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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황작물 Nov 29. 2023

내 삶에도 뉴스가 흐른다

남의 일인 줄로만 알았었는데

어렸을 때는 뉴스가 너무 싫었다. 알아들을 수도 없고 겨우 알아들은 부분은 어제나 그제와도 다르지 않아 보였다. 아빠가 뉴스를 틀면 삼남매가 뭉쳐 민주주의네, 다수결의 원칙이네를 외치며 만화를 사수했다. 그 단조로운 목소리에서 흘러나오는 내용이 내 삶과 관련되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뉴스가, 국내외 거시적인 정치경제가 내 삶과 관련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 된 첫 사건은 IMF였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온 집안에 빨간딱지가 가득했다. 정확히 하자면 빨갛다기보다는 생뚱맞게 고운 진분홍색이었지만 으스스함을 연출하기에는 충분했다. 같은 일을 겪은 친구들을 심심치 않게 만나 외롭지는 않았다.


2002년의 신용카드 대란도 잊을 수 없다. IMF로 무너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부에서는 신용카드 사용을 촉진했다. 탈세 방지와 경제 부양을 위한 것이었지만 문제는 소득이 없는 사람에게도 무분별하게 카드를 발급하며 소비를 조장한 것이다. 그 결과 수많은 신용불량자가 양산되었다.


갓 성인이 된 나도 그 파도에 올라탔었다. 발급만 받고 쓰지 않아도 되니 신청서 한 장만 쓰고 가라는 카드사 직원이 너무 고생스러워 보여서, 좋아하지도 않는 키티 인형과 내 신용을 맞바꿨다. 아르바이트로 버는 수입은 변변치 않았고 모아놓은 자산은 더더욱 없었지만 카드 발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며칠 뒤 손에 들어온 얇은 카드 한 장은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만능감을 선사했다. 처음에는 벌이에 맞게 썼지만 내 의사와 상관없이 카드 한도는 쑥쑥 상향됐고 나는 결국 폭탄을 떠안게 되었다. 당시에는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고, 내가 멍청한 탓이라고 자학했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판단한다. 


그 후에도 여러 일을 겪었다. 2000년대 후반에는 모처럼 돈을 모아보겠다고 적립식 펀드에 가입했다가 손실을 보았다. 가입 당시 은행원은 말했다. 이론적으로는 손실이 날 수 있지만 국가가 부도나지 않는 한은 불가능하다고. 금액이 작아 큰 손해는 아니었지만 속이 쓰렸다. 


머지않아 뉴스를 통해 대규모 시위 사태가 일어난 것을 보았다. 은행의 금융상품 판매 방식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예적금 외에는 어떠한 금융상품에도 가입하지 않게 되었는데, 어느 날 오랜만에 찾아간 은행에서 홀린 듯 설명을 듣다가 정신을 번쩍 차렸다. 직원이 한 말 때문이었다. 


"이론상으로는 손실이 날 수 있지만 국가가 부도나지 않는 한은 불가능하다고 봐야죠."


판에 박은 듯 똑같은 말에 얼른 거절하고 나왔다. 금융상품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나는 리스크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고, 무엇보다 같은 말에 두 번 속고 싶지는 않았다.   


2019년, 큰맘 먹고 놀러 간 프랑스 파리에서는 교통수단이 없어서 고생해야 했다. 대대적인 파업으로 지하철, 기차, 버스 등이 정상 운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행을 가면 원래 지쳐 쓰러질 때까지 걷고 또 걷는 취미가 있지만 이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여행 내내 넘치도록 풍성했던 것은 사이렌 소리였다. 


2019년 12월의 파리


2021년에는 차량을 계약한 뒤에도 출고일이 잡히지 않아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코로나로 인해 부품 수급이 어려워져 계속해서 일정이 밀렸던 것이다. 대리점에서는 아무리 늦어도 2022년 2월에는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했지만 결국 출고된 것은 6월이었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차를 드디어 만나게 되나 설렜던 것도 잠시. 6월에는 화물연대의 파업이 있었다. 차량은 잘 출고되었으나 서울로 옮길 수가 없어서 언제 인도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다는 안내를 받았다. 파업을 응원하면서도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파업은 짧게 끝났다.


올해에는 뉴스에서 개정된 도로교통법과 교차로 우회전 방법이 자주 등장해 매번 귀를 기울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운전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었으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더 이상 그럴 수 없었다. 혹시 헷갈린다면 무조건 일시정지 하자. 


이제 내 삶엔 또 어떤 뉴스가 들어오게 될까. 최근엔 '슈링크플레이션'이란 말이 화제인 듯하다. 안 그래도 맥주캔의 용량이 교묘하게 작아져 그나마 술을 덜 먹게 될 것인가, '한 캔 더'를 외치게 될 것인가 궁금하던 참이었다. 정크푸드, 그러니까 몸에 하등 좋을 것 없는 '쓰레기 음식'을 대용량으로 파는 것도 꺼림칙하지만 슬며시 밑장 빼기를 하는 행위도 눈꼴시리다. 


또 한 가지 자주 들려오는 소식은 다중 채무자가 증가했으며 경제 상황이 불안하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동안 보지 못했던 대출 명함이 거리에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문득 걱정이 밀려온다. 


뉴스를 챙겨보는 편도 아니고 러닝머신 위를 달릴 때만 볼 뿐인데, 그 어떤 드라마보다 흥미진진해 채널을 돌릴 수가 없다. 시골에 가면 아빠와 리모컨 쟁탈전이 벌어진다. 아빠는 드라마를, 나는 뉴스를 보고 싶다. 우리, 언제 이렇게 바뀐 걸까. 삶이 영원한 꽃길일 순 없지만 사랑하는 이들이 부디 좋은 뉴스만 체감하며 살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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