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벌어도 벌어도 항상 부족하다. 인간의 욕심은 한계가 없기 때문에 항상 충분하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돈 앞에 항상 패자일 수밖에 없다.
빨래를 했니 안 했니, 설거지를 했니 안 했니, 더럽히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니, 왜 치약 뚜껑을 닫지 않는 거지? 왜 옷을 뒤집어 놓는 걸까? 네가 해라, 왜 나만 하니, 애는 나만 낳았니?
난생처음 해보는 육아와 살림 앞에서 부부는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유치한 것으로 아주 치열하게 싸운다.
'돈으로 모든 행복을 살 순 없지만 대부분의 행복은 살 수 있다'는 김승호 작가님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돈, 노동력, 그리고 시간은 결국 같은 선상에 있는 문제이다.
어릴 때는시간이 훌쩍 지나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고,방학하는 날, 소풍 가는 날은 빨리 왔으면 좋겠는데 시간이라는 것이 왜 이리 안 가는지 하염없어 보이기만 했다. 그러나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하루 24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는 시간 빈곤자로 살아갈수록 시간이란 놈은 항상 저만치 도망가버리고 나를 순식간에 스치고 지나갔다.
책도 읽고 싶고, 운동도 하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다. 이 놈의 몸뚱이는 어찌나 솔직한지 나이 먹은 대로 체력도 점점 떨어진다. 이대로 50대를 맞이하면 사람 구실도 못할 것 같아 운동이라도 시작하고 싶지만 도저히 시간이 없다. 핸드폰으로 운동 정보를 검색하다, 불현듯 낼 먹거리 떨어진 게 생각나 부랴부랴 새벽 배송 장바구니를 채운다.
일하고 아이들만 돌보기에도 빠듯한 시간,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내고 있지만 뭔가 헛헛하다. 내 행복 그릇은 항상 반쯤 채워져 있는 상태,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시간이 필요하다. 책을 읽든, 강의를 듣든, 인터넷 쇼핑을 하든, 드라마를 보든, 운동을 하든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데, 아무리 쪼개 봐도 항상 그렇듯 어제도 오늘도 지금도 우리는 항상 바쁘고, 나를 위한 시간은 없다.
워킹맘의 평범하고 분주한 일상 속에서 항상 시간에 쫓기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러다 불현듯 단 한번뿐인 내 인생,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들, 다시 오지 않을 이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모두에게 똑같이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이 주어지지만 시간을 소유하는 사람은 없다.
가질 수 없는 것이라 그 양을 늘리거나 줄이지도 못한다. 잠깐 정지시키거나 아껴뒀다 나중에 꺼내 쓰지도 못한다. 시간이란 것은 한번 지나치면 돌이킬 수 없고, 잡지 못하면 영원히 흘려보내야 한다.
지금 흘려보내는 이 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내 시간이다.
시간을 관리해보자, 내 시간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시간을 두 가지 개념으로 나누어 설명했다고 한다. 하나는 크로노스의 시간, 그리고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크로노스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을 의미하며 카이로스는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의미로 적용되는 주관적 시간이다. 비록 찰나일지라도 구체적 사건 속에 놀라운 변화를 체험하게 되며 특별한 가치가 부여될 수 있는 시간을 가리켜 카이로스라고 불렀다.
카이로스의 시간이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일 지라도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냐에 따라 시간의 질은 달라질 것이다.
일본의 경제학자 오마에 겐이치는 <난문쾌답>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을 바꾸는 방법은 세 가지뿐이다. 1. 시간을 달리 쓰는 것 2. 사는 곳을 바꾸는 것 3.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
이 세 가지 방법이 아니면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 '새로운 결심을 하는 것'은 가장 무의미한 행위이다.
위 세 가지 중, 돈도 들지 않고 아무런 준비 없이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것,나는 시간을 달리 쓰기로 했다.
그렇다면 엄마의 시간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엄마의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24시간이라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어떻게든 물리적인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하루 중 나에게 가장 편한 시간대를 생각해보자.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난 오전 시간, 또는 아이들이 잠들고 난 밤 시간 또는 이른 아침 새벽시간이 아무래도 시간을 내기 가장 좋을 것이다.
