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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8) 오늘 하루 내가 맛있게 먹은 음식?

[작가와 공동집필] 고마운 일상 B. 사물과 도구_ 질문 8.

by 쏘스윗

A) 기어코 먹고야 만 '팥 파이 만쥬'

그리고, 몰래! 먹는 게, 남긴 거 먹는 게 지인-짜 꿀맛!!!


그는 늘 말해왔다.

"넌 먹고 싶은 건 꼭 먹어야 끝나."


최근 한동안 뭘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잘 먹지 않게 되었고, 살이 이렇게 빠진 적은 처음이다.

이식을 하러 들어갈 때도 하고 나서도 다들 살이 빠질까 걱정했는데, 나는 왜 찌는 건지 걱정을 할 정도였으니.

병원밥을, 무균식을 그리 맛나게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잘 먹은 환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방사선 날 딱 하루 제외)


어제 홀로,

처음으로 다시 병원 주기를 줄여서 가는 날,

또다시 두려움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

무의식은 좋은 기억을 불러내주었다.


그것은 바로,

지난 외래에 앞선 걱정을 순간 날려주었던 그 맛.

내가 싫어했던 재료 ‘팥’으로 만든 ‘팥 파이 만쥬’이다.


싫어했던 재료의 음식이 왜 좋은 기억이냐고?

이야기가 조금 길다.

천천히 시선에, 발걸음에 동행해 주길.


그날은 1년 만에 가는 정기외래였지만,

급격히 다시 증상이 나타나는 시기였기에

사실 많이 두려우면서도 어느 정도 받아들일 준비를 하며 애써 스스로를 토닥이던 날이었다.

아주 긴장한 채, 병원으로 들어섰고, 가장 먼저 1층 3층 채혈실 눈치게임에 성공하여 1층에서 빠르게 피를 뽑았다.

그리고는 곧바로 언제나 나를 편안하게 하는 나만의 힐링 장소로 향했다.


그리고 "병원에서의 만남에 조금 슬프다."는 나의 말에, "병원은 건강해지려고 오는 것이니 슬퍼하지 말라."는 따스한 말을 전한 이를 만났다.


외래를 오면 하루 종일 병원에 있던 나는 익숙하게 카페로 안내했고, 거기서 그 가방 속 ‘팥 파이 만쥬’를 만났다. 하지만, 바리스타 일을 하던 나는 아무래도 카페에서 다른 음식 먹기를 조금 꺼려했기에 눈치가 보였다.

게다가 그 음식의 재료는 생각해 보니 내가 유일하게 싫어했던 음식인 ‘팥’이었다!

( 팥빙수에서 팥을 빼고 먹는 사람이 바로 나다. 뭔가 비닐에 쌓인 느낌이 싫다. 토마토의 껍질처럼! 어릴 때 콩과 팥을 정말 싫어해서, 매번 다 골라 남겼다가 엄마한테 혼날까 봐 물로 한 번에 알약처럼 삼켰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직원을 등지고 앉아있던 터라, 못 이기는 척 하나 받아 들었고 몰래 입에 털어 넣었다.

‘엥?’ 분명 별로 좋아하지 않던 재료의 음식이었고, 처음 먹어 본 것인데, 정말… 너무 맛있었다.

건네받았을 때 분명, ‘별로 안 좋아하는 거라서 괜찮다’고 말하다, 못내 한 입 (그러기엔 한 입에 주먹만 한 것 한 개..ㅎ) 했었던 것 같은데, 먹자마자 바로 후회를 했다.


‘엇, 뭐지 왜 이렇게 맛있어? 달콤함에 더불어 파스스 바스러지는 이 파이의 식감! 아, 하나 더 먹고 싶다.’

눈치를 챈 건지, 하나 더 건네기에 너무 신이 나서 받아먹다가 떨어뜨려버렸다. ‘아이, 이 덤벙이.’

생각이 바로 스쳤다. ‘으악 안돼!!!ㅜㅜ 이제 하나 남았는데? ㅠㅠ’ 하, 이 꿀꿀쏘.

투명한 나라서 웃겼는지 피식 웃더니, 결국, 남은 그 하나를 양보해 주었다. 정말 맛있게 먹었다.

떨어뜨린 하나는 버리려고 냅킨에 싸 두었다가 그 카페에 버리고 오기가 뭐해서 가방에 넣었다.


이후, 정신없이 이어진 검사들과 외래들, 그리고 급히 처리해야 하는 일들로 눈앞이 캄캄해지는 하루를 보냈다.

아마 검사 결과가 그랬기에 캄캄해진 것도 같았지만, 해야 할 일들은 그나마 나의 이성을 놓지 않게 해 주었다.

