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 제임스 그로스는 우리가 감정을 대하는 방식을 정서 조절이라는 틀에서 설명합니다. 핵심은 감정은 나쁜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자신의 욕구와 가치가 반응했다는 신호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감정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루느냐입니다.
그로스는 특히 두 가지 방식을 많이 비교합니다. 첫 번째는 억압입니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참고 넘기는 방식입니다. 단기적으로는 갈등을 피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스트레스, 우울, 신체 증상, 관계의 거리감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재평가입니다. 감정이 올라왔을 때, 그 감정을 없애려 하기보다는 지금 느끼는 감정이 자신에게 무엇을 말해주려는지 이해하고, 그 의미를 다시 해석해 보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화가 난다를 '타인의 무례함으로 경계선을 침범했구나'를 인식하고, '나는 나의 선을 넘지 않고 존중받고 싶은 사람이다'처럼 그 욕구를 건강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형태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연구들을 보면 감정을 억압하는 사람들보다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수용한 뒤, 표현 방법으로 관계를 조절하는 사람들의 정신, 신체 건강과 관계 만족도가 상당히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굉장히 예민한 사람입니다
오랫동안 저는 스스로를 '예민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HSP 테스트를 해보면 역시나 매우 민감한 사람이라고 결과가 말해주더라고요. 그런데 예민한 사람이라고 겉으로 말하면 무언가 죄송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내가 예민하니까 과하게 반응해도 나를 미워하지 말아 달라는 표현 같았거든요.
다른 사람은 별일 아닌 것처럼 넘기는 일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가슴이 답답함을 느끼곤 했습니다. 이러한 답답함을 해결하고자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야. 넌 별것도 아닌 일인데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냐"라면서 오히려 핀잔을 주셨습니다.
이런 피드백을 자주 받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예민한 나'를 온전히 수용하기 힘들어집니다. 자연스럽게 수치심을 느끼며 문제가 많다고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민한 반응이 나타나면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 참아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저는 감정 조절을 하려는 게 아니라 감정을 검열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전 회사에서 회의 중에 제가 한 말을 한 동료가 가볍게 농담 섞인 말로 흘려버렸습니다. "에이.. 그건 좀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죠"라는 말에 모두 웃음을 지었지만, 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손바닥에 땀이 나고, 머릿속에서는 예민함이 샘솟았습니다.
마치 그 말이 저의 존재 자체를 무시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지만 모두가 웃음을 짓는 마당에 제가 느낀 날 선 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었고, 표현할 용기도 당연히 없었습니다.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억누르기였습니다.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그냥 넘기는 척했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왔을 때 마음속 답답함이 느껴졌습니다. 상황은 이미 종료가 되었지만, 제 안에서는 감정이 하나도 수습되지 않은 느낌이었습니다. 누군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속상함에 눈물이 나올 지경인데 겉으로는 멀쩡한 척 앉아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회의 시간에 발언한 내용이 자꾸 머릿속에서 재생되었습니다. '음. 내가 뭘 잘못했지?, 잘못한 건 딱히 없는데.. 그냥 내가 나섰던 게 오버였나 보다'라는 식으로 혼자서 이상한 해석을 붙이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처음에는 '분노'였던 감정이 서서히 수치심과 자기 비난으로 모양을 바꿔 갔습니다. 제가 생각을 곱씹으며 보낸 시간이 감정을 잘 다룬 게 아니라, 감정을 안에서 폭발시키고 있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감정은 고장이 아니라 신호입니다
어느 날 감정과 관련된 글을 읽다가 감정이 발생하면 그 신호를 살펴봐야 한다는 문장에 밑줄을 그었습니다. 분노는 자신의 경계선을 침해당한 것을 알려주며, 불안은 준비가 부족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에 마주하면 나타나는 감정입니다. 슬픔은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어서 상실을 뜻하고, 죄책감은 누군가에게 해를 입혔을 때 나타나는 반응입니다. 수치심은 존재 자체로 결함이 있다고 느낄 때 주로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이러한 구분을 보는 순간 감정에 옳고 그름이 있지 않고 그저 신호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이런 감정의 분류를 살펴보고 그날 회의실에서 느꼈던 감정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올라온 분노는 내 의견이 무시당한 것 같은 느낌으로 나타났고, 그 뒤로 밀려온 슬픔과 수치심은 존중받고 싶은 욕구가 충분히 충족되지 못해서 나타난 반응이었습니다. 이렇게 체계적으로 분석을 해보니까 제가 감정에 '예민한'사람이 아니라 존중의 욕구를 채우지 못하면 극단적인 생각으로 치닫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감정을 문제로 볼 때는 '나는 왜 이렇게 예민하지?'로 끝났지만, 감정을 '신호'로 보고 해석하니까 어떤 순간에 더 예민해지는 사람인가를 생각하고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심각해지면 조절할 필요성이 생깁니다. 부정적 감정을 다루는 3단계 전략을 먼저 알아보고 평소에 실천해 보면 어떨까요.
1단계: 감정 알아차리기 (레이블링)
2단계: 감정 수용하기 (판단 없이 머물기)
3단계: 표현 및 해소 전략 선택하기
이러한 단계를 먼저 충분히 숙지하고 나면 비슷한 상황에서 작지만 강력한 실천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회의시간에 저의 의견이 별 반응 없이 넘어간 유사한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번에는 동료의 농담 대신 그냥 조용한 무반응이 더 아프게 느껴졌습니다.
감정을 공부하기 전이었다면 분명 분노와 수치심으로 치달았을 감정이었지만 그날은 3단계를 적용해 보려고 애써봤습니다. 지금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이름을 붙여보고,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무시당한 것 같다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그 생각을 노트에 차분히 쓰다 보니 감정이 전혀 없는 상태는 아니더라도 예전보다는 깊은 우울감으로 내려가진 않았습니다.
