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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세젤이맘 Sep 04. 2021

엄마의 마음이 먼저다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


정혜신 님의 '당신이 옳다'라는 책에는 상대방의 '마음'이 어떤지 묻는 내용이 많이 나와 있었다.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라고 누군가 나에게 물어오는 것 같았다. 순간 울컥하며 마음속에서 뜨겁고 서러운 무언가가 올라왔다. 눈물이 핑 돌더니 금세 흘러내려 급하게 휴지를 꺼냈다.


직장생활 12년 차, 엄마 8년 차다. 누군가의 딸로 큰 사고 한번 겪지 않고 30년 이상을 살다 어렵게 직장도 구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한 번에 쭉 매끈하게 달려온 삶은 아니지만 중간중간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어도 너무 늦지 않은 속도로 남들만큼 적당히 이뤄내며 잘 살아온 내가 삐걱거리기 시작한 건, 엄마가 됐던 그 순간부터였다.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겠다. 손과 발이 묶인 듯 자유롭지 못했고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정체불명의 감정들이 휘몰아치면서 행복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행복은 누구나 다 느끼는 고만 고만한 행복들이었지만, 불행은 나에게만 있는 특별하고 개별적인 존재 같았다.


이런 나를 보고 친정엄마는 '직장도 있고, 성실한 신랑도 있고, 건강한 아이들도 있는 네가 힘들 이유가 뭐냐'라고 하신다. '너 그러면 안된다, 남편에게 더 잘하고 아이들을 더 잘 보살피라'라며 오히려 더 채근대신다.





출근길 아침, 신랑과 또 어긋났다.

출근하는 내 뒤통수에 대고 신랑은 또다시 칼날을 던졌다.


"밖에서는 그러지 마, 밖에서도 그렇게 인상 쓰고 짜증내면 사람들이 싫어하지, 기분 나쁘다고 기분 나쁜 척 티 내는 건 3류야" 예리한 칼이 그대로 등에 꽂힌 기분이었다. 이건, 나의 부족함을 탓하며 상처 받길 바라고 작정한 말이었다.


"밖에서는 나 힘들게 하는 사람 없거든?" 나 역시 같은 칼을 그대로 던지고 말았다.


워킹맘들이 가장 바쁜 시간은 누가 뭐래도 출근시간이다. 혼자 단출하게 출근한다면야 뭐가 문제겠냐만은 씻고 말리고 찍어 바르고 밥 먹기도 벅차다. 아침 찬거리를 꺼내 에어 프라이기를 돌리고 큰애 책가방을 싼다.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계란을 깨서 얹힌다. 약 2-3분의 틈을 이용해 화장을 마무리한다. 반찬을 준비하고 큰애를 깨운다. 큰애 입에 밥을 넣어주면서 둘째 어린이집 준비물을 챙긴다.


신랑은 오늘도 늦잠을 잔다. 출근하는 아내가 등교하는 아이를 챙기고 있으니 휴일인 남편은 좀 더 누워있어도 되겠다 싶은 것 같았다. 잔소리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똑같은 말도 지겨워 깨우지 않았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는지 출근 직전 거실로 나와 어두운 표정의 나를 보고 남편이 던진 말이다.


엄마가 되고 난 후 특별한 이유 없이 우울한 날이 많았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퇴근해서 아이들 케어하는 너무 뻔하고 고된 일상, 대한민국 엄마라면 누구나 다 비슷하게 겪고 있는 특별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런 일상이라 힘들다고 하면 '유별나다'라고 핀잔 듣기 딱 좋은 그런 상태.


집에 있으면서 설거지는 왜 안 했니

아이들을 보며 왜 집안일은 챙기지 않니

널브러져 있는 빨래가 보이지 않니

티브이는 그만 봐라

입맛 없으니 과자는 그만 먹어라

제발 오늘은 목욕부터 하자

마이쮸 줄게 옷 입자, 공주님은 머리를 묶어야지?

늦었다 빨리 해라 시계 봐라 또 늦겠다~~


남편과 이 정도의 다툼과 갈등, 반복되는 잔소리, 아이들과의 전쟁은 일상이라고 한다. 다 이렇게 지지고 볶고 산다고 한다. 안 싸우고 사는 부부가 어딨냐며 진짜 이혼할 뻔했다고 위로의 말을 던지는 직장동료들도 있다. 아이들이 조금만 더 크면 나아지겠지, 편해질 거야 누구에게나 공평한 시간이 육아에서만큼은 내편이라니 참고, 참고, 엄마인 내가 더 잘해야지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다가도 한 번씩 확 무너지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때면 도저히 웃을 힘도 없고 웃으려 애쓰기도 싫어진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실망스러운 내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이건 아닌데 싶을 정도로 망가지고 바닥을 치는 나를 볼 때마다 도망치고 싶었다. 나 없으면 죽을 것 같은 남편과 아이들에게서 벗어나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이 다시 돌덩이로 남겨진다.


