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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세젤이맘 Aug 28. 2021

불행할 이유가 없는데 행복하지 않다면

나는 행복 천재인가, 행복 둔재인가





바야흐로 행복이 대세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고, 너도 나도 욜로(yolo)를 외친다. 워라벨에 떠밀려 많은 회사들이 정시퇴근을 강제하기 시작했다. 돈, 일, 성과, 명예, 권력만을 쫓아 시지프스처럼 돌을 굴리던 사람들이 하나 둘, 가던 길을 멈추고 숨을 쉬고 삶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나의 행복, 가족의 행복이 삶의 목표가 되고 있다. 개인뿐 아니라 기업과 국가의 궁극적 목표도 하나같이 '행복'을 향하고 있다.


모든 것이 풍족한 세상이다. 먹을 게 없어 끼니를 거를 일도,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을 일도, 잘 곳이 없어 추위에 벌벌 떠며 길거리에서 밤을 지새울 일도 사라졌다. 아이들은 중학교까지 나라에서 공부를 시켜준다. 아이를 낳으면 출산축하금을 준다. 집이 없으면 국가에서 살집을 구해주기도 한다.


많은 것이 넘쳐난다. 결핍이 결핍된 지금, 오히려 행복하지 않다면 이상한 것 같다.


학교를 졸업하고 그 어렵다는 취업전쟁에서 직장도 구했다. 성실하고 다정한 남편을 만나 아이들을 낳고 8년쯤 지났다. 가족들도 모두 건강하고 큰 사고도 없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큰 문제없이 어느새 인생의 반을 지나고 있다. 딱이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삶이다.


굴곡 없고 평범한 듯 한 삶이지만 무언가 뜨겁고, 설레고, 신나는 그런 삶은 아니다. 이동산에서 익스프레스를 타면서 느끼는 스릴, 호감 가는 이성을 만나다 고백을 받고 연애를 시작하는 그 찌릿한 설렘, 오매불망 바라던 회사에서 날아온 합격통지 문자 받았던 순간, 오랫동안 준비한 프로젝트의 극적인 성공, 보기만 해도 좋은 고등학교 동창들과 다녀온 해외여행.. 이런 추억 속에서는 분명 확실한 행복이 있었다. 그런 순간에 나는 정말 행복했었다.


특별히 불행할 이유가 없다. 나는 행복할 준비가 돼있다. 이제 나는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평온하고 똑같은 일상 속에서 그럭저럭 행복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오히려 '아 지금 정말 행복하다'라고 느꼈던 그런 순간의 기억은 없다.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님의 '아주 보통의 행복'에서 '행복 천재'와 '행복 둔재'라는 말이 나온다.


행복 천재? 천재는 선천적으로 보통 사람 이상의 능력이나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행복에 있어서 남들과 다른 비범한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니, 일단 내가 행복 천재가 아님은 분명했다.







행복 둔재는 불행 회피 모드에 집중한다. 


특별히 불행할 이유가 없는데 그다지 행복한 것 같지도 않다면 행복 둔재일 확률이 높다.

그대로 행복에 둔감한 사람이다.


행복지수가 높은 사람은 '어떻게 하면 행복할까'를 생각한다고 한다. 그런데 불행을 많이 겪은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행복할까요?'를 물으면 불행을 피할 방법만 생각한다고 한다. 무엇을 피해야 불행하지 않을까 하는 회피 모드에 집중돼 있다는 말이다. (나의 다정하고 무례한 엄마 중 - 김남옥 - )


행복 천재는 삶에서 사소하지만 다양한 사건들 앞에서 행복 찾기 모드를 풀가동한다.

"오늘 아침 날씨가 좋아 좋다. 산책을 하니 참 좋다. 아기가 웃는 모습이 천사 같다, 창문을 여니 바람이 상쾌해서 기분이 좋다, 커피 향을 맡으니 좋다, 점심메뉴가 맛있어서 좋다 "


하지만 행복 둔재들은 불행 회피 모드를 가동한다는 것이다.

"남편이 술을 안 먹었으면 좋겠다, 집안이 어지럽지 않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면 좋겠다, 엄마가 잔소리를 안 했으면 좋겠다, 직장 상사가 나를 호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이렇게 피해야 할 요소에만 집중하게 된다는 것.


