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 침범하시려고요?
누군가 나에게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꽤 기분 좋은 일이다. 나의 입맛에 맞는 음식, 요즘 떠오르는 생각들, 삶의 가치관과 목표와 같은 것들. 내가 먼저 꺼내기엔 어쩐지 좀 무안하지만, 혼자만 간직하기에는 누군가의 공감을 받고 싶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에게 이런 호기심을 가지는 이들은 드물다. 인간은 본래 타인이 가진 취향이나 감정, 고유의 삶과 같은 것들에는 그리 관심이 없다. 그 대신 다른 차원의 질문들은 심심치 않게 받아볼 수 있다. "어느 대학교 나오셨어요?", "어디 회사 다니세요?", "연봉은 얼마예요?" 선뜻 대답하기가 쉽지 않은 질문들이다. 웃으며 대답하더라도, 후엔 괜한 찝찝함과 불쾌감만 뒤엉킬 뿐이다.
인간과 인간 사이, 순수히 가까워지고자 하는 관심은 마음을 열게 만든다. 나라는 인간 본연에 대한 질문이란 것은, 덤덤한 듯하면서도 내심 기분이 좋은 것은 사실이다. 침묵하던 입을 쉬지 않도록 하며, 상대와의 친밀감을 끌어올린다. 그러나 모든 질문들이 이런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어느 대학교 나오셨어요?" 가볍게 던진 질문인 것 마냥, 상대방의 모습은 꽤나 여유롭게 보인다.
어떤 이들은 친해지고 싶다며 다가온다. 쉽사리 팔짱을 두르고, 밥을 같이 먹자고 요청한다. 그리고는 나의 정보를 이상하리만치 캐묻는다. 이쯤 되면 그만 물을 때가 되었는데,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또 다음 질문이 나에게 들이닥친다. 점차 그 대답에는 부가적인 설명이 붙기 시작하고, 마치 해명을 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낀다. 대답하지 않기엔, 스스로에게 열등감을 가진, 떳떳하지 못한 인간으로 보일 것만 같다.
수많은 질문들을 마주하며 알게 된 것은, 결국 그들은 나라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다. 그들의 관심은 나의 정보에 집중된 것이고, 그 정보를 통해 그들이 알고 싶었던 것은 결국 본인 스스로이다. 나와 너 사이의 거리, 위와 아래의 간극을 습관적으로 판단하여 상대방을 분류한다. 질문이라는 형태의 이 침입은, 결국 우위를 가르기 위한 조사의 일환이었는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상대방이 가진 정보를 탐색하며, 주제넘은 평가를 내리는 이들이 있다. 이러한 태도를 가지게 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자신의 열등감이나 불안감으로부터 파생된 비교, 습관적인 서열정리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악감정 등이 이유의 예시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타인을 평가하고 분류함으로써 스스로를 위로하려는 심리를 기반으로 한다.
이런 비교와 평가는 단순한 위안을 넘어 상대를 무시하거나 깎아내리는 말로 드러나기도 한다. 일부는 상대의 학력이나 직업, 배경 등을 대놓고 평가절하하며, 그런 행위로 우월감을 쓸어 담으려 한다. 이런 목적을 가진 질문들은 당연하게도 상대방의 내면에 벽을 구축하도록 하는데, 이로 인해 그 관계는 획일적이며 피상적인 관계로 굳어진다. 더 나아가, 이러한 태도는 상대방의 사생활과 삶의 방식을 침범하는 것이며, 인간적인 존중마저 무너뜨릴 수 있는 무례한 행동이다. 관계를 위한 질문이라는 것은, 단순히 상대방의 정보를 수집하여 서열을 구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상대방과의 관계에 있어, 동등한 교감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위와 같은 태도를 보인다는 것은, 결국 자신 또한 타인에게 평가당할 수 있다는 것을 자처하여 감안해야만 한다. 누군가의 삶의 행적을 비교의 기준으로 삼기 전에, 자신에 대하여 객관화를 가질 필요가 있다. 자신의 평판과 행적, 그리고 평소에 보인 태도 또한 분명 타인들에 의하여 비교되고 평가되어 왔다. 이것을 망각하고, 스스로에 대한 평가는 추상적으로만 가늠해 버리는 것은 큰 실수이다. 그것은 자신보다 더 나은 이들은 존재하지 않도록 설계하지만, 오직 단 한 사람의 견해에 불과하다. 혼자만의 세상에선 그 모든 태도가 자유이다. 그것이 타인에게 어떻게 비추어질지에 대하여 관심을 갖지 않는 것도 자유이다. 그러나 분명 내가 살아갈 곳은, 타인들 투성인 이 세상이다.
처음으로 진정 자기 자신을 마음껏 비웃어본 날, 당신은 성장한다 - 에델 배리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