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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장구 Sep 26. 2024

나는 매일 학교를 마치면 경운이 집으로 뛰어간다.   

내 인생 최초의 절친을 만났다.

나는 요즘 매일 학교를 마치면 집에 가자마자 신발을 벗지도 않은채 가방을 방에 휙 내던지고 경운이 집으로 뛰어 간다. 매일 경운이 집에서 논다. 논다고해봐야 별게 없다. 책읽는다. 경운이 집에는 읽을 책이 많다. 세계아동문학전집, 세계위인전집이 있고 무엇보다. 매월 "소년중앙"을 받아보고 있다. 동삼동에서 집에서 소년지를 정기구독하는 집은 몇 안된다. 내가직접 본 것은 경운이 밖에는 없지만 해양대교수 아들인 전중석이와 좀 까불거리고 잘난체 하는 편인 박상병이도 받아볼거 같은데 정확하게 알수 없다. 돈이 많다고 모두 소년지를 보는 것은 아니고, 소년지를 정기구독하는 것은 부모의 결정사항이니까.

아뭏든 경운이 엄마는 교육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내가 경운이 집에 매일 놀러가게 된 것은 내가 경운이 짝이라서라기보다도 내가 공부를 잘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동삼국민학교에 오자마자 첫 시험에 당당히 일등을 했고, 그다음날 경운이가 자기 집에 놀러가자고했다. 아마도 경운이가 집에가서 전학온 지 짝지가 1등을 했다고 엄마한테 말하고, 엄마가 "가 한 번 집에 뎄고 온나"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싶다.  경운이가 내 짝지이고, 내가 공부를 잘하고, 경운이 엄마가 아들 공부에 관심이 많고, 경운이집에 책이 많고, 경운이와 내가 말이 잘 통하고... 이 모든게 한꺼번에 일어난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만남은 운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경운이는 내 짝지이니까 당연히 키가 작다. 내가 작은데 나보다 더 작다. 아마도 우리반에서 키작은 순서로 경운이가 1~2등, 내가 3~4등 정도 할 것이다. 경운이가 나하고 다른 점은, 나는 달리기를 잘 못하는데 경운이는 달리기가 매우 빠르다. 체육시간에 선생님이 달리기를 시키면 반에서 거의 1등을 한다. 경운이보다 달리기가 빠른 아이를 나는 아직 태어나서 본적이 없는 것 같다. 경운이가 뛰는 것을 보면 쬐끄만게 엄청 빨리 뛰는게 흡사 다람쥐 같다. 그러고 보니 입고 있는 옷도 다람쥐와 비슷하다.

동삼동은 마을 앞을 지나는 버스길에 직각으로 한가운데 경사진 콩크리트 소방도로가 저 위로 뻗어 있는데, 일단 왼쪽이 3통 오른쪽이 4통이다. 4통보다 더 오른 쪽은 5통이고 5통 오른 쪽에 언덕길 위에 성당이 있다. 성당옆 살짝 고갯길을 넘으면 거기도 마을이 나오는데, 거기는 잘 갈일이 없다. 6통인가? 잘 모르겠다. 6통이라고 치고, 그 밑으로 버스길에 붙어서 경희어망공장이 있고 간혹 천막을 치고 영화 상영을 하는 공터가 있다. 경희어망에서 버스길을 따라 태종대 반대방향으로 청학동으로 가는 길인 데, 청학동 가기전에 내려가서 바닷가에도 사람들이 산다. 청학장이라고 부른다. 동네이름이 좀 이상하다.  독립성이 없다. 우리반에서 제일 뚱뚱한 최종덕이가 거기 산다. 최종덕이는 좀 멍청하고 뚱뚱한데 성격은 별로 안좋다. 걔가 우리반에서 싸움이 2등이다. 1등은 영식이다. 영식이는 키가 조금 크고 좀 험상 궂게 생겼다. 성격이 사나워서 걸핏하면 손찌검이라서 가까이 가고싶지는 않다. 일단 팔이 안닿는 거리에 있으면 괘히 맞을 일은 없다. 나는 싸움 잘하는 애들이 좀 싫다.