새벽 5시,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서재로 간다. 아이들과 집안일에서 벗어나 오로지 나 혼자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책을 읽으면서도 자꾸만 혹시 일어날지 모를 걱정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아이들이 일찍 깨면 어떡하지, 요즘 들어 유난히도 둘째가 자다 깨는 일이 잦다. 유일한 내 시간을 방해받는 건 정말 싫은데, 걱정과 불안에 휩싸여 책을 읽는다. 제발 조용히 자자..


야근을 하고 퇴근하는 길이다. 저녁도 먹고 아이들 목욕도 씻기고 설거지까지 말끔하게 정리된 집안을 상상한다. '내가 그렇게 얘기했는데 설마 오늘은 서둘러 마무리했겠지, 오늘도 난장판이면 이놈의 남편을 가만두지 않으리', 이를 앙당 물고 집안으로 들어선다. 역시 남편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여기는 사람 사는 집인가, 똥오줌 못 가리는 동물들의 놀이터인가, 불길한 예상은 여지없이 들어맞는다. 이미 나는 전투 자세, 스트레스가 머리 끝까지 올라온다.


사랑과 관심으로 포장된 잔소리는 나이가 들수록 의무감으로 새겨지는 걸까? 친정엄마의 잔소리는 대놓고 싫다고도 몇 번 얘기했지만 소용이 없다. 전날 다녀온 병원 검사 결과는 어떤지 궁금하지만 전화하기가 망설여진다. 엄마는 비가 오는데 큰 손주는 학교에는 잘 갔는지, 영양제는 잘 챙겨 먹고 있는지,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옷은 적절히 챙겨 입혔는지, 이번에 보낸 고구마는 보관을 잘했는지, 코로나 백신 예방접종은 했는지 등등 모든 대화 내용이 잔소리 모드로 바뀌어버렸다. 그때그때 생각나는 잔소리들은 카톡으로, 문자로, 전화 음성으로 전달된다. 아, 이번에도 잔소리 대잔치면 어떡하지? 불안 속에 전화를 한다. 여지없다. 엄마는 하루 종일 걱정과 불안만 끌어안고 사는 분인가 싶을 정도로 딸자식에 대한 잔소리 폭격은 멈추지 않는다.


아 또, 스트레스다...


제발 오늘만은 그 상사가 나를 호출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이렇게 전화를 자주 하는 상사는 없었다. 그때그때 궁금한 내용을 디렉트로 전화해서 물어본다. 상사는 전화로 묻지만 나는 직접 자료를 들고 찾아가 보고를 해야 한다. 자료가 없으면 만들어야 한다. 기본업무 외 보고를 위한 추가적인 업무가 생겼다. 갑자기 바빠진 하루, 마음의 여유도 없어진다. 밤새 창문을 열어놓고 자는 바람에 둘째가 코를 훌쩍거렸다. 무사히 넘어가길 바랬지만 여지없이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미열이 있으니 데려가라고...

아...  오늘 하루도 망한 것인가


내가 생각하는 나의 불행들은 일상 곳곳에, 그것도 너무 가까이에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자.


4살짜리 아이에게 자다 깨도 엄마를 찾지 않기를 바라는 일이 가능한 일일까?

한 번에 한 가지 일 밖에 못한다는 남자의 특성을 너무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남편이 아이 둘을 케어하면서 집안일도 엄마만큼 완벽하게 마무리해놓길 바라는 것이 맞는 것일까?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딸과 손주들이 오늘도 건강하게, 앞으로도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잔소리를 막을 수 있을까? 상사가 바뀌지 않는 한 상사의 전화를 거부할 수 있을까? 아이가 한 번도 아프지 않고 자라는 게 가능한 일일까?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불행 회피 모드의 사람들은 그렇게 피하고자 했던 일이 생기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더 깊은 불행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반면, 행복 접근 모드가 많은 사람은 행복을 위한 접근이 쉬울 수밖에 없다. 하루 종일 모든 촉이 행복을 향해 촉수를 들이 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무 간단하다. 그냥, 지금 당장 하면 되는 것들이 많다.


지금 창문 밖 하늘을 올려다보고 맑고 푸른 하늘에 감탄하고, 미세먼지 없는 공기에 감사한다.

점심시간에 회사 후정을 산책하며 가끔씩 마스크를 내리고 바깥공기를 들이마신다.

어떻게 하면 자기를 예뻐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는 4살 둘째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눈, 코, 입에 있는 힘껏 힘을 주며 엄마를 향해 활짝 웃어 보인다. 아이 얼굴에 천국이 있다.