아직 미취학 아이들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새벽시간을 추천한다. 최소 2시간 정도를 정해두고 그 2시간은 오로지 나를 위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루에 딱 2시간은 내 일상에 참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꾸준하게 이어진 독서는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줬고 세상을 보는 눈을 넓혀줬다. 40대에 들어선 지금,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는 운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것을 알게 됐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블로그를 시작했고 지금은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 글벗들과 책도 만들어보고 독서모임도 3년째 계속되고 있다.
직장도 다니면서, 아이들도 아직 어린데, 어떻게 그 많은 것을 할 수 있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순위다. 엄마들은 변수가 많이 때문에 내가 정해둔 시간이 방해받기 아주 좋다. 아이들이 자다 깰 수도 있고, 못다 한 집안일도 발목을 잡는다. 엄마라는 사람은 24시간의 대부분을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오로지 엄마의 시간으로 정해 둔 그 시간만큼은 오로지 '나'를 가장 우선으로 둬야 한다
밥이 없으면 어떠하리, 하루쯤 누룽지를 끓여주거나 햇반을 돌려주면 된다. 우유에 콘프라이트를 말아줘도 영양만점이다. 집이 조금 더러워도, 다 돌아간 세탁기에 빨래가 그대로 있어도 그 시간만큼은 나 말고 다른 일에 양보하지 말아야 한다.
엄마는, 엄마가 없으면 죽을 것 같은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직업이라 당연히 가족들이 우선수위일 수밖에 없다. 엄마가 잠깐이라도 자리를 비우면 제대로 된 밥을 챙겨 먹지 못할까 봐, 아빠 아닌 오로지 엄마만 찾는 아이들이 눈에 밟혀서 엄마들은 항상 식구들에 발목이 잡혀있을 수밖에 없다. 거기다 '엄마라는 사람이 이래도 되나?'라는 죄책감은 언제나 '나'를 후순위로 미루게 한다.
한국사회는 특유의 모성신화가 존재한다.
예전에 외국인들이 출연하는 한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엄마'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냐고 했다.
외국인 패널들은 엄마를 생각하면 '보고 싶다' '따뜻하다' '즐겁다'라고 대답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눈물부터 흘린다고 한다. 한국사회에서 '어머니'라는 단어는 평생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이런 모성신화는 엄마들의 가정 밖 활동을 제약하고 스스로도 죄책감을 갖게 만든다.
한국사회의 모성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엄마들이 보여준 가부장제 속 어머니의 모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1950~60년대에 태어난 우리 어머니 세대만 하더라도 엄마로서, 아내로서 역할에 충실하고, 그 역할 안에서 존재감을 느껴야만 바람직한 여성의 모습인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우리 엄마들과는 다르다.
엄마라는 역할에만 묶여 있는 삶은 지금의 우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가부장제 틀 속에서 학습된 죄책감, 의무감을 잠시 접어두고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 내가 충만해지는 그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내가 성장해야 아이들도 성장한다. 엄마인 내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으려 했다. 나에게 주어진 다양한 역할, 확장된 정체성을 소화해낼 때마다 설렘과 희열을 느꼈다. 독서와 글쓰기는 내면의 자아를 성장시키고 새로운 세상을 알려줬다.
꾸준한 운동은 근육과 체력도 키워주지만 그보다도 더 큰 매력은 삶의 활력소가 된다는 것이었다. 땀이 흠뻑 날 정도로 팔, 다리를 움직이고 나면 온 몸의 근육들이 이완되고 숨어있던 세포들이 살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몸이 가뿐해진다는 것, 머리가 맑아지고 리프레쉬되는 기분은 운동이 주는 최고의 선물임을 알게 되었다.
내 시간을 만들고 나서는 엄마, 아내로서의 역할이 아닌 오로지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새로운 페르소나를 만들 수 있었다. 책 읽는 나, 글을 쓰는 나, 운동하는 나, 그리고 이런 나를 가정이 아닌 사회에 연결시켜 사람들과 어울리고 공감하며 가치를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을 창조하는 삶은 새로운 나를 꿈꾸게 하고 나를 통한 세계의 확장을 경험하게 한다.
일단,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자.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생생하게 경험해보자.
인간을 바꿀 수 있는 세 가지 방법 중,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 내 시간을 달리 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