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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 동삼국민학교로 전학을 했다.

영도는 부산인데 시골이다.

by 앙장구

집이 이사를 하고, 나는 전학을 했다. 영도구 동삼동 동삼국민학교 3학년 2반 36번. 영도는 섬이다. 그런데 다리가 있다. 영도다리는 배가 지나갈때는 들어올린다고 한다. 나는 아직은 보지는 못했다. 버스를 타면 영도다리를 지나 동삼동으로 가야하니까. 들고 있는 시간보다는 내리고있는 시간이 더 많겠지.

동삼동은 영도에서도 제일 깊은 곳에 있고 부산에서 제일 못사는 동네중에 하나라고 한다. 동삼동 가는 버스는 8번 태종대 가는 버스 하나밖에 없다. 영도에서 시내는 남항동, 영선동 이런데고 거기는 버스도 많고 시장도 있고 가게도 많다. 동삼동 오기전에 청학동까지는 7번 버스가 한개 더 있다. 청학동에서 내려서 동삼동 까지 걸어갈 수도 있지만 꽤 멀다. 도로는 청학동까지만 포장이 되어 있고 청학동부터 태종대까지는 포장이 안되어 있다. 하지만 동삼동은 경치하나는 근사하다. 저 멀리 바다건너 오륙도가 보이고, 저 밒으로내려가면 해수욕을 할 수 있는 자갈해변이 있는데 그 건너편에는 1키로정도 이상 조금 멀지만 그렇게 멀지 않은거리에 고래처럼 생긴 "조도"라는 섬이 하나있다. 그선에서 동삼국민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들 말에 의하면 그 섬에 사는 사람들은 밀수를 많이 한다고 한다. "밀수"라면 왠지 해적 비슷한거 아닌가? 뭔가 조금 무서우면서도 근사한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나는 조도에 가보고 싶어도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하여간 앞바다에 조도가 있어서 경치는 더욱 근사하고 편안하다.

동삼초등학교는 조도 건너편 바닷가에 있고(그래서 이동네에서는 누가 "좆도!"그러면, "조도는 있어도 좆도는 없다"라고 대꾸하는게 애들사이에 유행이다.) 마을은 밭들이 많이 있는 언덕을 한참 올라가서 있다. 버스는 청학동에서 저 위에 있는 마을을 지나 태종대로 간다. 학교 바로 밑으로 해안을 따라 도로가 있기는 하지만 버스는 다니지 않는다. 학교 앞에는 문방구가 하나 있고 해안을 따라 사람이 사는 집들이 이어져 있다. 그중에 일부는 고기잡이를 하는 것 처럼보인다. 어떻게 보면 내 고향 거제도 덕포와 비슷하다. 거기서도 조모이가 사는 큰집은 바닷가에서 함참 위에 있고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어업이 본업이다.

동삼동은 대체로 비탈진 편인데 조도너머 부산바다가 넓게 보이고 저 끝에는 오륙도가 가물가물 보인다. 참 신기하게 5개가 되었다가 6개가 되었다가 한다는데, 어떻게 세서 5개이고, 어떻게 세서 6개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시험에 안나오는 그런데는 좀 약해서 썰레바리를 한참 풀다보면 나는 좀 딸린다. 학생이 시험만 잘치면 됐지뭐...

학교과 마을 사이에는 집은 없고 주로 밭들만 있는데 소방도로라고 콩크리트길이 쭉 나있다. 우리는 아침마다 그 언덕길을 날아서 학교를 가고, 수업을 마치고는 뛰어서 집으로 올라간다. 마을 뒤에 저 꼭대기에는 "고갈산"이 있다. 고갈산은 참 고갈산 스럽다. 나무는 산 중턱까지만 있고 그 이상은 바닷가 자갈보다 더큰 왕자갈과 바윗돌들만 잔뜩 깔려 있다. 덕포 고향의 숲이 울창한 옥포재, 송정재를 넘나들던 나로서는 고갈산의 풍경은 산으로서는 참 빈티나고 없어보인다. 그래도 이름이 "고갈산"은 좀 심했다. 설마 목마르다, 메말랐다. 그런 고갈산일까? 별명아닐까? 진짜 이름은 무얼까? 얼마나 더크면 내가 저 꼭대기에 올라가 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은 혼자하는 것이지 애들에게 물어봐야 아는 애들도 없다. 내가 그정도 눈치는 있다. 동삼동은 내가 사는 저 위의 "상리", 저쪽의 태종대쪽으로 가다가 해양대학교로 꺽어진다는 "중리", 태종대 가는 길 바닷가의 "하리" 이렇게 세가지로 나누어져 있다. 중리에는 마을이 별로 안 큰 편인데, 우리반에서 제일 잘산다는 전중석이 중리에 산다. 저그 아부지가 해양대학교 교수라고 하는데 찰랑이는 하이카라 머리칼에 윤기가 나고 입고 다니는 옷차림이 비싸보인다. 공부는 나보다 못하는데 집이 부자라서 반장을 한다. 전중석이 집에는 딱한번 놀러 가 봤는데, 별거는 없고 대문에서 현관문까지 낮은 나무가 가지런이 심어져 있는 길을 따라서 꽤 들어간다. 교수 사택이라고 하든가? 하여간 동삼동에 있는 다른 집들과는 다르고 좀 있어보인다.