점심시간이 끝나 갈 무렵 헐레벌떡 구내식당에 도착했는데 메뉴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품 쌀국수다. 예기치 못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남편에게 투정을 부린 탓에 남편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 싶었는데, 걸려온 전화기 속의 남편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정한 목소리다.  



오늘 하루 행복 접근 모드를 가동해서 찾아본 나의 일상 속 풍경들이다.

      

불행할 이유가 없는데 행복하지 않다면 일상의 상당 부분이 '회피 모드'에 집중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남편에게, 아이들에게 , 직장동료들에게, 친구에게, 엄마에게...


일상 속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을 회피 모드에 집중해 보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 그 사람에 대한 바람직한 모습을 설정해 놓고 거기에 끼워 맞추려 안감힘을 쓰고 있었다. 좀처럼 들어맞지 않고 비집고 나오는 순간 나의 일상은 불행으로 바뀌어져 있었던 것이다.  


나만의 기준을 설정해 놓고, 나만의 회피 리스트를 만들어 놓고, 그 기준에 맞지 않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실망하고 절망하고 낙담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세상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데 그동안 회피 모드만 풀가동한 채 왜 행복하지 않은 지 또다시 탓할 거리만 찾고 다녔던 나는, 행복 둔재였다.

 



그렇다면 행복 천재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아주 보통의 행복'에서 최인철 교수님은 행복의 4대 보험으로 1. 좋은 인간관계 2. 자율성 3. 의미와 목적 그리고 4번째로 재미있는 일을 꼽았다. 재미? 재미란 아기자기하게 즐거운 기분이나 느낌을 말한다. 뭔가 거창하고 대단하지 않은 소소한 즐거운 기분이나 느낌, 그런 것이다.



행복 천재들은 좋아하는 것에 관한 한 천재다. 행복 천재들은 좋아하는 것이 많다. 또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다.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고 많으면 마음속에 '관심'이 가득하다. 그러나 싫어하는 것이 분명하고 많으면 마음속에 '근심'이 가득하다. 싫어하는 사람들, 싫어하는 일들, 싫어하는 장소들이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 아주 보통의 행복 중 -



행복 천재들은 '좋아하는 것' 들이 많다.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즐겁고 재미를 찾게된다. 따라서 좋아하는 것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 즐거울 확률도 높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날 때 좋아하는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다시 말하면 싫어하는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일수록 만나기 부담스럽지 않고 편하다. 그 사람을 만나 어떤 음식을 먹을지, 어떤 장소에 가서 무엇을 할지 결정할 때 좋아하는 카테고리가 넓은 사람이라면 크게 고민할 필요도 없고 만나서 보내는 시간도 즐거울 확률이 훨씬 높다.






응답하라 1998에서 정환이 아버지 김성균은 매일 시답지 않은 농담과 장난을 쳐서 아내인 라미란으로부터 구박을 받는다. 김성균의 농담은 딱 아재 개그 수준이었고, 장난은 철 지난 개그프로의 유행어를 흉내 낸 것으로 김성균의 장난을 받아는 주는 사람은 딱 한 명, 덕선이 뿐이었다.


'아이고 김 사장~ '

'아이고 성 사장~'

'반갑구먼 반가워요 반갑구먼 반가워요'


어떤 상황에서도 덕선이와 김성균은 마주치면 철 지난 개그를 흉내 내면서 그 순간을 아기자기하게 즐거운 일상으로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관계도 더 친근해질 수밖에 없었다.


