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설계도 '자기 스키마' 탐색하기

by 곽준원

심리학자 해즐 마커스는 우리가 자신을 볼 때 마음속에 몇 가지 '자기 스키마'라는 틀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나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다'

'나는 늘 한 발 뒤에 서 있는 사람이다'

'나는 사랑받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사람이다'


이런 식의 믿음들이 바로 자기 스키마입니다. 이 스키마는 과거의 반복된 경험과 감정, 그리고 중요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됩니다. 그래서, 비슷한 상황을 또 만나면 우리는 거의 자동으로 같은 감정, 같은 반응을 하게 되고 어느 순간 '나는 왜 항상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반응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자기 탐색의 핵심은 바로 이러한 자기 스키마를 '의식화'하는 작업입니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 내 삶을 연대기로 정리해 보고, 감정의 흐름을 중심으로 자주 반복되는 감정을 살펴보고, 나에게 큰 영향을 준 사람과 관계를 돌아보면서, 결국 '아.. 그래서 내가 이런 상황에서 늘 이런 반응을 했던 거구가'하고 내 안의 패턴을 알아차리는 훈련입니다.


나는 왜 어떤 상황에서는 비슷한 감정을 느낄까

어느 날 문득 '손윗 남자 어른이 왜 이렇게 관계가 어려울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사에서든, 가족 안에서든 손윗 남자 어른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는 제법 잘 어울리며 농담도 잘 주고받는 반면 손윗 남자 어른에게는 경직된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시간이 빨리 흘러가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무언가 불편하고 불안한 마음이 내면에 가득했습니다. 상황은 매번 달랐는데, 제 안에서 느끼는 감정의 패턴은 너무 익숙했습니다.


"나는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사는 데 바빠서 미뤄두었던 질문을 조금 용기 내어 꺼내 보는 것이 바로 자기 탐색의 시작입니다. 질문을 던지기 전까지 저는 생각보다 제 삶을 정리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원래 내가 이런 사람인가 보다'라고만 생각하며 패턴을 인식하지 못하고 '성격'으로만 받아들이고 있었던 겁니다. 어려서부터 예민해서 사람을 만나면 낯을 가리거나 경직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린 시절부터 청소년기 성인초반을 거쳐 사회생활을 20년 넘게 지속한 지금까지 각 시기마다 떠오르는 장면과 감정을 적어보기 시작하면서 단순히 '예민함'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패턴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에는 물론 막막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다시 떠올리기도 힘들었고, 그 당시에 느낀 감정을 지금 생각해 본다고 크게 인생이 달라질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유의 글쓰기'라는 타이틀은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기준을 조금 낮췄습니다. '모든 사건'이라는 완벽함을 추구하지 않고 '감정이 강하게 남아 있는 몇 순가'만 고르기로 했습니다. 노트 한 장에 네 칸을 나누고, 각 칸에 제목을 붙였습니다. 각각의 칸에는 어린 시절, 고등학교 때, 대학생 및 사회 초년생, 그리고 결혼 이후에 생활이라고 주제를 선정했습니다.


그리고 떠오르는 장면을 한 줄씩 적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시절 칸에는 '장난감을 갖고 싶어서 거짓말을 했던 사건'이 먼저 생각났습니다. 그때의 저는 항상 부족한 아이였고, 조건을 붙인 아버지의 말에 갖고 싶었던 장난감을 손에 넣으려고 거짓말을 했던 아이였습니다.


고등학교 칸에는 '공부보다는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학생'이라고 적었고, 대학생 및 사회 초년생 칸에는 '독립하려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 헤매는 시간'이라고 여러 장면을 한 줄로 정의했으며, 마지막 결혼 이후 지금까지 생활한 장면을 적는 칸에는 '하루도 쉬지 않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월급쟁이 아빠'라고 적었습니다.


이렇게 각 주제에 관련된 내용을 적고 나서 그 네 칸을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도 계속 반복되는 단어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조용함', '비교', '쓸쓸함', '버티기'


이런 단어들을 보면서 조금씩 감이 왔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혼자 버티는 사람이라는 스키마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여러 사건을 분리해서 적었다면 그때의 감정도 함께 적어보면 더욱 좋습니다. 여러 사건에 감정을 덧붙여 적어 놓고 보니까 하나의 문장을 쓸 수 있었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혼자 버티는 사람으로 살아왔고, 그 역할을 잘 해내는 데 나의 가치를 걸어왔다."


자기 스키마 이론으로 보면 이건 꽤 강력한 스키마입니다. 힘들어도 티를 내지 말아야 했으며, 도움을 요청하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라 생각했고, 혼자 어떻게든 해내야 하는 게 성숙한 어른다움이라고 내면에 뿌리내린 사고에 지배당했습니다.


