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 클로드 스틸의 자기 확언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나 '나는 의미 있고 괜찮은 존재'라는 자기 통합감을 지키려는 욕구가 있습니다. 타인으로부터 비난, 비교 상황이 발생하면 위기의식을 느끼고 방어적으로 굴거나, 스스로를 심하게 깎아내리기 쉽습니다.
이때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나 강점, 괜찮았던 순간을 의도적으로 떠올리고, 문장으로 확인해 주는 행위(자기 확언)를 거치면 그 통합감이 다시 조금씩 회복된다는 연구들이 있습니다.
"나는 이런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야"
"나는 실수해도 여전히 가치 있는 사람이야"
이렇게 자신을 지지하는 자기 확언의 문장을 반복할수록 스스로를 보는 눈이 조금씩 달라지고 자존감과 회복탄력성도 높아질 수 있습니다.
물론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자기 확언을 소리 내어 읽기만 해서는 자기 통합감은 거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결국 '괜찮은 나'의 증거를 노트에 모으고, 자기 확언은 행동의 밑거름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다'라는 말을 부정했던 시절
예전에 회사 동료가 진지한 얼굴로 "형은 진짜 좋은 사람이에요"라는 말을 해 준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에이. 내가 뭘. 아니야"라고 말하며 그 말을 부정했습니다.
입은 자동으로 대답하면서 진짜 괜찮은 사람인지 의심이 들었습니다. '내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니. 이 친구가 나를 아직 잘 몰라서 하는 말이겠지'라며 칭찬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저는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부르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왠지 괜찮은 사람이라고 인정하면 겸손하지 못한 사람 같고 부족함이 곧 드러나 상대방이 실망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제 머릿속에서는 '나는 늘 부족한 사람이다', '진짜 괜찮은 사람은 내가 아니라 저런 사람이지'라는 말이 더 자주 떠다녔습니다.
누군가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면 듣는 순간에는 고마운 일이었지만, 가슴까지 내려오지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옷가게에서 멋진 옷을 걸쳐봤는데 "어머나. 너무 잘 어울리세요"라는 말을 들어도 '이건 나랑 안 어울려'라며 옷걸이에 다시 걸어두는 것처럼요. '괜찮은 사람'이라는 정체성은 늘 제게 너무 큰 사이즈의 옷 같았습니다.
사실 '괜찮은 사람'의 정의를 마음속으로 어떤 조건을 달아놓은 상태였습니다. '매번 큰 성과를 내면 괜찮은 사람', '평소에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면 괜찮은 사람', '실수하지 않고 알아서 척척 일을 잘하면 괜찮은 사람'이라는 비정상적인 조건입니다.
그래서 일이 잘 풀리는 날에는 잠시나마 '그래. 나도 조금 괜찮은 사람일까?'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일이 꼬이거나 실수를 하면 바로 이분법적인 생각으로 일반화를 진행합니다. '역시 난 아니야. 내가 뭘 했다고 나를 괜찮다고 불러'라고 말이죠.
'괜찮은 사람'이라는 타이틀은 항상 저 멀리 있는 사람의 몫이었습니다. 승진한 동료, 프로젝트 우수상으로 회사 송년회에서 발표하는 직원, 늘 밝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챙기는 친구, 실수해도 금방 회복해서 다시 활기를 찾는 누군가.
반대로 저는 피곤하면 예민해지고, 가끔씩 작은 일에도 크게 흔들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어색해질 때도 많고, 잠들기 전에 '왜 그 말을 했을까'를 곱씹다가 잠을 설치기도 하는 그저 그런 사람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대로 괜찮지 않은 사람인데, 어떻게 하면 겨우 괜찮아질 수 있을까?'리는 고민을 늘 품고 살았습니다. 내면에는 항상 어떤 '조건'이 붙어야 괜찮은 사람이 된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내 목소리로 내가 괜찮다고 말해본 날
그런데 100일 자기 확인이라는 유행이 퍼지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매일 한 문장을 100일 동안 계속해주면 자신이 확언했던 그대로 된다는 뜻입니다.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다. 오늘도 웃는 얼굴로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라는 자기 확언 문장을 여러 번 외친다고 과연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 시절 읽은 책에서 "자존감은 좋은 기분이 아니라, 나를 대하는 태도다"라는 문장을 읽으면서 자기 확언과 연결 지어 생각해 봤습니다. 나는 그동안 기분이 좋아지면 자존감이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반대라는 뜻이었습니다.
기분이 좋을 때만 자신을 괜찮게 여기면 그건 자존감이 아니라 컨디션에 더 가깝고, 진짜 자존감은 기분이 가라앉은 날에도 자신을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이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날 저녁 세수를 하면서 거울을 보며 문득 '지금 보이는 이 사람한테 한 번쯤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해줘 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바로 용기를 내기가 어려웠습니다. 쑥스럽기도 하고, 괜한 일을 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큰 소리는 아니더라도 아주 작은 목소리로 자기 확언을 잠깐 읊어보았습니다.
