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펼쳐보는 내 인생, '자기 역사 연표' 작성법

by 곽준원

사람에게는 어느 시점이 되면 자연스럽게 자기 삶을 되돌아보고 정리하고 싶어지는 욕구가 있다고 노년 심리학자 로버트 버틀러는 말했습니다. 이것을 삶 회고라고 부릅니다. 삶 회고는 단순히 과거의 추억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에서 중요했던 사건들을 떠올리고 그때의 감정과 생각을 함께 복원하고 지금의 나와 연결되는 의미를 다시 부여하는 과정입니다.


처음에는 주로 노년기 연구에서 다뤄졌지만, 요즘은 성인 전반의 '자기 이해'와 '정체성 통합'에 중요한 작업으로 인식됩니다. 지나온 시간들을 차분히 정리하는 과정만으로도 우울과 후회가 덜어지고, '그래도 나름 꽤 잘 살아왔구나'하는 감각이 생긴다는 연구들도 많습니다.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에서 말하는 '자기 역사 연표'는 이러한 삶 회고를 시간 축 위에 시각화환 도구라 할 수 있습니다. 나이, 연도별로 중요한 사건을 적고, 그 옆에 감정, 의미, 지금의 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보는 방식입니다.


자기 역사 연표 만들기

보통 어떤 글을 쓸 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는 이유는 자신이 쓰고 싶은 주제를 정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소재 혹은 테마를 말하는 것인데 자기 역사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으므로 크게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 자신이라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다시 되돌아보는 과정이 바로 자기 역사의 기본입니다.


물론 가장 최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적어보려면 쉽지 않습니다. 분명히 바쁘게 살았는데, 떠오르는 장면도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매일 아침 대중교통, 모니터, 야근, 배달 음식, 이불속을 들락날락 하지만 내면에는 몇 장면만 대충 덩어리로 뭉쳐 있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그렇지만 자기 역사 연표는 인생의 타임라인을 그리는 작업으로 골격은 이력서(학력, 경력), 개인 생활사, 가족사 등이므로 먼저 기억이 떠오르는 대로 메모해 두는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저는 '자기 역사 연표'를 이렇게 만들어봤습니다.

공부가 싫어 외부로 많이 맴돌았던 10대.
마음에 들지 않은 학교와 학력을 바꾸려고 노력했던 20대.
하고 싶은 일과 금전적 여유의 갈림길에서 괴물이 되어가는 30대.
아이를 키우며 삶과 인생을 제대로 알아가려고 분투하는 40대.


이렇게 먼저 10년씩 끊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테마를 정해봤습니다. 자기 역사 연표의 끝은 어디일지 자신도 알지 못합니다. 아마도 우리가 모두 다가가는 그곳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10년씩 끊어서 작성해 봤지만, 조금 더 세부적으로 나눠서 주제를 적어보면 더욱 좋습니다.


시대 구분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는 개인의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구분할지 차분히 생각해 보는 지점에서부터 자기 역사의 집필은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인생이란 단순한 4차원 시공간 안에서의 이동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 시공간 안에 있었던 다른 이들은 어떤 관점으로 살았는지 공유하고 혹은 부딪치기도 합니다. 이러한 인간관계가 감정의 측면에서 바라볼 때 살아간다고 하는 행위가 아닐까요.


인간의 기억은 구체적인 것과 연계되어 기억 시스템 속에 저장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어릴 적 사진을 보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사진 이외에도 추억이 담긴 옛날 물건들을 찾아 놓으면 기억이 되살아나기도 합니다. 옛날에 썼던 일기장, 어린 시절에 쓴 글, 다른 사람에게 받은 편지나 주고받은 연하장 등 다양한 자료들을 살펴보면 기억이 더욱 구체화됩니다.


싫어했던 것이나 괴로웠던 것을 자기 역사로 써 내려가면서 조금씩 정화되고, 모든 일이 그리운 추억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이러한 의미 변화가 자기 역사를 쓰는 가장 큰 효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역사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자신의 실패를 숨김없이 써 내려가면서 그 실패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면밀하게 자기 분석하는 부분입니다. 반성적 사고를 통해 자신의 부족한 면을 찾고 보완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성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무엇을 쓸 것인가

이제 '자기 역사 연표'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면 남은 것은 실천하는 일입니다. 쓰다 보면 자기 역사를 쓰는 일이 꼭 자신만을 위한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도 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여러 일화를 글로 남기면 저의 아들이 성장해서 본인의 역사를 쓸 시기에 저의 글이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아들이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일을 저의 글을 통해 알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시공간을 초월한 멋진 일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기 역사를 써 내려갈 때, 처음부터 큰 틀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개인사를 들여다보는 눈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들여다보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70년대, 80년대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찾아보며 자신의 삶과 엮어 보는 작업도 중요한 일입니다. 그 시대, 왜 우리 부모 세대는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시대적 배경을 알면 이해하기가 더욱 수월해집니다.


