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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황작물 Dec 14. 2021

엄마 같은 엄마는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돌아보니... 엄마만 되지 않았습니다

재택근무를 하는 프리랜서인 나는 매일 반복적인 일상을 보낸다. 오전 여섯 시 전후에 기상해 남편의 아침 식사를 차리고 출근 준비를 돕는다. 그가 나가고 나면 책상 앞에 앉는다. 돈을 벌기 위한 업무는 다섯 시간 남짓. 


이렇게 말하면 언뜻 여유롭게 보이기도 하지만, 내 하루는 상당히 빡빡하다. 아직 말하지 않은 내 일과에는 요리부터 청소, 빨래 등등 모든 가사 일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누구도 내가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말한 적은 없지만, 그야말로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런 상황이 그리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집안일은 끝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매일의 식사 메뉴를 정하는 것부터가 일이라는 것을 왜 전엔 몰랐을까. 하루하루 누적되어 갈수록 적응은커녕, 이 상황이 힘에 부쳤다. 


때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업무 시간이 늘어나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 분배가 헝클어지면, 촉박하게 집안일을 하느라 산발을 하고 종종걸음을 치기 일쑤. 남편이 귀가할 때면 녹초가 되어 있는 일이 잦았다. 그와의 대화가 세상 무엇보다 재미있어 결혼을 택했건만, 가끔은 그의 말조차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쩌다 약속이라도 생기면,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 되었다. 돈 버는 일도, 집안 일도 소홀히 할 수 없어 혼이 나갈 정도로 동분서주했다. 몇 주 전에도 꼭 그런 일이 있었다. 오랜만에 지인과 저녁을 먹기로 하자, 외출 전까지 모든 일을 마치고 다음 날 아침 식사까지 준비하느라 숨이 찰 것만 같았다.


그때 엄마에게 카톡이 왔다


아무래도 시간이 빠듯해 점심도 거르고 한참 일을 하던 때, 친정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저녁에 김장을 하려고 하니 시간이 되면 와서 거들고, 김치를 가져가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오랜만에 잡힌 선약이 있어서 그럴 수 없다고 즉각 답하며 대화가 이걸로 끝났길 바랐다. 


하지만 엄마는 계속해 문자를 보냈다. 몇 시에 만나는지, 누구와 만나는지, 언제 돌아오는지 물었다. 시간에 쫓기던 나는 짜증이 솟았다. 그렇게 중요한 일이면 미리 말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도저히 갈 수 없다고 딱 잘라 못 박으며 용건만 간단히 해달라고 매몰차게 대화를 정리했다. 


지인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엄마의 문자를 다시 열어보았다가 갑자기 울컥했다. 아무리 예년에 비해 양을 줄였다고 해도 김장은 혼자 하기 너무 힘든 작업이다. 엄마는 그 일을 사십여 년 간 하고 있다. 팔 걷어붙이고 돕지는 못할 망정 따뜻한 말 한마디 못 건넸다는 것에 후회가 밀려왔다. 


시린 마음을 추스르며 남편에게 연락을 한 나는, 다른 의미로 한 번 더 울컥했다. 인사처럼 건넨 저녁 먹었냐는 질문에, 그가 먹지 않았다고 답한 것이다. 밥 한 끼 알아서 해결할 수 없냐고 분노에 찬 문자를 보내려는 찰나, 갑작스러운 깨달음이 몰려왔다. 나는 지금 엄마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것을.


엄마 같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엄마만 되지 않았다


내 기억 속 엄마는 늘 정신없이 바쁜 사람이었다. 회사를 다니든, 식당을 운영하든 엄마는 늘 경제활동을 했고, 집에 돌아오면 또 모든 가사노동을 전담했다. 지금 돌아보면 이상하다 못해 잔인하게 느껴질 정도인데, 아빠와 우리 삼 남매는 이를 퍽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모든 노동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일인지 알면 알수록 엄마의 헌신이 경이롭게 느껴진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좀처럼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는 기계처럼 일했지만 기계가 아니었으므로, 참다못한 짜증과 분노를 자주 표출했다. 나는 늘 바쁘고 화난 듯한 엄마가 무서웠고 다정한 대화를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 유년시절, 나는 엄마 같지 않은 엄마가 되길 소망했다. 하지만 이게 뭔가. 가족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넬 여유도 없는 나는, 그저 엄마만 되지 않은 것이다. 그녀의 노력과 헌신은 숭고했으며 조금도 폄하할 생각이 없지만, 결코 내가 원하는 삶은 아니었다. 나는 바뀔 필요가 있었다. 


이제 나는 내 모자람을 열심히 떠벌이려고 한다. 난 많은 것을 해낼 능력이 없노라고. 이전에는 퇴근 후 돌아온 남편이 숟가락만 들면 되도록 저녁 상차림을 준비했지만 이제 그러지 않으려 한다. 저녁 식사는 함께 준비하고, 뒷정리도 같이 한다. 이 작은 변화만으로도 나는 조금 더 웃을 여유를 찾는다.


가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 적도 있다. 대단히 완벽하게 하는 것도 아니면서 이 작은 살림 하나 혼자 꾸리지 못해 앓는 소리를 하는 내가 이상한 건 아닐까 의심도 해봤다. 하지만 모두가 다를 수밖에 없으며, 나는 지금 내 깜냥으로 더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나가는 중이라는 점을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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