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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세젤이맘 Apr 12. 2021

화 잘 내는 좋은 엄마가 있을까






나는 내가 이렇게 화를 잘 내는 사람인 줄 몰랐다.

분노조절장애, 조울증, 조현병.. 현대병이라 불리는 정신질환의 시작은 육아임이 분명하다.


미친 여자가 널뛰기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웃고 있는 것인지 울고 있는 것인지 도통 분간이 안 가는 표정으로 한 번에 입고 벗기 편한 얼룩진 스누피 원피스를 입고 맨발로 널을 뛰고 있는 미친 여자, 머리는 며칠 째 감지 못해 널을 뛰어도 윤기만 날 뿐 바람에 흩날리는 움직임은 별로 없는 그런 여자가 널을 뛴다.


처음 엄마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육아전쟁 한 폭 판에서 홀로 맞서고 있는 엄마들의 익숙한 모습니다.


큰애가 8살, 작은애가 4살이 되었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었던 여자, '난 이기적이니까' HOT 강타의 말이 명언이라며 제 잘난 맛에 멋대로 살던 여자가 돈도 벌고, 나와 비슷한 사람도 만들고, 나와 비슷하지 않은 어른 사람도 먹여가며 8년째 엄마 역할을 해내고 있다


라면과 계란 프라이 기껏해야 김치볶음밥이 다이던 내가 잡채도 하고 해물탕도 끓이고 김밥도 싼다. 열이 40도를 오르내리는 아이를 밤새 간호하다 잠 한숨 못 자고도 출근을 해 낸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다가 웃다를 반복하고, 내가 미쳤지, 결혼을 왜 해서 이 고생이야 신세한탄도 해가며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현실 육아, 누가 행복하다고 했단 말인가


잘해오고 있다 토닥토닥, 충분하다 토닥토닥 해주고 싶다가도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 도저히 나 자신이 용서가 안 되는 순간들을 마주할 때가 있다. 결혼 후 도대체 이해하기 어려운 남자와 몸 부대끼며 사는 것도 만만치 않은데 천진난만한 천사 같은 미소로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죽였다 살리는 아이들과의 생활 속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순간이 있다.


바로 나의 바닥을 마주할 때다.

사람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 알고 있는 바닥이라는 것이 실체를 드러냈을 때 매우 고통스럽다는 것을 실감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  앞에서 바닥인 나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도심 한복판에 서 있는 것처럼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매우 실망스럽다.


내가 이렇게 화를 잘 내는 사람이었던가. 감정조절이 이토록 미숙한 사람이었던가. 남편과 아이들이 내 인생을 망쳐놓은 흉악범이라도 된 마냥 거름망을 거치지 않은 불평불만을 쏟아 내고 저항할 힘없는 아이들에게 감정을 쏟아낼 때마다 후회하고 자책하고, 잠든 아이 귀에 대고 또다시 고해성사가 시작된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이렇게 엉망인 사람이었던가, 어린아이들이지만 엄연히 인격이라는 게 있는 사람이거늘, 아이들이 내 감정의 쓰레받이도 아니고 어떻게 이렇게 연약한 약자에게 연신 감정 폭격을 날린단 말인가


얼마 전 인터넷에서 '화 잘 내는 좋은 엄마'라는 책 제목을 봤다. 읽어보지 않아 책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없으나 분명 나와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엄마들을 위한 책일 것이다. 화 잘 내는 좋은 엄마? 그런데 과연 화 잘 내는 엄마를 좋은 엄마라고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감정을 능숙하게 조절하고 싶어 한다. 감정조절 실패로 실수하거나 후회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후회할 때마다 인터넷 검색창에 '화를 다스리는 법' '감정 조절하는 법'을 검색했다. 관련 글과 동영상은 넘쳐났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김미경 강사님은 '화'라는 것은 '썩지 않는 플라스틱'과 같다고 했다. 화라는 감정은 썩지 않는 플라스틱 조각처럼 계속 돌고 돌아서 결국 가장 약한 사람에게 가서 쌓인다는 것이었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집에 가서 푼다거나, 상사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부하직원에게 쏟아 내거나, 남편에게 짜증이 난다고 아이들에게 풀었던 경우...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법한 일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하원 하는 길, 그날은 방문 학습지 선생님이 오시는 날이다. 시간을 맞추려면 서둘러야 하는데 큰애가 어린이집 놀이터에서 놀다 가겠다며 집에 가자는 엄마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미끄럼틀을 타기 시작했다. 4살 둘째도 덩달아 가방을 내팽개치고 미끄럼틀에 올라가기 시작한다. 9시부터 18시까지 법정 근로시간을 꽉 채운 나는 이미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90% 이상 소진된 상태였다. 몇 번 타이르다 결국 언성이 높아지고 말았다. 큰애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차 안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어린이집 실내에 있었던 아이가 야외 놀이터를 마주했을 때 놀고 싶어 하는 맘은 당연한 것이거늘, 엄마라는 사람이 왜 그렇게 밖에 얘기를 못했을까 미안한 맘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날은 더 이상 애쓰기가 싫었다.


지하주차장에서 걸어가는데 아직 걷는 것보다 뛰는 게 익숙한 여동생이 오빠가 걸어가는 길 앞으로 자꾸 끼어들어 큰애의 진로를 방해하고 있었다. 동생이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는 것을 분명 알고 있었지만, 큰애는 평소와는 다르게 동생에게 화를 냈다.


'야 저리 비껴!! 너 먼저 혼자 가라고~!! 왜 자꾸 방해하는 거야!!"

그 모습을 본 나는 둘째가 다칠까 봐 또 큰애를 나무랐다.