이야기가 옆으로 샜다. 소방도로를 따라 올라가거나 3통가운데 비탈진 길을 따라 올라가면 경운이집이 있다. 경운이 집은 우리집 3통 저 위쪽에 있다. 소방도로 건너편 위쪽은 2통인데 경운이 집은 2통인지 3통인지는 잘모르겠다. 하여간... 경운이 집 위로도 집이 조금 있고, 거기를 지나면 고갈산으로 올라가는 것 같은데 경운이 집위로 올라가 본 적은 없다. 솔직히, 별로 올라가 보고 싶은 생각도 없다. 드문드문 나무들이 있지만 지붕너머 보이는 고갈산은 전혀 매력이 없다. 온통 삭막한 바위투성이고... 볼 때 마다 생각하지만 고갈산은 무슨 산이 저렇게 생겼을까? 좀 흉하다. 동네사람으로 남들에게 말하기 좀 창피하다는 생각이 든다. 애들도 고갈산 이야기는 거의 안한다. 어린 애들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불쌍한 불모의 산이다.  

경운이집에 처음 간 날도 별거는 없었다. "안녕하세요" 인사하고 "니가 앙장구구나" 말씀하시고... 세계문학접집, 세계위인전집, 지나간 월간 소년중앙 잡지들... 내게는 보물창고에 떨어진 것과 같았다. 경운이는 내가 이책저책  뒤적이는 것을 자랑스런 표정으로 바라보고..  내가 봐도 나는 분명히 책을 좋아한다. 동화책도 좋지만 만화는 특히 환장을 한다. 만화가 있으면 그게 제일 우선이다. 구고 뭐고 없다. 내가 말도 없이 책만 뒤적이니까 경운이도 할게 없으니 책을 뒤적이고, 그러다가 저녁이 오고 경운이 엄마가 저녁먹고 가라고 그래서 저녁먹고 집에 오고, 그게 다다. 그 뒤로도 거의 매일 경운이 집에가지만 노는 패턴은 거의 매일 비슷하다. 아참 그저께는 경운이와 바둑을 두었다. 이 나이에 바둑둘줄 아는애가 별로 없는데 경운이;가 바득을 들고 나와서 기뻤다. 경운이와 내 바둑실력은 비슷했다. 경운이 집에는 바둑말고도 바둑 비슷하게 생긴 삼각형으로나무 같은 말들을 각각 10개씩 가지고 한 번에 한깐씩  움직이면서 상대방말을 양쪽으로 가두어서(바둑은 네군데를 막아야 하는데 이건 두군데만 가두면 되니까 비교적 더 시시한 게임이다.) 상대방말을 잡아먹는 게임판도 있고. 나는 장기도 둘줄아는데 경운이는 장기는 모른다. 오목은 경운이와 내가 실력이 서로 비슷하다.

경운이는 남동생이 3명이다. 경운이 엄마는 아들 네명을 둔 것이다. 우리 엄마는 아들 둘 딸 하나, 사람들이 딱 좋다고 그런다. 경운이 동생 경철이와 경수는 쌍둥이인데, 우리보다 3살 아래이다. 내 밑에 남동샌 인수와 나이기 같다. 그리고 막내 경길이는 우리집 막내 영숙이와 나이가 같다. 동생들은 형아들하고 놀고 싶어하지만 우리는 동생들과 잘 안돈다. 수준차이나 나니 재미가 없다. 그래도 경운이 동생들은 형아들이 자기 집에서 노니까 옆에서 기웃거리다가 조금 끼어 들수도 있는데 나는 동생들에게 너무 관심이 없다는 생각이 조금 들기도 하지만 아직은 아무 문제도 없다. 내 동생들은 집에서 엄마하고 노니까 내가 할 일도 별로 없다. 경운이 집에서 놀다가 저녁때가 되면 슬그머니 경운이엄마 눈치를 본다. "저녁먹고 가라"그러면 저녁을 먹고, 아무 말도 없으면 얼른 인사를 하고 집으로 뛰어 내려온다. 요즘은 경운이하고만 논다. 경운이 집에는 내가 못읽은 책과 만화들이 아직 억수로 많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오늘도 빨리 수업 마치고 경운이집에 가서 만화랑 책 읽어야지 하는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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