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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세젤이맘 Jan 26. 2022

시어머니가 친정엄마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상위 1% 나의 시어머니




그녀를 처음 만난 그날은 4월따뜻한 봄날이었다. 


하얀 얼굴, 짧은 곱슬머리에 검은색 안경, 160센티 조금 넘어 보이는 키에 풍채가 좀 있으셨다. 걸음걸이가 살짝 부자연스러워 보였으나 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날 보자마자 살포시 손을 잡고,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팔을 어깨에 둘러 안아주셨다. 하얀 위에 듬성듬성 보이는 검버섯은 하얀 피부와 오히려 어우러져 보였고, 오랜 세월 어머니로 살아 동의 흔적은 손 끝 마디마디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그리고 아들을 향해 하신 첫마디, '하나도 나이 들어 보이지 않는다, 너보다 더 어려 보인다야'. 남자 친구보다 4살이나 많 것이 약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은근히 신경이 쓰였는데 예상치 못한 어머니의 말씀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었다.


시부모님은 전북 정읍 샘고을시장에서 30년 넘게 이불과 한복을 팔고 계신다. 주차장 바로 앞 코너 자리로 가게 이름은 미광 주단이다. 그 옆으로 옷 가게 늘봄, 아롱 양품점, 은편 이불가게 세광 주단 등 아들 딸 이름을 따서 지은 것 같은 이름의 가게이 따닥따닥 붙어 있다. 굳이 따지거나 고르지 않고 같은 업체로부터 오랫동안 물건을 받아 팔아왔기 때문일까, 가게 앞 골목 쪽 매대에 나와 있는 이불들이 다 똑같다.


예전만큼 돈벌이가 안돼 생활하기도 빡빡할 정도지만 여기서 5남매 다 가르치고 결혼까지 시켰다면서 가게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신다. 코로나까지 터지자 샘고을 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더 줄었다. 시장이 한적하다 못해 해가 지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그래도 어머니가 계시는 미광 주단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인다. 60-70대의 어르신들이 모여 마늘을 까고 고구 맛순 줄기를 벗긴다. 어머니가 바가지에 쌀 튀밥을 가득 남아 내오면 한 움큼씩 집어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그런 풍경이 있는 곳이다.


정읍 시댁을 향하는 내 마음은 항상 가볍고, 편안하다. 시댁 가는 걸 마다하지는 못할 망정 시어머니에게 먹고 싶은 음식을 얘기해두고 한상 가득 차려진 저녁 밥상을 기대하며 달려가는 며느리의 마음은 오늘도 살랑살랑거린다.


 큰 자녀들에게도 집안일 하나 시키시는 법이 없는데 며느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일하랴, 애 키우랴 얼마나 고생이 많냐며 항상 다독주시는 분, 며느리가 엉덩이 붙이고 얻어먹기만 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염치가 바닥을 기는 것 같아 설거지라도 하려고 주방을 기웃거리면, 마음만큼이나 푸짐한 큰 엉덩이로 며느리를 밀어내시며 말씀하신다.



여기서나 쉬어라




아들 쌍둥이뿐 아니라 위로 딸 셋을 결혼까지 시켜 누구보다 딸 가진 엄마의 마음을 잘 알고 계신다. 일하면서 애들 키우는 엄마가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맘 편히 쉴 수 없다는 것을 '여. 기. 서. 나'라는 4 단어로 이해해주시는 분에게 며느리는 또 감동을 먹는다.


그달은 정근수당에 명절 보너스까지 월급통장이 가장 두둑해지는 달이었다. 매번 10만 원 전후의 용돈을 챙겨드리다 큰맘 먹고 용돈 봉투를 두둑이 챙겨서 드렸다.


항상 자식들이 돌아가고 나용돈을 확인하시는 어머니는 그날도 동탄으로 올라오고 있는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어 '뭘 이리 많이 넣었냐며 고맙고 감사하다'라고 약간 상기된 목소리거듭 말씀하다.


그리고 친정엄마에게 문자를 보내셨다.



따님을 훌륭하게 키워주셔서
제가 이렇게 대접을 잘 받습니다.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 상대방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는 말과 표현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 문자를 받은 친정엄마는 딸이 시댁에서 이쁨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너무 좋다며 시어머님께 오히려 감사하다는 답장을 보내셨다고 했다.


시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매일 새벽 5시 예배를 빠지지 않고, 자녀들과 이웃들을 위해 진심을 다해 기도하신다. 어머니는 종종 목숨 걸고 기도한다고 표현하신다.


