습니다.


답변에 시간을 들여 적어보니 처음의 '나는 실패자다'라는 해석과 느낌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실패를 성장 마인드셋의 언어로 바꿔보면 주눅 들었던 자아가 다시 기지개를 켜게 됩니다. 실패를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히든 에셋'으로 쓰는 태도에 가깝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무능력자'라는 타이틀로 비하하기 시작하면 자존감은 당연하게도 낮아지기 마련입니다. 성장 마인드셋으로 무엇을 배웠는지 알아가는 과정을 보냈다면 무너진 자존감도 회복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내부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다고 해서 제가 한 모든 시도가 무의미해지는 건 아닙니다. 초기 단계에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아키텍처를 설계하고, 시스템을 하나씩 구현해 나갔던 일과 그 내용을 정갈하게 요약해서 임원 앞에서 발표 보고한 내용, 그리고 개발자이면서 시나리오와 별도의 편집도구 기획을 했던 과정,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면 모든 과정에서 실패만 있었던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작은 성공을 재인식하게 됩니다.


사실 내부 프로젝트가 중단된 이후 며칠 동안은 어떤 것도 손에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실패 이후에만 하는 리스트'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퇴근 후 집 근처를 빠르게 30분 정도 아무 생각 없이 걷기, 카페에 가서 너무 무겁지 않은 책을 읽고 감상평 남기기, 그날 밤에는 최대한 일을 멀리 두고 휴식하기입니다.


세 가지 중에서 하나만 실천해도 저에게는 '실패 후에 나를 위로하는 의식'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 고생 많았으니까 오늘만큼은 푹 쉬자'라는 말을 누가 대신 해주지 않더라도, 루틴을 통해 스스로에게 해주기로 다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무너진 자존감은 빠르게 회복이 가능합니다. 결과만 툭 던지는 대신 이 과정을 준비하면서 기대했던 마음, 프로젝트가 중단되고 나서 스스로에게 했던 가혹한 말들, 그 이후에 괜히 모든 게 시큰둥해진 마음까지 천천히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 지인이 해준 말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아니. 형이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한 번 무언가 몰입하면 끝장을 보는 사람인데. 그 정도 했는데도 불구하고 회사 사정상 그렇게 된 거면 프로젝트는 실패가 아닌 거 같은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실패는 더 이상 혼자 머릿속에서만 씹어 삼키는 사건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나눌 수 있는 서사가 되었습니다. 실패를 이야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실패는 조금씩 무게가 줄어드는 것 같았습니다.


실패를 다루는 태도가 결국 나를 설명한다.

이제는 실패가 내 가치를 말해주지 않고, 다만 내가 실패를 다루는 방식이 나의 정체성을 형성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성장 마인드셋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질문은 '이번 실패에서 무엇을 배웠나?", '다시 한다면 어디를 조금 다르게 해 볼 수 있을까?', '실패를 겪은 나에게 지금 해줄 수 있는 가장 다정한 말은 무엇일까?'입니다.


실패를 피해서 자존심을 지키는 게 아니라, 실패를 겪고도 다시 해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마음먹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존감은 조금씩 단단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음 근력도 같이 성장합니다.




최근에 실패 경험이 있나요? 최근에 없다면 과거에 실패라고 생각한 결과를 한 번 잠깐 동안 떠올려 보세요. 예를 들어, 시험에서 불합격한 일, 회사에서 프로젝트가 중단된 일, 인간관계에서 어색하게 끝나버린 어떤 시도 등등. 그중 하나를 고르고 성장 마인드셋 질문으로 바꿔보는 겁니다.


내가 실패했다고 느낀 경험은?
그땐 나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사실만 보면 어떤 일이었나?
그 경험에서 내가 배운 건 무엇인가?
다시 비슷한 상황이 온다면 무엇을 다르게 해보고 싶은가?
지금 그때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물론 이러한 질문의 대답이 실패를 지워 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 실패 속에서 당황하고, 우울했던 '그때의 나'를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봐 주는 시작이 되어 줄 수는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사실과 해석을 분리해서 바라보는 연습들이 쌓여 언젠가 우리 안에 잘못된 인지 도식이 변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실패할 수도 있지만, 실패로 끝나는 사람은 아니다" 이런 확신이 가득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미래의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mindunfold


#심리치유 #감성에세이 #마인드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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