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한 다짐보다 구체적이고 도전적인 목표가 사람을 더 움직입니다. 로크와 레이섬이라는 두 학자는 아주 단순하지만 강력한 사실을 목표 설정이론으로 설명합니다. 이론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목표가 구체적일수록 달성할 확률이 올라갑니다. '감정에 솔직해지고 싶다'라는 것보다 '하루에 한 번, 내 감정을 문장으로 쓴다'가 훨씬 행동을 이끄는데 유리합니다. 적당히 도전적인 목표가 더 동기 부여를 일으킵니다. 너무 쉬우면 지루하고, 너무 어려우면 포기하게 됩니다. 피드백과 점검이 있어야 지속할 수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달성했는지, 방향이 맞는지를 중간중간 확인해줘야 합니다.
목표 설정 이론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SMART 목표(Specific, Measurable, Achievable, Relevant, Time-bound)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감정 인식, 정리, 표현 루틴을 만들고, 30일, 90일, 1년 계획으로 나누어 SMART 하게 목표를 세우고, 아주 작은 습관을 만들고 지지 체계를 만들어 두면 목표 달성에 훨씬 유리합니다.
새해 첫 주에만 빛나던 계획들
저는 무슨 일을 하든 먼저 계획을 세우고 진행하는 편입니다. 특히 새해에는 여러 계획을 세웁니다. 매일 일기 쓰기, 적어도 한 달에 책 4권 읽기, 일주일에 적어도 5번 운동하기 등등.
목표를 적을 때는 정말 모두 진행할 것처럼 느껴집니다. 펜과 다이어리는 항상 새 제품으로 준비합니다. 문제는 늘 열흘 정도가 지나고부터입니다.
야근이 많아지면서 몸이 피곤해지고, 어느 날 일기를 한 번 빼먹으면 거의 며칠 동안은 다시 시작하기 힘들 정도가 되어버립니다. 계획은 화려했고, 목표는 그럴듯했지만 제 안에는 한 가지가 빠져 있었습니다.
모든 계획을 일상에서 어떻게 습관화할 것인지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지 않았던 것이죠. 즉, 목표 설정 이론에서 말하는 SMART 중에서도 특히 '달성 가능'과 '시간제한', 그리고 매일매일의 작은 행동 계획이 없었던 겁니다. '감정 인식 루틴, 정리 루틴, 표현 루틴'과 같은 실행 단위의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을 저는 꽤 늦게 깨달았습니다.
독서와 글쓰기를 시작하고, 심리학에 깊이 빠져들어 학습하던 시기에 30일 동안 감정 일기를 써보려고 계획했습니다. 물론 계획을 한 번 세우면 끝까지 집요하게 해내려는 성향이지만 '30일 내내'라는 압박은 도전을 꺼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SMART라는 목표 설정 이론을 배우고 난 뒤에는 '작고 구체적인 목표'를 실행해보고 싶어 졌습니다. 그래서 조건을 아주 작게 설정했습니다.
시간은 잠들기 전 10분, 장소는 책을 읽는 책상, 내용은 오늘 가장 많이 느낀 감정 한 가지와 그 이유 두 줄로 정했습니다. '완벽한 감정노트'가 아니라 '구겨진 마음이라도 한 줄은 적자'라는 마음이었습니다. 몇 날 며칠은 꽤 잘 지켜졌습니다.
오늘의 감정: 초조함.
이유: 개발 마감이 코앞으로 다가와 머릿속에서 내내 구현의 방법론을 모색함.
오늘의 감정: 안도감.
이유: 크게 걱정했던 일이 생각보다 잘 지나가서.
하지만 10일쯤 지나자 역시나 감정 노트를 적지 못하고 지나치는 날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야근하고 집에 도착해서 씻고 잠시 쉬려고 누웠는데, 그대로 잠들고 말았습니다. 감정 노트 따위는 머릿속에서 사라진 날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감정 노트 쓰기가 생각나서 '아.. 어제 빼먹었다'하는 순간, 완벽주의 자아가 나타나 자기 비하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인지 오류인 이분법적인 사고가 상당히 강력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완벽주의 자아는 그 이분법적인 사고를 건드려 하나라도 실행하지 않으면 실패라는 잣대를 들이댑니다.
그런데, 인지 오류를 인지하고 있던 상태에서는 이러한 이분법적인 사고가 나타나면 이전과 다르게 반응하려고 노력합니다. 예전에는 한 번의 오차,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면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멈추지 말고 다시 시도하려는 마음 가짐을 유지합니다.
30일 달력에 날짜 옆에 동그라미 대신 세모를 하나 그려 넣어봤습니다. 동그라미는 감정 노트를 쓴 날이고, 세모는 하루 늦게라도 챙긴 날을 의미합니다. 엑스는 완전히 놓친 날로 표시했습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표시하고 나니 계획의 목적이 '30일 개근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자주 떠올리고 알아차리는 사람으로 조금씩 바뀌는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목표 설정 이론이 말하는 '피드백과 조정'을 저만의 방식으로 시도해 본 첫 번째 경험이었습니다.
90일 동안 자기표현 연습하기
감정을 조금씩 인식하는 연습이 습관으로 자리 잡았을 때, 다음 도전은 어떻게 할지 생각해 봤습니다. 감정을 알아차리는 사람에서 정확하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으로 옮겨가 보고 싶은 욕구가 반응했습니다.
