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목요일 오후, SRT 동탄역 플랫폼 에스컬레이터는 지하역사와 지상 출입구를 오르내리며, 도착한 손님들과 떠나는 손님들을 계속 실어 나르고 있었습니다. 평일이라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간간히 오르내리는 손님들 사이에서 벙거지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베이지색 코트를 입은 중년 여성이 머리부터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양손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딸과 손주 입에 넣어 줄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한 장바구니가 들려 있습니다.
지난 목요일, 딸은 당직근무였습니다.
지방에 있는 친정엄마가 딸을 대신해 손주들을 돌보기 위해 동탄으로 올라오셨습니다. SRT가 생긴 후 익산에서 동탄까지는 한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가 되어 엄마는 화장도 하지 않은 채 벙거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손주 손녀 줄 사탕 한 상자와 떡국용 떡을 챙겨 오셨습니다.
엄마가 화장을 안 하고 외출을 하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어려서부터 '예쁘다' '곱다'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계절과 유행에 따라 새 옷을 사 입고 예쁜 구두를 신고 곱게 화장을 하고 외출을 하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한눈에 받을 정도의 미모를 갖고 있었습니다. 환갑을 넘긴 나이임에도 큰 눈과 뚜렷한 이목구비의 얼굴은 그대로였습니다. 센스 있는 코디로 최신 유행하는 옷을 멋들어지게 소화할 정도의 몸매와 패션 센스를 겸비한, 엄마는 한마디로 멋쟁이 중년 여성이었습니다.
딸은 학창 시절에 그런 엄마가 학교에 오는 날이면 괜히 설레고 자랑거리가 하나라도 더 생긴 듯 어깨에 힘이 들어가 곤 했습니다. 딸의 눈에도 엄마는 다른 엄마들에 비해서 훨씬 예뻤으니까요. 도보 5분 거리의 교회에 갈 때에도, 1시간 거리의 익산에서 동탄을 오갈 때도 빨간색 립스틱과 롱치마, 오버핏 코트, 머플러, 부츠는 기본으로 갖추고 오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랬던 엄마가 언제부턴가 화장을 안 하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예순을 넘기시면서 부쩍 힘이 빠지시는 듯 보였는데 최근 들어 병원을 찾는 일이 잦았습니다. 딸은 회사에 잠깐 외출을 내고 아이들을 하원 시켜 기차역으로 엄마를 데리러 갔습니다. 아이들과 엄마를 집에 데려다준 후 서둘러 회사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날따라 힘없는 엄마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혔습니다. 엄마는 오랜만에 만난 손주들을 안아주고 뽀뽀를 하며 웃고 계셨지만, 얼굴에도 몸에도 힘이 쭉 빠져 있었습니다. 딸은 냉장고에 사다 놓은 아이들 저녁거리와 간식거리를 알려주고 다시 회사로 왔습니다.
당직 다음 날은 오전 11시 조기퇴근입니다. 퇴근 직전 엄마에게 전화를 해보니 엄마는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병원에 가고 계셨습니다. 속이 너무 안 좋고 머리까지 아파서 도저히 참기 어려워 가신다고 했습니다.
아... 딸은 순간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그러면서 화도 났습니다.