애초부터 결혼이란 제도가 나랑 맞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일하는 엄마라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아닌데 그 시간을 못 참고 힘들다고 징징대는 건가?

나처럼 아이들에게 화 잘 내는 엄마가 또 있을까?

엄마 아빠가 잘 놀아주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고 하는데 놀아주는 게 왜 이렇게 힘들까?


나조차도 어쩌지 못하는 찌질한 감정들이 24시간 내 몸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느낌이었다.

정체불명의 이 감정들은 도대체 뭔지, 참 못난 엄마구나 싶었다.


아침에 신랑에게 '밖에서는 힘들게 하는 사람은 없다'라고 했던 말은 진짜다.

왜 가족 때문에 더 힘들까? 회사에서도 친구들도 특별히 내 정상 감정의 범주를 침범하는 사람은 없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보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더 치명적이다. 회사의 업무강도가 세다고 해서 누군가가 스트레스를 준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감정선이 무너진 적은 없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왜 가장 가깝고 소중한 가족에게 더 상처 받고 더 힘들어지는 걸까


회사에서 내가 상처를 잘 받지 않는 이유는 가족들과 직장동료들에게 바라는 기대치의 종류가 다르고 그 욕망의 정도도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들에게 기대하는 바람과 회사에서의 그것과는 아주 많이 다르다. 회사에서는 동료들에게도, 상사에게도 인상 한번 쓰지 않았고 트러블을 만든 적도 없었다. 상대방의 작은 실수에는 관대했고, 다수를 위해 나 하나를 기꺼이 희생했다. 상대방이 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해도 실망이나 상처로 이어지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공감에 실패할 확률이 더 높아진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사람은 더 많이 오해받고 실망하고 그렇게 서로를 상처투성이로 만든다. 서로에 대한 정서적 욕구, 욕망이 더 많아서 그렇다.... 줄 것은 주지 않으면서 계속 요구만 하고 있다는 생각, 이게 사람들이 자기 가족이나 연인처럼 관계가 밀접한 상대에게 갖는 공통적인 감정이다.

<당신이 옳다> - 정혜신-



반면 가족은 다르다. 가족들에게는 나의 개별적인 욕구와 욕망이 새겨져 있다. 내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이해해주길 바라고 오히려 좀 더 바라게 되면서 그에 따른 좌절과 결핍도 자주 온다. 나에 대해 더 관대해진다. 그래서 가끔은 찌질하기도 하고 막무가내가 되기도 한다. 정제되지 않은 감정과 말들은 상처가 되어 돌아온다. 대범하게 넘겨보려도 했지만 잘 되지 않는다. 나 자신이 위선적으로 느껴진 적도 많다. 짜증과 자기혐오를 오가는 이 양가감정은 죄책감을 더 키우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내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마음은 항상 옳다..


사람들은 보통 감정이라는 것은 조절의 대상이고 통제의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성인이라면 자기감정 정도는 알아서 조절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더구나 엄마라는 사람이 남편과 아이들 때문에 감정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우울함에 빠져 있다고 한다면 더 미숙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감정이라는 것은 지금 내 상태를 나타내는 자연스러운 증상이다. 우선 이 감정부터 제대로 바라보고 이해해줘야 한다. 엄마의 감정일수록 더 깊이 들여다보고 보듬어줘야 한다. 감정이라는 것을 나와 분리된 독립된 존재로 봐야 한다. 한 번쯤 내 속에 있는 감정들을 꺼내 두 손 위에 올려놓고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이 불편한 감정들이 어디서 온 것인지, 원인은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다.


가족은 회사 동료들처럼 적당히 가까운 사이가 아니다. 친구들과도 다르다. 보기 싫다고 안 볼 수도, 관계를 끊을 수도 없다. 누구보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필요하고 매일 마주하는 관계가 개선되지 않으면 삶의 근본적인 모습이 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엄마의 이 만성적인 마음과 감정을 알아주고 공감을 해줘야 한다.