이런 믿음들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계속 저의 마음을 묶고 있었던 겁니다. 이런 글을 쓰고 나서야 제가 왜 관계 속에서 도움을 요청하거나 약한 내 모습을 보여주는 일을 어려워했는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관계라는 거울을 통해 드러나는 나의 패턴

자기 탐색 글쓰기의 또 한 축은 관계 중심으로 나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큰 영향을 준 사람들을 떠올려 봤습니다.


어린 시절 저를 돌봐주던 외할머니, '넌 참 올바르게 컸구나'라고 말해주던 선생님, 실수를 했을 때 '고장도 내봐야 고칠 줄도 알지'라며 경험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어머니. 회사에서 늘 저에게 어려운 일을 먼저 맡기던 상사. 이런 사람들 곁에서 제가 보이던 특징적인 반응들을 적어보았습니다.


'힘든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던 나'

'지금 충분히 잘한다는 칭찬보다 앞으로 더 잘해라는 말에 중압감을 느끼던 나'

'실수에 관대한 사람보다는 기준이 엄격한 사람 옆에서 더 긴장하던 나'


이런 글을 쓰면서 하나 깨달은 사실이 있습니다. 저는 기댈 수 있는 사람이기보다 기대주어야 하는 사람이 되려고 늘 애써왔다는 사실입니다.


이건 분명 관계 속에서 강화된 스키마였습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집에 문제를 더 만들면 안 된다라고 느끼며 조용히 스스로를 지키려 했던 기억. 친구들이 고민을 털어놓을 때 내 이야기는 뒤로 미루고 들어주는 사람 역할을 맡는 게 자연스럽게 느껴졌던 순간들.


그 장면들을 쓰다 보니 제 마음속에서 '나는 혼자 버티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타인의 짐을 들어주는 사람으로 정의해 왔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스키마가 계속 유지되니, 조금만 힘들어져도 제일 먼저 튀어나오는 생각은 늘 비슷했습니다.


'이 정도는 다들 참고 사는 거야'

'이 정도는 내가 감당해야지, 누구한테 부탁을 해'


문제는 이렇게 마음을 계속 방치하다 보면 언젠가는 조용히 바닥이 드러난다는 점이었습니다. 자기 탐색을 하다 보면 꼭 한 번쯤 마주치는 벽이 있습니다.


'그때 나는 왜 그렇게 밖에 못 했을까.'

'조금만 더 잘했으면 지금은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저도 여러 장면에서 이러한 과거의 후회가 자꾸 밀려와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자기 역사를 쓴다는 건 완벽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이해하고, 연민의 마음으로 자신을 보듬어 가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가장 후회되는 장면 하나를 골라 문장을 다듬어 봤습니다.


'그때의 나는 그 선택이 최선이라고 믿을 만큼 여유가 없었다. 그래도 그때의 나 덕분에 지금의 내가 여기까지 온 것도 사실이다.'


과거의 나를 미숙한 누군가로만 보지 않고, 그때의 환경과 감정, 능력치를 감안해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람'으로 이해하려고 애쓰니까 조금은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자기 스키마를 의식화하는 작업도 결국 이와 비슷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내가 이런 과정을 거쳐서 이런 믿음을 갖게 되었구나. 그래서 지금도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반응을 보이는구나.'


이러한 배경을 알아차린다는 건 비난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이제는 조금 다른 선택도 해볼 수 있게 되었다는 가능성이 열리는 일에 가깝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자기 탐색이라고 해서 거창한 프로젝트를 떠올리지 않습니다. 그저 내 삶의 특정 시기 하나를 골라 그때의 나를 한 문장으로 적어보고, 그때의 감정과 장면을 몇 줄 더 덧붙여 보고, 그 경험이 지금의 나에게 어떤 스키마를 남겼는지 조용히 짐작해 보는 정도로 마무리합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작업입니다.

고등학교 3학년의 나는 '실수하면 사랑받지 못한다'라고 믿고 있었다.
첫 직장에서 나는 회사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어야 존재 가치가 있다고 느끼며 버텼다.


그 옆에 그 믿음을 갖게 된 사건과 감정을 적어보고, 마지막에 한 줄을 추가해 봅니다.

이러한 믿음 덕분에 나는 버텨왔지만, 이제는 나를 더 괴롭히지 않는 방식으로 조금 바꿔보고 싶다.


자신을 바라본다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용기를 낸 만큼 우리는 내 삶의 맥락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고, 내가 이렇게 느끼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건네줄 수 있게 됩니다.


오늘 하루가 끝나기 전에 노트에 이렇게 써보면 어떨까요. 4분면으로 나눠서 어떤 이야기를 떠올려 볼까 생각해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언제인지 기억해 내고 그 시기를 적어보는 겁니다. 그리고 각 문장 옆에 짧게 한 줄씩만 에피소드를 적어봐도 괜찮습니다.


이렇게 쓴 자기 탐색은 오래된 스키마를 알게 해 주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연민의 감정으로 품어주는 것만으로도 삶은 성장하는 길로 들어섰다고 확신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마음의 치유는 분명 찾아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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