둘째 출산 당일, 고위험 산모로 분류돼 수술 순번도 맨 뒤로 잡혀 있었다. 보통 제왕절개 산모들이  팔에 링거 바늘 하나를 꽂은 채 수술실로 들어갔지만 나는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링거 바늘 두 개를 꽂아놓은 상태였다. 한번 경험해 본 수술이었지만 긴장감이 몰려오고 온몸이 떨렸다. 쿵쾅쿵광 심장소리가 밖으로 들리는 것 같았다. 이럴 때 사람들은 신을 찾고, 기도를 한다. 인간의 영역 밖에 있는 영적이고 거대한 힘이 나를 지켜주고 도와주기를 바라는, 한없이 나약한 인간이 되는 그 순간, 나는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젤이 맘) "어머니~"

(시어머니) "어야~~ 내가 목숨 걸고 기도하고 있다. 걱정하지 마라 다 잘될 거다"


어머니는 이미 울먹이시며 기도를 하고 계셨고, 어머니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세젤이 맘) "네 어머니 저 지금 들어가요, 수술 잘하고 나오겠습니다"

(시어머니) "어야~ 어야~ ~ 정하지 마라, 꺽쩡하지 마~  "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은 많지만 종교의 교리를 완전하게 실천하며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갈라디아서 5장 14절)'는 성경말씀이 있지만 교회에서도 서로를 미워하고 갈등과 다툼이 있다. 규모가 큰 교회에서는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목사 자리를 세습하기도 한다.


타인을 해하거나 남의 물건을 훔치는 범죄는 아니더라도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시기하며, 질투한다. 내 것을 베풀기는커녕 가지고 있던 것을 뺏기지 않으려 서로를 헐뜯고, 남의 것을 탐하기도 한다. 타인의 수고가 곧 나의 권력인 듯, 안락함의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사람은 불완전하고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타인을 먼저 배려하고 내 것을 나누어주는 실천이 있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책을 읽고 배우는 것도 쉽지 않지만 배운 대로 실천하며 는 건 더 어려운 일이다. 마더 테레사 수녀나 김수환 추기경 같은 분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이유는 사랑과 나눔이라는 이념을, 아는 것을 넘어온 생에 걸쳐 실천하는 삶을  살아오셨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는 사랑과 감사, 이해와 배려라는 가르침을 실천하시는 분이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어라, 그래야 욕심도 불만도 다툼도 없다고 하신다.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않아도 큰 탈 없이 5남매를 번듯하게 키우시고 재래시장 한 구석에서 30년 넘게 이웃들과 어울려 음식담소를 나누며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고 하신다. 


어머니는 한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마흔을 갓 넘었을 무렵 당뇨가 왔지만 그 사실도 알지 못한 채 5남매를 먹이고 입히느라, 시장에서 이불을 팔며 생계를 유지하느라 본인 몸을 돌볼 여유가 전혀 없으셨다. 몇 년 전 백내장까지 와 한쪽 눈을 거의 잃어버리셨지만 본인에 대해서는 거의 말을 하지 않으신다. 더구나 그것이 자식들에게 부담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더더욱 그렇다. 어느 날 내려갔더니 눈 수술을 했다고 하시고 몇 개월 뒤 또 내려가면 아버님이 지나가는 말로 '너희 어머님 눈이 잘 안보이신다'하고 마는 식이다. 본인 일은 대수롭지 않은 듯,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사소한 감기까지도 어머니 말처럼 목숨 걸고 챙기시는 분이다.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는 한국사회에서 절대적인 권력관계 중 하나인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를 존중과 사랑의 관계로 바꿔놓았다.


막내아들과 통화할 때는 "아들~~~ 어야~~ 아들 잘 지내지? 엄마랑 아빠는 잘 지내지 하하하하!! 밥 잘 먹고 항상 감사 감사하면서 살자", 손주들과 영상통화할 때는 "아고 내 강아지들~~ 아고아고 잘하네~!! 너무 보고 싶어요 내 강아지들~~~ 행복하세요!!"


언제 어디서든 하이톤의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시고 애정을 듬뿍 담아 사람들에게 긍정의 힘을 주신다. 어떻게 이렇게 한결같을 수 있을까, 어머니와 통화를 하고 나면 이 세상이 조금 더 아진 기분이다. 곧 나에게도 즐거운 일이 생길 것 같은 분이 든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자세, 나보다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고 이해하는 태도, 내 것을 나누고 또 나누는 이타적인 삶을 직접 보여주시고 가르침을 주신다.


아.. 진짜 어른이구나..

나이만 먹어가는 게 아니라 감사하는 태도와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며 나누는 삶을 통해 삶의 지혜를 같이 쌓아가시는 분, 살아가는 모습 자체로 가르침을 주시는 이 분이 진짜 어른이구나 싶었다.


매일매일 주고받은 카톡으로 거의 모든 일상을 공유하고 있는 친구들이 시어머니에게 붙여 준 이름이 있다.


바로 상위 1%다.


"쏘 너의 시어머니는 상위 1%야"


승진공부를 이유로 큰애 이 지날 무렵부터 1년 동안 맡아서 키워주실 때는 엄마보다 더 완벽한 할머니가 되어 손주를 키워주신 어머니, 아들집에 와서는 자녀들 출근에 지장이 있을까 싶어 아침 일찍 조용히 기차역으로 가버리시는 어머니를 두고 내 친구들은 상위 1%라고 했다.


인생을 가장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마음 편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맘 편한 게 최고라는 말에 동감한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일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에 나를 좀 더 편하게 만들어주는 장소나 사람은 언제 봐도 반가운 법이다. 시댁 가는 길이 편안하고 즐거운 이유다. 


시어머니는 넓고 크다. 나는 어머니를 통해  이 세상을 대하는 법,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며느리가 시댁에서 맘 편히 쉴 수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상위 1% 시어머니의 며느리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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