왜 아프다는 말도 못 하고 일하는 딸 뒷바라지한다고 그 몸으로 꾸역꾸역 동탄까지 오셨는지... 일단 무조건 내시경 검사를 예약하라고 했습니다. 엄마는 작년 12월부터 소화가 잘 되지 않고 더부룩하다고 했었는데 해를 넘겨야 건강보험 적용을 받아 무료로 내시경 검사를 할 수 있다고 하면서 검사를 미루고 있었습니다. 딸이 병원에 도착하니 엄마는 내시경 검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어제저녁부터 밥을 먹지 못해 지금도 충분히 검사를 할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엄마는 음악을 좋아하십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긴장감 없이 멋지고 우아하게 노래할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으며 교회 성가대에서 20년 넘게 지휘를 맡고 있습니다.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코스모스에 연신 감탄사를 뱉어내는 소녀감성도 갖고 있습니다. 평생 자식들과 남편 뒷바라지만 해오다가 일을 시작한 건 아마불과 5년도 안된 것 같습니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고, 같은 해 12월, 엄마 자신보다도 소중했고 남편만큼 의지했던 큰 딸이 결혼을 했습니다. 엄마는 아무 준비도 못한 채 그렇게 남편과 딸을 품 안에서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갑작스럽게 바뀐 상황에 적응하기도 전에 안 해 본 바깥일을 하기 시작하니 몸이 망가지는 것은 자연 수순이었습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엄마는 무슨 큰 병은 아닐지 내심 불안해하고 계셨습니다. 딸이 마흔을 넘기니 엄마는 예순 중반을 훌쩍 넘기고 계셨습니다. 항상 딸의 든든한 지원자였고, 친구였고, 딸이 원하는 거라면 하나부터 열까지 아무 이유 없이 다 들어주셨던 엄마, 기대고 싶으면 언제든 달려가 안길 수 있는 곳에 항상 계셨던 엄마의 굳건했던 그 자리가 흔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축 처진 어깨와 푹 눌러쓴 모자 속에서 힘없이 병원 의자에 걸터앉아 있는 엄마는 " 딸아 이제 엄마 좀 봐다오, 엄마가 많이 힘들구나.."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딸이지만 워낙 무뚝뚝한 성격이라 병원 의자에 맥없이 앉아 있는 엄마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손 한번 잡아드리지 못합니다. 엄마와의 스킨십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합니다. 결혼 전에는 팔짱 끼고 쇼핑도 자주 갔었는데 결혼 이후 엄마와의 관계가 예전과 달라진 건 분명합니다. 주글주글한 엄마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괜찮아?'라는 말 한마디로 대신합니다.
마흔, 자식의 정체성이 흔들린다
딸은 지금까지 엄마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엄마는 부모이고 딸은 자식입니다. 자식은 부모라는 울타리 안에서 어떤 잘못된 행동도 용서받을 수 있고 이해받을 수 있다는 절대적인 믿음 안에서 자랍니다. 부모의 보살핌 속에서라면 자식은 무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으며 세상에서 가장 유능하고 똑똑한 자녀가 됩니다. 부모는 자식을 그렇게 만들어 주는 사람입니다.
자식을 가장 높이 세워주고 일으켜 주는 사람, 세상을 살아나가는 것 자체 만으로도 기특하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사람, 어떤 모습으로 부모 앞에 나타나도 아무 말 없이 품어주시는 분이었던 부모님이, 이제는 누군가의 손길을 구하고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약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검사 결과 엄마는 역류성 식도염 증상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보다 쾌 높게 나와 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콜레스테롤 약은 꾸준히 복용해왔으나 최근에 한약을 먹으며 잠시 중단했던 게 수치 상승의 원인이 된 것 같았습니다. 엄마는 평소 위장이 약해 밀가루나 차가운 음식을 잘 소화시키지 못하고 조금만 염증이 생겨도 통증이 심해 그 여파가 두통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옆에 있던 딸은 검사 결과를 듣고 피식 웃음이 납니다.
딱 1년 전, 딸도 이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었습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소화가 되지 않고 더부룩한 느낌이 오래 가 내시경 검사를 했는데 진단명은 역류성 식도염이었습니다. 참... 엄마와 딸은 아픈 것도 똑같았습니다. 속이 안 좋으면 두통까지 오는 것도 닮았습니다.