결과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는 게 필요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그리고 도착해서도 새벽까지 온 힘을 쏟아내, 할 일을 마친 후 기절하듯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집안에는 여전히 냉장고가 텅 비어 있었다. 몸이 너무 피곤해서 움직이기 조차 힘든 아침이라, 뭘 사러 나갈 수도 없었다. 식탁 위에 전날 받아온 한 무더기 약을 정리하다가, 가방 속에서 그 떨어진 만쥬를 발견했다.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입에 넣었다. (떨어진 시간이 3초 이상이었지만- 한 5초?, 분명 데굴데굴 굴렀지만)

크-, 가방 속에 버린 것이 너무 잘 한 선택이란 생각을 할 정도로 맛있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새 잠시 잊힌 맛.


시간이 흐르는 동안, 더 많은 일들이 생기고, 나는 점점 더 지쳐갔기에 입맛은 더 잃어갔다.

삶에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벌써 다음 외래가 다가왔다.

(주기가 줄어서 이렇게 빨리 온 건지, 삶에 아무것도 없었기에 빨리 온 것처럼 느껴진 건지 모르겠다.)

다시 병원에 가기 전날, 우연히 전날 먹은 파이가 떠올랐다.


떠오른 순간, 오랜만에 침이 나옴을 느꼈다. ㅎ.. (아직 침샘은 기능을 하는군.)


다음날 아침, 터미널로 가기 전에 나의 발은 나도 모르게 집 앞 빵집으로 향했다. 그 파이만큼 유명한 곳은 아니었지만, 꽤나 유명한 빵집이 집 앞에 있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마침 정말 똑같아 보이는 ‘팥 파이 만쥬’가 있었다. 생각지 못한 발걸음에 조금 늦어져 서둘러 버스를 타러 갔다. 하나 먹고 출발하고 싶었는데, 먹으면 목이 막힐 것 같았다. 물이나 음료를 살 틈도 없었다. (이미 출발한 차를 열심히 손을 휘저어 붙잡아 탄 정도였으니.)

오랜만에 뛴 이유로, 숨이 찼다. 뛴 게 오랜만이라 그런 건지, 오늘의 결과를 예상시키는 것인지, 다시 느끼는 오래전 이 익숙한 숨참이 참 씁쓸했다.


아무런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 나는 다시 눈을 감았고 잠에 들었다. 눈을 뜨니 어느새 병원에 도착을 했고 익숙하게 지름길로 병원에 빠르게 도착했다. 미세먼지가 가득한 와중에도 아침 햇살이 눈을 흐리게 할 정도로 강하게 비추고 있었다. 순간 눈앞이 또 새하얘져 걸음 속도를 줄였다. 그렇게 길을 건너다가 신호에 걸려 중간에 멈추었다. (찻 길 아니고, 중간에 멈출 수 있는 건널목) 그곳에는 건강 과자라며, 땅콩과자와 호두과자를 판매하고 있었다. 생각이 스쳤다. ‘아 이것도 먹고 싶다.’


아니, 손에 팥만쥬를 들고, 또 먹고 싶다니. (먹고 싶다는 생각을 오랜만에 하니까 반복해서 또 드는 건가?)

나는 또 욕심을 부리는 나를 발견했다. ‘이건 내가 지금 또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야.’ 하고 고개를 돌렸다.

(사실, ’ 호두과자는 나중에 내가 좋아하는 오송역 호두과자로 먹어야지 ‘ 였던 거 같기도 하다.ㅎ)

그러고 계속 다음 신호를 기다리는데, ‘어? 이것도 안에 팥이 있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곰곰이 생각을 하니 이런 생각이 이어졌다.

‘아, 재료가 중요한 것이 아니구나. 어떻게 그 재료를 나만의 것으로 만드는 건지가 중요하구나.

싫다고 배척할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대로 그 재료의 좋은 점만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되는 거구나.

그 재료와 어울리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조화로운 재료와 함께인 그런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처럼.‘


그런 생각을 하며 병원에 발을 들였다. 굳어있고 두려웠던 기분이 한결 편안해졌다.

나는 또다시 그날과 똑같이 1, 3층 채혈실 눈치싸움을 했고, 지난번과 달리 3층을 선택했으나 결과는 지난번처럼 운이 좋게 성공해 2분 만에 채혈을 마쳤다. 역시나 나의 루틴대로 무거운 옷과 짐들을 맡기고 곧바로 나의 힐링존으로 향해 바로 ‘팥 파이 만쥬’를 꺼냈다.


그날처럼 한입에 와아앙- 집어넣었다. ‘그날과 같은 곳의 제품이 아니라서 그런가? 그때 그 파이가 좀 더 맛있네.’ 생각했다. (그리고 곧바로 목이 막혔다.ㅎ) 나는 또 여느 때와 같이 익숙하게 카페로 갔다. 그때와 같은 그 자리가 비어있었다. ( 인기가 없는 좌석인가 보다. 하긴 양쪽으로 사람이 있어서 정신이 없는 그런 자리긴 한 것 같다.) 나는 또 직원을 등지고 앉았다. 지난번과는 달리 딸기가 추가된 밀크티를 시키고 앉아 키보드를 꺼냈다. 캘리그래피 붓펜도 꺼냈다. 매일 루틴인 나의 좋은 생각 ’ 마음풍경‘의 글귀를 쓰려고.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려고.