엄마가 되고 난 후 특별한 이유 없이 기분이 안 좋고 우울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했던 낯선 감정들이 버거웠고, 감정 속에 파묻힌 나만 붙잡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우적대고 있었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는 오늘도 엄마 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내 눈만 뚫어지게 바라본다. 가족과 행복은 동의어 아닌가? 오히려 이런 내가 이상한 것 같아 누구에게도 쉽게 얘기하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나의 이 마음과 감정을 누가 알아주고 봐줘야 할까?


당연히 엄마인 나 스스로가 먼저 내 마음을 알아봐 줘야 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가 먼저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수용해줘야 한다. 정혜신님의 말대로 감정 자체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옳다, 틀리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엄마라는 역할을 해내고 있는 나를 잘해왔다 다독이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스스로 상도 주면서 감정 속에서 곪아가고 있는 나를 제대로 봐줘야 한다.


마음이 힘들 때마다 책을 펼쳤다.

가족, 행복, 욕심, 실망, 좌절, 슬픔, 부담감, 분노.. 그리고 내 마음...  

일상이지만 가끔은 굴레로 느껴지는 이것들이 책을 읽으며 무언가 실체로 손에 만져지는 느낌이었다. 머릿속에 맴돌았던 불편한 감정, 심리, 마음들에 대해서 그게 무엇인지 어디서 왔는지 조금이나마 힌트를 주고 생각의 실마리를 제공해줬다. 같이 살아가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로 위로받고 공감받는다. 아.. 그때 나는 이랬었구나.. 내 마음이 잘못된 것이 아니구나.. 다른 사람들도 똑같네.. 온통 화려하고 행복 말고는 없는 것 같은 사람들의 모습 뒤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비슷하게 냉탱고 온탕을 오가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참, 의외로 힘이 되고 위로가 많이 된다.


음악도 좋고, 산책도 좋다..

음악은 공간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고 하는데, 그 공간에 있는 나도 조금 말랑말랑 해진다. 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감정 덩어리들이 조금은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다. 가을 초입인 지금, 9월 오늘처럼 산책하기 좋은 계절도 없는 것 같다. 바깥공기를 마시는 것은 생각보다 기분전환에 크게 도움이 된다. 청명한 하늘, 선명하게 하얗고 파란 구름들, 가을에도 여전히 초록 초록한 잔디들, 집안의 꿈꿈 한 묵은 공기를 털어내기 딱 좋은 시원한 바람은 어디서도 경험해 보지 못한 특별한 위로를 전해준다. 자연 속에서 엄마인 나는 조금 더 자유로워진다.


독서, 음악, 산책.. 내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는 방법으로 우선 엄마인 내 마음부터 알아봐 주자.

내가 먼저 내 감정과 마음을 제대로 봐주고 수용해줘야 한다.  







마음이 옳다고 행동까지 옳은 것은 아니다.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언제부터인지 생일에 대한 감흥이 없어졌었다. 1년에 딱 한번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되는 그날에 대한 설렘과 기대감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오히려 뭐라도 해야 한다는 관습에 얽매여 평소보다 분주해지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조금 불편해지기까지 했다.


남편의 근무 일정은 06:30분 출근, 19:30분 퇴근이었다. 아이들 등원과 하원, 저녁 준비까지 오로지 나에게 주어지는 날이라 제일 바쁜 날이었다. 출근하자마자 상사로부터 업무지시가 떨어졌다. 오늘 중으로 보고서를 만들어서 더 높은 상사에게 보고를 해야 한다. 예정에 없던 업무라 신경은 더 곤두서고 긴장감도 더했다. 그런데 아침부터 심상치 않던 아랫배가 슬슬 아파오기 시작하더니 참기 어려울 정도의 고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하필 오늘 생리가 시작됐고 아이들을 낳고 없어졌던 생리통이 찾아왔다. 아픈 배를 움켜잡고 보고서를 만드는 일은 몸에 피로도를 가중시켰다. 안 되겠다 싶어 근처 약국에 가서 진통제를 사 먹고 보고서를 마무리했다.하필 또 금요일이다. 금요일은 아이들 짐이 가장 많은 날이다. 어린이집에 가서 둘째와 이불가방까지 챙겨 며칠 전 공구로 주문해둔 가리비와 멍게를 찾으러 갔다. 딱히 생일이라고 주문한 건 아니었지만 어쩌다 공구 날짜와 겹쳤다. 산지에서 건너온 가리비는 스치롬폼 박스에 담겨있었고, 멍게는 물이 떨어지지 않게 비닐봉지 3겹에 꼼꼼히 싸져 있었다. 그리고 큰애를 데리러 갔다. 큰애와 둘째, 어린이집 가방과 이불가방, 내 출근 가방, 스티로폼 박스와 비닐봉지 이것들을 손에 들고 등에 메고 손목에 걸치고, 마지막으로 스티로폼 박스를 두 손으로 들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이미 바닥난 체력의 마지막을 퇴근길에 모조리 쏟아부었다.