"오늘도 수고했어. 실수도 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순간도 많았지만 그래도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꽤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
입 밖으로 그 말을 꺼내는 동안 닭살이 돋고, 머리가 쭈뼛 설 정도로 어색했습니다. 스스로 괜찮다고 말해보니까 너무 오글거리고 창피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장을 끝까지 말하고 나니 가슴 한쪽이 살짝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무도 칭찬해주지 않았을 저에게 적어도 오늘 하루만큼은 제가 제 편에 서본 것 같았습니다.
물론 단 한 번 거울 앞에서 자기 확언을 했다고 바로 자기 비하와 혐오가 신뢰로 변경되는 건 아닙니다. 자기 자신에게 자주 그 말을 들려주고, 그 결과로 나타난 여러 증거를 수집해야 믿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지난 한 달 동안, 내가 용기 냈던 순간이나 배려했던 상황과 같이 자신이 괜찮았던 증거를 갈무리해야 놓아야 합니다.
이러한 갈무리의 총합을 '자존감 증거 노트'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감정 노트는 내가 어떤 상황에서 감정이 생성되는지 알아가는 증거 수집이라면 '괜찮은 나, 증거 수집 노트'는 자존을 지키는 노트가 아닐까 합니다.
두 가지 노트를 적다 보면 감정 조절을 어느 정도 할 수 있도록 생활환경을 마련할 수 있고, 조절 능력이 조금씩 생기다 보면 자신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현장의 기억을 떠올려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동안 저는 실패한 순간, 부족했던 장면만 확대해서 보느라 사소한 괜찮음 들을 하이라이트로 묶어본 적이 없었거든요.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믿음은 작은 성공 하나에서 생기지 않습니다. 작고 구체적인 장면들이 조용히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비교 대신 '관찰'로 나를 바라보는 연습
여전히 저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 쉽게 비교하곤 합니다. 비교가 진짜 자신을 갉아먹기 딱 좋은 행동이라는 걸 머릿속으로는 알지만 그게 말처럼 쉽게 없어지지 않습니다. 경제적으로 뛰어난 사람들을 보면 아직 대출금을 갚지 못해서 허덕이는 저의 모습이 비참하기도 하고, SNS에서 가족과 함께 여행 다녀온 사진을 보면 '나는 왜 저렇게 활동적이지 못할까'라는 생각이 스며듭니다.
이럴 때마다 '나도 괜찮은 사람인데'라고 말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비교하면서 자신을 깎아내리는 중에 괜찮을 리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요즘은 '괜찮다'라고 억지로 위로하는 대신 일단 관찰자가 되어보려고 합니다.
비교는 '저 사람은 저렇고, 나는 이렇다'에서 끝나지만, 관찰은 '나는 이런 사람이다'에서 한 반 더 나아가 '그럼 나는 이 특성을 어떻게 쓰고, 다듬고, 돌볼 수 있을까'로 이어집니다.
내가 나를 비판의 눈으로만 보면 '괜찮은 사람'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어렵지만, 관찰자의 눈으로 보면 '부족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애쓰는 사람'이라는 조금은 현실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습니다. 그 정도 평가만 해줘도 마음속에서는 비교가 끝나가는 시점에 '그래. 이 정도면 나도 괜찮지'라는 말이 따라붙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자기 확언에서는 한 문장을 100일 동안 말해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걸 조금 저의 방식대로 고쳐서 써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단계는 감정 확인입니다. 나는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정확하게 인지하는 겁니다. 위축되고 있는지, 불안한지, 아니면 외로운지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자기 인정입니다. 지금 이런 감정이 들어도 나는 소중한 사람이고, 이렇게 느끼는 나를 이해할 수 있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겁니다. 세 번째 단계는 확신 심기입니다. 지금 상황의 내가 어떤지 돌볼 수 있고, 조금씩 성장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보는 겁니다.
물론 세 가지 단계마다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도 마음속으로라도 한 번 천천히 세 가지 단계를 되뇌어보면 감정의 파도가 조금 누그러지게 될 겁니다. 자신을 비하하거나 혐오하는 대신 '지금 흔들리고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괜찮은 사람이다'라고 말해보는 것은 큰 변화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나를 버리지 않는 태도라고 믿습니다.
저는 완벽주의가 매우 강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나는 완벽주의이지만, 완벽한 모습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는 재료를 가진 사람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 재료는 이미 제 안에 있었고, 다만 제가 인정하지 않고 미루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은 하루를 마감하며 노트 한 귀퉁이에 '괜찮은 순간'을 생각해 보고 적으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하루를 마감하며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나는 그런 나조차도 사랑받아 마땅하다'라는 문장을 세 번 읽어보려고 합니다.
문장을 100% 확신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연습해 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 연습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 거울 앞의 나를 바라보며 조금 더 자연스럽게 자신을 긍정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 이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지. 오늘도 버텨줘서 다행이고, 고맙다"
https://brunch.co.kr/brunchbook/mindunfold
#심리치유 #감성에세이 #꽤괜찮은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