세팅을 마치니 음료가 나왔다. 얼른 받아와 단숨에 입안 가득 들이켰다. 그러고 나니 하나만 먹고 다시 뚜껑을 닫아 넣어둔 ‘팥 파이 만쥬’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지난번과 달리 한순간도 고민하지 않고 품에 안았다. 얼른 반을 쪼개고 입으로 넣었다. ‘크..’ 중학생 때 도시락 까먹던 순간의 기분이 들었다. 아까 밖에서 편안히 먹었을 때와, 맛이 조금 달라졌다. ( 몰래 먹는 건 정말 맛있는 거다. 음료를 먹고 먹어서 더 그랬을지도 ㅎㅎ) 정말, 너무 맛있게 먹고 남은 하나는 다시 덮어 넣어두었다. 병원 외래 후에 만나기로 한 친구에게 맛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난번과 달리 떨어뜨리지 않은, 케이스 안에 안전히 보관한 만쥬를.


그리고 그날 캘리를 할 문구의 사진을 열었다. ( 외출을 할 경우 아침에 읽지도 못하고 사진만 찍어 바로 나온다.)

역시나 나의 마음 풍경은, 절묘하게 나를 위로했다.

“나와 함께 기뻐하고 슬퍼할 이가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터놓고 이야기 나눌 대상이 있다는 것, 이 하나만으로도 인생은 멋지고 아름답습니다.”


그렇다. 나는 그간 아무에게도 터놓고 이야기를 할 수 없었기에 더욱 힘이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도 아프다고, 슬프다고, 힘들다고. 말을 할 수 없었기에.


나에게 그 팥 만쥬들이 말하고 있었다.

‘네가 두렵지 않게 잠시 잊게 해 줄게.‘ , ’네가 또다시 슬프지 않게 잠시 곁에 있어줄게.‘


나는 그리고 또 검사와 결과를 들으러 갔다. 여전히 눈앞이 캄캄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때와는 조금 다른 마음의 상태인 것 같다. (아무렇지 않다면 그건 거짓일 것이고.)

그 날 보다 조금 더 덤덤히.

그러나 내 마음이 어떻다는 것을 조금은 인지 한 채로, 예정했던 다음 일정들을 이어갔다.


그리고 잠시 곁에서 뽀로로가 되어주는 친구를 만나 신나게 놀았다.

(너무 운도 좋게, 신나게 노느라고 가방 속 팥 파이만쥬는 또 새카맣게 잊어버렸다.)

또다시 차를 놓칠뻔하며 정신없이 헤어지고 집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글을 쓰려고 했는데 언제 잠들었는 지도 모르게 꿀잠을 자며 내려왔다.

집에 도착해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사진을 정리했고, 나 스스로가 대견하며 뿌듯했다.

결과가 어떠하든, 이렇게 씩씩하게 다시 또 삶을 이어가는 나를 보며.


(그리고 팥 만쥬 외에도 맛있게 먹은 수많은 그날의 맛있는 음식들이 입안에서 느껴졌다.)

그렇다. 팥 만쥬를 시작으로, 나는 입맛을 되찾았다..( 아 젠장.. ㅠㅠ 살 다시 찌려나?ㅜㅜ )


참으로 감사한 ‘팥 파이 만쥬’이다.

오늘 아침, 또다시 가방 안에 남아있는 팥 파이 만쥬를 먹었다.

분명 지난번과 다른 곳의 팥 파이 만쥬인데, 지난번과 같은 맛이 났다.

(역시 남겼다가 먹고 싶을 때 또 먹는 게 최고다.)


아마도, 내가 먹고 있는 그 만쥬는,

이제 내게 추억을 가득 담고 있는 음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 또 먹고 싶다.ㅎㅎ)


그리고, 많은 것을 깨닫게 한 음식이 되기도 했다.


어떤 슬프고 힘든 일이라도, 내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있다.

모든 것은, 좋은 것, 나쁜 것이 정해져 있지 않다. 그저 그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느냐에 달렸다.

싫어했던 팥을 좋아하게 된 것처럼, 싫다고 힘들다고 피하지 않고,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어 갈 것인지 찾아내는 것. 그것이 내게 남은 숙제일 것이다. 그간의 편견과 오만에 맞서 두려움 앞에 정면으로 마주해 본다.

그러니, 두려움에 숨어버리 는 것은, 이제 하지 않아 보자.

기쁠 때고 슬플 때고, 언제나 내 곁을 지켜주는, 나를 걱정하는 존재들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기억하면서.

깨달음을 준 호두과자 트럭
3. 2. 1. 점점 줄어가는 어제의 팥 파이 만쥬!
되찾은 식욕…. 아.. 정작 가려던 인스파이어 카페는 못 가고, 롯데월드만 가서 입맛만 되찾아왔음


그 날의 그 ‘팥 파이 만쥬’.. 어디꺼지.. 한 번 사러 가보긴 해야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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