'찬아~ 동생이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닌 거 알면서 왜 그래~~'


그리고 이어진 큰애의 대답에 나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몸이 굳고 입도 그대로 닫혀버렸다.


" 왜?!! 나도 기분 나빠서 그런데 왜?!! "


아..... 내 감정의 썩지 않는 플라스틱 조각이 큰애를 거쳐 가장 약한 우리 둘째에게 가서 박혀버린 처참한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거기다 큰애는 알고 있었다. 엄마라는 사람이 기분 나쁘면 자기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박상미 상담심리 교수님은 화를 내는 사람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화가 난다고 그대로 밖으로 화를 표출한다는 것은 '나는 느끼는 그대로 표현하는 아주 미숙한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내 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밖으로 내뱉어 버리는 것은 동물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생각하고 조절하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세련된 표현법은 아닐 것이다.




과연 화 잘 내는 좋은 엄마가 있을까?




누군가 그랬다.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보려면 가정에서의 모습을 봐야 한다고.


우리는 밖에서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와 집에서 아이와 단둘이 있을 때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밖에서는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 여러 상황에서도 조금은 더 인내심이 발동하게 된다. 보는 눈이 있으니 조금 더 감정을 조절하고 화를 자제하게 되는 것이다.


회사에서 또 어떤가?

과연 가정에서 만큼 회사에서도 인상을 쓰고 짜증을 내고 화를 내는가.


집에서 내가 아이에게 화를 내는 것은 아이가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고, 쌓여 있는 집안일에 지쳐 있었기 때문이고, 육아 분담이 제대로 되지 않는 남편 때문이고, 회사일까지 해내는 워킹맘이기 때문이다 라고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이유를 찾으려 한다. 굳이 화를 참고 자제하려 덜 애쓰게 된다.


그러나 회사에서도 밖에서도 내 뜻대로 되지 않고 나를 불쾌하게 하거나 짜증 나게 하는 일은 수없이 일어난다. 다만 그런 상황이 어디에서 일어나고 있는지가 다를 뿐이다.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의 저자 노경선 박사님은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양육방식은 그대로 자녀에게 대물림된다고 한다.



아이를 대할 때 화가 치밀어 오르거나 불안해지고 충동적으로 매를 들고 싶은 마음이 생기며 아이가 자신에게 도전하는 듯 해 괘씸한 생각이 들면, 이때는 자기 과거의 해결되지 않은 나쁜 경험이 심리적으로 활성화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아이를 잘 키우는 것 p48)


현재 아이들을 키우는 데 힘이 많이 들고 짜증스럽고 피곤해서 혼자 있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부모가 나를 무시하고 나의 신호에 제대로 반응해 주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 p55)


부모와 씨름을 하거나 신나게 몸으로 놀아본 경험이 없다면, 그리고 부모에게 응석이나 어리광을 맘껏 부려본 기억이 없다면 당연히 내 아이를 키울 때도 아이와 뒹굴고 씨름하면서 몸으로 놀아주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은 P53)


노경선 박사는 부모가 아이들을 키우는 양육태도를 안정형, 집착형, 무시형, 혼란형 4가지로 설명하면서 부모들의 3분의 2가 안정애착형에 속하지만 경우에 따라 이중 30%는 불안한 심리 상태에 빠질 수 있고 10%는 매우 심각한 혼란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고 한다. 결국 대부분의 부모들이 아이들을 키우면서 불안정하고 혼란상태에 빠진다는 이야기다.








과연 화라는 것은 내가 통제하기 어려운 것일까?

통제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통제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우리는 두려운 대상이나 목격자가 많은 상황에서는 잘 참으면서 만만한 대상과 안전한 장소에서는 굳이 참으려 하지 않는 이기적인 동물이다.


화 잘 내고 자주 혼란상태에 빠지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안정적인 정서와 애착이 형성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노경선 박사님의 말처럼 내가 아이를 대하는 양육태도가 내 부모의 양육태도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양육태도를 내 아이에게 그대로 대물림해 줄 것인가?


아이에게 훈육이 필요한 건 당연하다. 그러나 엄하게 훈육하는 것과 느껴지는 감정을 그대로 실어 화를 내는 것은 분명 다르다. 잘못된 것을 가르치고 바르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엄한 훈육은 아이를 더 단단하게 잡아주는 디딤돌의 역할을 할 것이나 감정 덩어리의 화라는 것은 아이 가슴에 비수로 꽂혀 아직 여물지 않은 싱싱한 꽃 한 송이를 꺾어버리는 것과 같다.


부모는 아이에게 절대적인 존재다. 그리고 아이들은 알고 있다.

부모라는 사람이 있어야만 자신이 살 수 있고 위험한 것들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아이언맨, 원더우먼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아이들은 살기 위해 부모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고 이런 관계 속에서 부모와의 애착이 형성된다.


엄마도 사람인지라 사람 하나를 키우면서 화가 나는 상황은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아이게 게 화를 내고 안 내고는 그 다음 문제다. 감정은 선택이다. 화가 나는 감정이 올라올 때 그 감정을 화로 인식하고 밖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오로지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의식하고 연습하고 바꿔야 한다.


내가 아이에게 던진 썩지 않는 플라스틱 같은 화 덩어리는 그대로 아이에게 꽂혀 썩지 않고 살아있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플라스틱은 커지기도 하고 그 모양이 변형되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대로 다음 자녀에게 전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엄마가 아이에게 화를 내야만 하는 정당화되는 상황이 있을까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은 오로지 부모의 몫이다. 아이를 잘 키우는 것만큼 중요하고 위대한 일은 없을 것이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화라는 감정 쓰레기 조각을 아무 잘못 없는 내 아이에게 내리 꽂지 말아야 한다.


화 잘 내는 좋은 엄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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