딸의 인생에는 엄마의 인생이 새겨진다
딸의 인생에는 엄마의 인생이 새겨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결혼 후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설거지를 하다가도, 빨래를 개다가도, 아이를 혼내다가도, 몸이 아플 때도 무심코 나오는 행동이나 말, 몸의 변화까지, 친정엄마와 닮아도 너무 닮았다는 사실에 깜짝깜짝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딸이었을 때는 드러나지 않았던 것들이 딸이 엄마가 되니 하나둘씩 저절로 몸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밀가루와 찬 음식을 잘 소화시키지 못하고, 속이 안 좋으면 두통까지 따라오는 것도, 배가 고프면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기운이 떨어지다가도 밥 한 숟가락에 언제 그랬냐는 듯 기운을 회복하는 것 까지, 엄마의 몸도 딸의 몸에 그대로 새겨지는 것 같았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엄마는 기운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다음날까지 죽으로 끼니를 때운 후 다시 동탄역으로 발걸음을 돌려 익산 엄마 집으로 향했습니다. '며칠 더 있다' 가라는 딸의 간청은 들리지도 않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불편한 몸으로 음식도 제대로 못해주고 있으면 오히려 딸에게 부담만 준다며 집에 가서 쉬고 기운 차려서 다시 온다고 했습니다.
딸은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친정집이 내 집처럼 편하지 않았던 순간, 엄마 역시 딸 집은 남의 집이 되어버렸습니다. 엄마도 알고 있습니다. 엄마의 딸이기만 했던 그 딸이, 이제는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집안일을 챙겨야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아이들을 케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결혼과 동시에 엄마와 딸의 사이가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도, 엄마도 딸도 잘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돌아가는 기차역에서도 엄마는 올 때 그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화장기 없는 맨 얼굴에 탄력 없고 주름 가득한 60대 아줌마의 얼굴, 최근 몇 년 험한 일을 한 탓인지 손도 몰라보게 늙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빨간색 립스틱 하나로 충분히 멋을 낼 줄 알았던 엄마였는데 이제는 그 조차도 힘이 부치는 듯 보였습니다.
여자가 예뻐 보이고 싶은 것,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구는 살아있는 생명체가 살고자 하는 본능과도 비슷한 그 무엇입니다. 머리가 희끗희끗할 정도로 나이 드신 할머니도, 피부마사지를 받고 마스크팩을 하며 자신을 가꾸길 마다하지 않고, 여자라면 누구나 '예쁘다'는 말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가까운 마트에 가는데도 한참을 꾸미고 나섰던 엄마에게 '그냥 대충 입고 가자, 어차피 마스크를 끼는데 화장을 왜 하냐'라고 채근 댔던 딸은, 이제는 엄마가 더 이상 화장을 하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딸은 엄마를 배웅하고 나서 가까운 화장품 가게에 들러 빨간색 립스틱 하나를 샀습니다. 7년 전 엄마에게 결혼 소식을 전했을 때가 생각이 납니다. 엄마는 교회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딸의 결혼 소식을 듣고 한동안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딸은 당시 머릿속에 본인의 결혼 생각으로만 가득 차 엄마가 어떤 심정일지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채 그렇게 웨딩드레스를 입고 새로운 가정을 만들어 떠나버렸습니다.
젊었을 적 엄마는 예쁜 옷을 사 입고, 예쁘게 화장을 하고 나설 때 참 행복해 보였습니다. 새 옷을 입고 거울 앞에서 이리 돌고 저리 돌며 딸에게 잘 어울리는지, 어떤 옷이 더 예쁜지 물으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흐뭇해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엄마는, 더 이상 슬퍼 보이지 않기 위해, 힘들어 보이지 않기 위해, 세상의 시련과 고통에 맞서 살아가기 위해, 얼굴에 분을 바르고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딸은 코트 주머니 속의 빨간 립스틱을 만지작 거리며 생각했습니다. 엄마는 화장을 계속해야 만 한다.....
엄마는 앞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이 세상이 엄마에게 던져 놓은 시련과 고통에 당당히 맞서기 위해, 그리고 이 시대의 엄마와 아내로 살아온 여자의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해서 화장을 계속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마흔인 딸은 이제 더 이상 보살핌을 받는 자식이 아닙니다.
이제는 엄마에게 받은 것을 돌려드려야 할 때임을 알았습니다.
엄마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딸, 걱정 마. 엄마가 운동도 잘하고 약 잘 먹고 할게
정말 기운이 없는데 콜레스테롤 약 잘 먹으면 괜찮을 거니까. 내일 되어도 기운 없으면 병원 가 영양제 맞을게 근데 밥 먹음 괜찮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