집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난장판과 개판의 정수를 보여주는 집안꼴이 눈에 들어왔다. 울고 싶었다. 빨래를 정리하고 쌓여있는 설거지를 마무리하고 쌀을 씻어 밥솥에 밥을 안쳤다. 신랑이 퇴근한 후 가리비를 찌고 멍게를 손질해 식탁에 앉으니 8시 반이었다. 그래도 춧불을 켜야지 않겠냐며 신랑이 케이크를 꺼냈다. 케이크를 보고 마냥 신난 아이들은 엄마를 위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울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래도 생일이지 않나? 웃으려 애써까며 촛불을 껐다. 그때 맞은편에 앉아 있던 큰애가 물끄러미 나를 보다가 말했다.


"엄마 기분 안 좋아? 생일인 사람 표정이 왜 그래? "

"어? 엄마 기분 안 좋아 보여? 피곤해서 그래.."

"생일인데... (자기 눈과 입 옆에서 손짓으로 표현하며 ) 생일인 사람 얼굴이 눈도 이렇게 입도 아래로 이렇게  돼있어..."


큰애의 얼굴에는 슬픈고, 이해할 수도 없고, 뭔지 모르지만 이 분위기가 어색하기도 하고, 혹시 자기 탓은 아닐까 내심 눈치를 보는 듯한 모든 표정이 담겨있었다. 큰애의 말에 무안해졌고, 큰애의 얼굴을 보고 한없이 미안해졌다. 케이크와 촛불만으로도 저리 즐거울 수 있는 아이들인데 정작 가장 즐거워야 할 생일 당사자인 엄마가 아이들 앞에서 피곤함과 기분 안 좋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분위기를 망치고 있었다.


마음이 옳다고 이에 따른 행동까지 옳은 것은 아니다.


출근부터 퇴근까지 빡빡하고 고된 일상에 생리통까지 찾아온 불운으로 특히나 더 피곤했던 나, 바닥난 체력으로 마주한 집안꼴에 낙담하고 울고 싶었던 나의 감정,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받고 공감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마음 상태를 아이들 앞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내 즐겁고 유쾌할 수 있는 생일파티 분위기를 엄마 맘대로 망쳐버린 행동은 공감받기 어렵다. 힘들고, 지치고, 우울하고, 슬픈 감정과 그에 따른 나의 행동은 별개다. 다른 것이다.


있는 그대로,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마음, 그 자체는 존중받아야 하고 위로받고 공감받아야 하지만 그 다음의 행동은 내 자유의지로 조절할 수 있는 선택의 문제이다. 감정 그대로 실려있는 행동은 미성숙한 어른이 맞다. 그래서 감정을 더욱 더 분리해서 봐야 하는 이유고, 마음이 먼저인 이유다.


슬프고 지치고 우울한 내 마음을 누군가. 또는 그 무엇이 알아주고 공감해준다면 그 감정이 그대로 행동으로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마음부터 봐줘야 한다.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딸로, 친구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엄마는 이 다양한 정체성을 소화 해내며 수만 가지 감정을 겪는다. 이 감정들은 빠르게, 또는 천천히, 또는 고통스럽게, 또는 회오리처럼 강력하게 다양한 모습으로 엄마의 몸을 관통한다. 엄마로 살아가며 들이닥치는 이 모든 감정은 옳다.


감정은 좋고 나쁘고, 옳고 그르고의 이분법으로 판단할 대상이 아니다. 감정은 한 존재의 지금 상태를 있는 그대로 나타내는 바로미터다....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고 그래서 모든 감정은 옳다....감정은 판단과 평가, 통제의 대상이 아니다. 내 존재의 상태에 대한 자연스러운 신호다. 좋은 감정이든 부정적인 감정이든 내 감정은 항상 옳다.

- 당신은 옳다 -


엄마의 마음은 항상 옳다.

엄마의 마음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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