스스로 어떻게 느끼는지 알아차리고, 그 감정이 어떤 신호를 보내는지 수용하면 깊은 우울감이나 존재 자체의 비하까지 이르지 않았습니다. 더 용기를 내어 본다면 회의 시간에 있었던 내용을 간단히 메모장에 적어보고 I-Message로 상대방에게 표현해 보면 3단계를 충분히 소화해 낸 것입니다.
"아까 회의에서 제가 의견 냈던 부분 있잖아요. 그게 반응 없이 지나가서 조금 허탈하기도 하고 제대로 전달이 된 건가 싶더라고요. 나중에라도 제가 생각한 방향을 한 번만 더 설명해도 괜찮을까요?"
이런 말을 처음 꺼낸다면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서 심장이 두근거리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역시 난 쓸모없는 사람이야'라고 혼자 결론 내리고 감정을 내면에서만 눌러 담아 폭발시키는 것보다는 훨씬 더 자신을 보호하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I-Message로 말한다고 해서 항상 깔끔하게 관계의 갈등이 풀리지 않습니다. 그래도 감정이 스스로를 침몰시키는 덩어리가 아니라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무언가를 알려주는 신호라는 걸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질투, 외로움, 수치심. 숨기고 싶던 감정들의 얼굴
부정적 감정이라고 부르는 감정 중에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건 수치심이었습니다. '내가 이런 글을 써도 되는 걸까?', '내가 글쓰기 강의를 하면 욕하지 않을까', '직무 상담에서 학생들이 비난하는 건 아닐까'라며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에 압박감을 느꼈습니다.
행여나 잘못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끝도 없이 머릿속에서 펼쳐집니다. 완벽주의를 요구하는 사회에서 누구나 수치심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수치심 권하는 사회>에서는 '자신에게 공감하고 자신을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나는 지금 수치심을 느끼고 있다'
'수치심은 내가 부족하닥고 느낄 때 생기는 감정이다'
'누구나 잘하기도 하지만 부족하기도 한다. 항상 잘할 수는 없다'
수치심은 완벽주의와 연결되는 감정입니다. 지금 하는 일이 완벽하게 끝나도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끝없는 수치심에 고통스러워합니다. 결과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더 잘해야 하는 자신에게 채찍질을 가합니다.
이러한 감정에서 벗어나려면 용기를 내어 스스로 어떤 모습인지 인지해야 합니다. 지금 수치심을 느끼면 어떤 상황인지 돌아보고 그 감정을 인정한다면 지금까지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야 합니다. 그게 우선입니다. 이러한 만족을 먼저 챙기고 자신을 다독여줘야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힘이 됩니다.
오늘 하루 어떤 알람이 울렸나요
하루에 한 번 '오늘 하루, 나를 가장 강하게 흔든 감정은 무엇이었나'를 생각해 봅니다. 그 감정은 어떤 이름을 갖고 있는지, 그 감정 아래에 숨어 있던 나의 욕구는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 감정을 나는 어떤 방식으로 표현했는지 잠시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노트를 펼치고 글을 써봅니다.
물론 단답형으로 쓸 수도 있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날은 그냥 넘어가도 무방합니다. 처음에는 '그냥 피곤했다', '아무 느낌 없었다', '즐거웠다', '행복했다'라는 단어로 출발해서 조금씩 자세히 서술하는 형태로 성장했으면 합니다.
"오늘은 옆 직장 동료와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어서 기분이 상쾌했다. 서로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관계로 나아가고 있어서 소중한 동료를 얻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나도 그 동료에게 좋은 기운을 주게 되어 한없이 기쁜 하루였다"
이렇게 적고 나면 오늘 하루의 감정이 '지겨운 파도'가 아니라 '조금은 읽을 수 있는 지도'처럼 새롭게 다가올 겁니다.
예전에는 거의 대부분 분노와 수치심의 차이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당연하게도 구분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상대방에게 화를 표현하거나, 수치심을 느끼면 존재의 부정까지 이어지는 자기 비하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원래 예민해서 감정 조절이 안 되는 사람이지'라고 단정 지었습니다.
그런데 감정을 억누르거나, 아니면 '어차피 난 이런 사람이야'라며 마음껏 폭발해 버린다면 결국 정서 조절 이론에서 말하는 극단적인 방법일 겁니다. 이렇게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으로 감정을 처리한다면 조금 바꿔 말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나는 감정을 완벽하게 조절하지 못하지만,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고 있고 실천하고 싶은 사람이다"
이렇게 정의를 바꾸는 순간, 실패도 조금 다르게 보일 겁니다. 감정에 휩쓸려서 날카로운 말을 해버렸다면 '역시 난 예민해'라는 말 대신 '오늘은 조절이 조금 안 된 날이네. 다음에는 3단계를 다시 잘 떠올려보자'라고 성장형 마인드로 바꿔 볼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은 앞으로도 계속 찾아올 겁니다. 하지만 예전과 다르게 그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나에게 주는 신호라고 재빨리 인식하고, 다른 반응을 보인다면 성장에 기여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하루를 떠올리면서 혹시 마음이 크게 흔들렸던 장면이 하나 떠오른다면 3단계를 적용해 보면 어떨까요.
1단계: 오늘 내가 가장 강하게 느꼈던 감정은 ___이다.
2단계: 그 감정 아래 숨어 있던 나의 욕구는 ___이다.
3단계: 그래서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찾아오면 ___라고 말해보고 싶다
완벽한 답은 없습니다. 그 문장을 채우기 위해 잠시 멈춰 서서 감정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 파도를 읽어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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