장난, 농담 이런 소소한 재미는 삶을 조금은 유연하게 만들어준다. 꽉 막힌, 딱딱한 삶에 빈틈을 만들어준다. 매사에 심각하고 진지한 사람, 도통 잘 웃지 않는 사람들이 행복할 확률은 많지 않다. 유머의 힘은 크다. 주변에 유난히 재밌는 말을 잘하고 장난도 잘 치는 사람을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어색한 회의시간이나 사무실에서 재밌는 말 한마디는 사람들의 긴장을 풀어주고 분위기를 한층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김성균과 덕선이야 말로 행복 천재처럼 보였다. 많은 사람들을 배꼽 잡게 하는 유머는 아니었지만 그의 아재 개그는 그의 삶에 온기가 있고, 여유가 있다는 징표 같았다. 언제 어디서든 두 사람은 일상에서 소소한 재미를 만들어낼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내 일상에 아기자기한 재미와 유머가 깃들여 있다면 행복할 확률은 몇 배 높아질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행복 둔재들은 이와는 대조적으로 상당히 많은 '꼬리표'를 달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기름진 음식은 안 먹어, 술은 와인만 먹어, 운동은 정말 나랑 안 맞아, 그런 사람이랑 있으면 항상 피곤하더라, 소심해서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 못해, 원래 체력이 약해, 어릴 때부터 잠이 많아,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다  등등'의 꼬리표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나를 규정하고 틀에 가둬버린 꼬리표들이 삶의 범주를 크게 좁혀 놓았다. 그 꼬리표들을 평생 피할 수 있다면 크게 문제가 없겠지만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닌 이상 그건 거의 불가능이다. 언제 어디서든 튀어나올 수 있는 꼬리표들이 막상 닥쳐오면 일단 불행 모드가 가동될 것이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안 좋아하니까. 못하니까. 싫어하니까. 꼬리표는 시간도, 공간도, 인간관계도, 일상의 상당 부분을 제약한다.  


꼬리표가 붙은 일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결과는 뻔하다. 즐거울 리가 없으니 성과가 좋을 리도 만무하다.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해야 하는 것보다 괴로운 것은 없으니까.


꼬리표가 많은 사람일수록 좋아하는 것들의 범위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꼬리표에 붙어 있는 항목들을 피하기 바빠, 그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아주 단순한 즐거움의 기회조차도 잃어버리고 만다.







나는 어려서부터 닭고기의 퍽퍽한 가슴살을 먹지 않았다. 부드러운 닭다리나 날개 부위를 좋아했고, 가슴살을 먹느니 차라리 목 부위를 택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닭다리 같은 부드러운 살을 좋아했고 어릴 적 가족들과 치킨이나 백숙을 먹을 때면 닭다리 돌아가는 순위가 집안의 서열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사람들과 함께 닭고기를 먹을 때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가슴살을 좋아하지 않으니 아이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닭다리나 부드러운 살을 먼저 들이밀었다. 그런 나를 두고 남편이 한소리를 날렸다.


'원래부터 안 먹는 게 어딨어, 그냥 한번 먹어봐 먹다 보면 생각보다 괜찮을 거야 그리고 애들은 구분 없이 다 먹여 왜 처음부터 편식하게 만들어'


아이들을 생각한답시고 나의 꼬리표를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붙여 주고 있었다. 아이들이 닭고기 부위 별 다른 맛을 알기도 전에 부드러운 부위가 더 맛있는 고기라는 편견을 심어주고 있었다. 나중에 아들이 커서 닭가슴살을 주식으로 삼아 근육질 몸매를 만드는 설렘과 재미를 미리 빼앗을뻔 했다.


꼬리표를 떼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 즐거움의 범주를 좁혀 놓은 나만의 꼬리표를 과감히 떼내야 한다.

행복 천재가 되기 위해서는 꼬리표들을 과감히 떼고 좋아하는 것들의 목록을 늘려야 한다. 좋아하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행복 접근 모드가 제대로 작동될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인스타 속 화려하고 감성적인 사진들은 꼭 저렇게 완벽한 순간만이 행복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모두들 '행복'이란 것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지금, 뭔가 대단하고 거창한 것 만 행복이 돼야 할 것 같기도 하다. 나의 불행 회피 리스트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행복할 요건들이 다 갖춰지고 나면 그때서야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란 착각 속에서 오늘도 무엇인가 축적하려 몸부림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이런 완벽한 행복은 없다.


우리는 늘 특별한 행복, 예외적인 행복
미스터리한 행복을 바라지만
그런 건 없다.

행복은 '내 삶을 사랑하는 정도'다
딱 그 정도로만 이해하면 된다

사랑에 관한 한 사랑하는 사람과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즐거워하고
서로 이해하고 감사해하는 것이 상식적이듯
행복도 그렇다

- 아주 보통의 행복 중 -



'함께 잠을 자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가난이겠지만 느낄 줄 아는 자에게는 행복이다'라는 말처럼, 행복은 소유하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 것이고 발견하는 것이다.


불행할 이유가 없는데 행복하지 않다면,

불행 회피 모드에서 벗어나 일상 속 즐거움들을 많이 만들자.


기왕 천재가 되고 싶다면 행복 천재보다 좋은 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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