90일 계획의 큰 틀은 '자기표현 능력 키우기'를 목표로 설정했습니다. SMART 원칙에 적절하게 가능한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90일 동안 I-Message를 활용한 감정 대화 시도 3회, 감정 표현을 적어도 한 문단 작성하기 4회. 해당 문장을 보면 구체적으로 작성했으며, 횟수로 측정이 가능하도록 목표를 잡았습니다. 3개월에 대화 시도 3회, 문단 작성하기 4회면 해볼 만한 숫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첫 번째 시도였습니다. 가장 가까운 아내와의 대화에서 마침 적당한 장면이 나타났습니다. 제가 조금 서운했던 일이 있었고, 예전의 저였다면 그저 묵묵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넘겼을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I-Message를 떠올리며 말을 꺼내 보았습니다.
"조금 전에 했던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농담처럼 느껴지지 않았고 진심 같아서 속상했어."
입 밖으로 내보내는 순간까지 심장이 쿵쾅거렸습니다. 이런 말을 꺼냈다가 분위기만 더 어색해지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이 내면에 자리 잡았습니다. 다행히 아내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짓더니 진지한 얼굴로 저의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었습니다.
"그렇게 느낄 줄은 진짜 몰랐어. 말해줘서 고마워."
아내와 대화를 나누고 난 후에 90일 계획 노트에 '시도 1회. 성공'이라고 적어두었습니다. 90일 동안 세 번의 시도를 모두 성공했느냐면 그렇지 않습니다. 머릿속으로 느낀 바를 말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시도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담아두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저는 예전보다 감정을 말할지 말지 오래도록 고민하는 사람에서 조금 더 말해보는 쪽에 가까워졌습니다. 목표 설정 이론식으로 말하자면, 완벽한 달성은 아니지만 방향은 분명히 목표를 향해 움직인 셈입니다.
혼자보다는 함께해야 가능성이 높아진다
30대 초반에 금연을 다짐하고 '금연 길라잡이'를 친구에게 추천받아 가입했습니다. 사이트에서는 금연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성공 확률이 높은 방법을 알려줍니다. 금연 결심을 주변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 그 첫 번째입니다.
금연을 결심했으니 내 의지를 꺾지 말고 지지해 달라고 요청하는 과정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한 가지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트에서 금연을 실패한 사람과 어떻게 성공했는지 노하우를 공유하는 글을 보면서 서로 의지하는 사람은 금연에 성공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감정 일기 쓰기와 같은 성장 계획도 비슷합니다. 함께 할 사람이 있다면 성공 확률은 조금 올라갑니다. 한 마디로 지지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저는 한동안 성장은 혼자 조용히 해결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계획도 혼자 세우고, 실패도 혼자 자책하고, 다시 시작할 때도 혼자 이를 악물었습니다. 그런데 예전 금연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주변에 지지하는 사람들이 존재했었죠.
그때 저에게 손을 내밀어 준 베스트 프렌드에게 감정 노트 쓰기를 공유했습니다. 3개월 동안 감정 정리와 표현 연습의 목표를 언급하며, 중간에 헤매고 있으면 한 번씩 점검차 피드백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친구는 웃으면서 그 정도는 얼마든지 해주겠다며 자신도 올해 세운 계획을 공유해 주었습니다.
함께 금연했던 친구에게 꽤 오랜 세월이 흘러 목표를 공유하며, 다시 한번 성장 계획을 누군가에게 말한다는 것 자체가 꽤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뒤로 저는 새로운 계획을 세울 때마다 아주 소수의 사람과 공유하는 습관을 들였습니다. 독서와 글쓰기는 새해가 되면 새롭게 신년 계획에 자연스럽게 적어놓습니다. 올해는 '한낮의 우울'이라는 1,000페이지가 넘는 벽돌 책을 꼭 완독 하겠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아내에게 저의 계획을 항상 공유하곤 하죠.
목표를 말로 꺼내는 순간, 그건 그냥 머릿속 아이디어가 아니라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약속'이 됩니다. 목표 설정 이론에서 말하는 '목표 헌신'은 이렇게 사람 사이의 연결 위에서 조금 더 단단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끔 계획을 세우면 꼭 한 번씩 위기가 찾아옵니다. 감정 노트 일주일 동안 백지상태, 책은 펼치지도 못한 채 흐른 한 달, I-Message로 말해보려고 하다가 타이밍을 놓치는 순간들. 예전의 저는 그런 날이 오면 바로 성장 계획 전체에 빨간 줄을 긋고 실패로 단정 지었습니다.
지금은 실패라고 생각해도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고, 다시 시작하려는 태도를 유지합니다. 그래서 요즘 제가 쓰는 방식은 계획 옆에 예상되는 방해 요소를 아예 같이 적어 둡니다. 야근, 몸살, 사람과의 갈등, 갑자기 떨어진 흥미. 그리고 그 아래에 방해 요소가 나타나면 어떤 행동을 할지 플랜 B를 미리 적어 둡니다.
감정 노트 대신 메신저 자기 대화창에 한 줄 남기기. 책 대신 감정 관련 글 하나라도 읽기, 말을 못 꺼냈다면 나중에라도 정리해서 메시지로 보내보기와 같이 플랜 B를 적어두면 실패가 '끝'이 아니라 다른 루트로 돌아오는 과정처럼 느껴집니다.
목표 설정 이론도 사실 '목표를 한 번에 달성하라'가 아니라, 목표를 향해 가는 동안 계속 피드백을 받고 조정하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실패를 계획 안에 포함시키는 일이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저는 예전처럼 멋있고 긴 리스트를 만들기보다는 작지만 지금의 나에게 정말 필요한 목표를 하나씩 정하고 달성하려고 노력합니다.
혹시 아직 올해 계획을 세우지 않았나요? 그렇다면 지금 이 기회에 한 번 목표를 SMART 하게 세워보면 어떨까요. 오늘 세운 성장 계획은 여러분의 성장 여정을 이어갈 나침반입니다. 무리하지 말고 꾸준히, 그러나 의식적으로 실천해 나갔으면 합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mindunf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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