1994년 성수대교,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1997년 IMF
2002년 한일 월드컵
2008년 세계 금융위기
2014년 세월호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처음에는 '굳이 이런 걸 같이 써야 하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연표 위에 올려놓고 보면 이 사건들과 내 삶이 생각보다 많이 엮여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나는 그저 개인의 선택과 의지로만 지금껏 살아온 줄 알았는데, 사실은 시대의 물살과 함께 떠밀려온 지점도 많았다는 걸 여러 사건을 통해 알게 됩니다.


마무리 단계에서는 '이렇게 하고 싶다' 혹은 '이렇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나아가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등의 생각이나 적극적인 희망사항이 있으면 분명하게 기록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기록으로 남겨 놓아야 할 내용이 있다는 것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나 혹은 자신이 살아온 시대에 대한 소감이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연표를 어느 정도 채우고 나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쭉 훑어보았습니다. 저는 저의 연표를 보면서 어떤 패턴이 보이는지 찾아봤습니다. 놀랍게도 굵직한 사건들 옆에는 거의 항상 같은 흐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새로운 학교, 새로운 회사, 새로운 역할.


사건이 일어난 시점 옆에 감정 칸에는 대부분 '처음에는 무서웠다', '내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와 같은 두려움이 가득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건을 현재 시점에서 보면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어떻게든 적응했네'와 같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새로운 상황에서 겁을 먹는 제 모습을 보며 '왜 이렇게 예민하고, 도전하기 어려워할까'만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조금 다른 방법을 제 자신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나는 여전히 도전 앞에서 머뭇거리는 사람이지만, 그 두려움을 안고도 한 발은 내디뎌 온 사람이다"라는 문장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기 역사 연표는 그렇게 제 삶의 패턴을 비난의 근거가 아니라 믿어볼 만한 근거로 보여주었습니다.


연표 위에 줄줄이 늘어선 사건들을 바라보며 잠깐 시간을 내어 그때그때의 저에게 한 마디씩 말을 걸어보았습니다. 전학 첫날, 교실 문 앞에서 숨을 고르던 나에게 '그때 진짜 떨렸을 텐데 용기 내었구나. 50명이 넘는 아이들 앞에서 자기소개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했어'라며 다독여 주기도 했습니다.


삶 회고 이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과거의 장면들을 다시 떠올리며 거기에 다른 의미를 붙이는 일은 조금씩 사람을 치유해 줍니다. 자기 역사 연표를 만들지 않았다면 '왜 이렇게밖에 못 살았지'라는 후회만 남았을 장면들이, 선 위에서 서로 연결되고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서 있었습니다.


자기 역사 연표를 모두 작성하고 살펴본 결과 저는 '꽤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다'라고 처음으로 제 삶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자기 역사 연표의 맨 오른쪽 끝에는 '현재'라는 점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연필을 들고 그 점 옆에 짧게 적어보았습니다.


2026년. 감정을 글로 정리해 보며 내 삶의 궤적을 다시 보고 있는 시기.


지금 글을 쓰는 이 시기도 언젠가는 제 역사의 일부분이 될 것입니다. 계속 걱정만 하며 살았던 시기가 아니라 책을 읽으며 삶의 지식을 배우고 실제 삶에서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하며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임에 틀림없습니다.




자기 역사 연표라고 하면 거창한 도표를 떠올릴 수도 있지만, 사실 시작은 아주 단순합니다. A4나 노트 한 장 위에 가로로 선을 하나 긋고, 마음에 남은 사건 다섯 개 정도를 적습니다.


그 아래에는 그때의 사건을 한 문장으로 작성하고, 감정 한 단어, 그 경험에서 배운 점 한 줄, 지금의 나와의 연결 한 줄을 적어봅니다. 정확하게 해당 연도를 기억한다면 사회에서는 어떤 사건이 발생했는지 찾아봅니다.


이렇게 감정, 배운 점, 역사와 연결하면 그것이 바로 나만의 자기 역사 연표가 됩니다. 저는 지금도 가끔 연표를 꺼내봅니다. 새로운 사건이 생기면 한 칸을 더 추가합니다.


2024년. 학점은행제 심리학사 취득


그렇게 칸을 하나씩 채워 갈수록 미래의 시간들도 막연한 공백이 아니라 언젠가 채워질 서사의 자리처럼 느껴집니다. 삶은 여전히 예측 불가능하고, 불안은 여전히 찾아옵니다.


그래도 '나는 지금까지도 이렇게 걸어왔고, 앞으로도 이 선 위를 계속 걸어갈 것이다'라는 사실은 변치 않습니다. 자기 역사 연표는 그 사실을 잊지 않도록 책상 서럽 한편에서 증명해 주는 종이 한 장입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mindunf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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