동삼동의 집들은 국수집, 방앗간, 목욕탕, 이발소, 신발집들이 몰려있는 중심가를 조금만 벗어나면 대체로 거리를 두고 한집씩 떨어져 서있다. 별로 큰 집은 없는 데 대부분 집옆에 텃밭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사는 집도 주인집 옆으로 방한칸 세들어 사는 데 집앞에는 상추 밭이 있다. 마당 앞에 상추밭이 있다는 것은 참 근사하다. 아침마다 세수한 구정물이나 설거지한 물을 상추밭에 좍 뿌린다. 마당한켠으로는 채송화, 봉숭 아도 피어있고, 나팔꽃은 담장에 걸쳐 매어놓은 줄을 따라 피어있다. 주인집 아들 송영일은 나하고 같은 반이다, 집앞에서 내다 보면 부산 앞바다는 무한정 쳐다볼 수 있다. 남자는 이렇게 탁트인데서 살아야 야망과 배포가 커지는 것 아닌가 싶다. 어쨌든 나는 이 동네가 참 마음에 든다. 7살때부터, 3학년 1학기까지 살았던 수정동은 좀 별로였다. 거기서도 이사간날 엄마를 잠시 잃어버란 것도 쪽팔린 기억이고(얼른 정신을 차리고 "가만서서 기다리면 물길러간 엄마가 다시 되돌아오겠지 라고 생각해서 엄마를 스스로 찾아서 남들에게 개쪽은 안 팔았지만.... 아뭏든 가슴이 철렁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옆에 무지무지 큰 동아제분도 덩치만 대따 컷지 왠지 시커먼게 기분 나쁘고, 부산진역에 애들과 같이 기차가 지나가는 기찻길에 못을 놓아둬서 지남철을 만들때도 나만 실패했고(못을 못찾았지)... 동네는 멋대가리 없이 시커멓고 지저분하고 구불부불 골목길따라 판자집들만 있고, 바다도 없고 산도 없고 논밭도 없고... 친구들도 별로 없었다. 친구는 "차건원"이라고 딱한 명 있었는데, 걔는 2학년때 다른데서 전학왔다. 서울서 왔다고 했던가. 말씨가 부산말이 아니었다. 우리집에서 구불구불 골목을 들어가면 있는 지저분한 판잣집에 살았는네, 애는 사는집 치고는 좀 깨끗하게 입고다니고 공부도 잘하는 편이지만 나보다는 못했다. 내가 차건원이 집에 놀러간 날 차건원이 아버지가 "니가 앙장구가? 공부 잘한대며?" 해서 조금 우쭐했었는데, 동삼동에 이사오자마자 별 생각이 안난다. 그전에 수정동에서 항도국민학교에 마지막 간 날 김철용선생님에게 울면서 "다음에 대통령이 되어서 선생님 만나러 오겠습니다."하고 애들과도 "나중에 서로 편지하자"라고 하면서 서로 손잡고 울었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애들 우정이란게 별게 없나보다. 우선 내가 편지를 안썼으니 애들이 내게 답장을 할 수가 없지. 사실 나는 편지쓰는법도 모른다. 편지 별거겠나, 그냥 쓰면 되겠지만 하여간 나는 아직 편지는 한번도 써본적이 없다.

하여간 과거는 모두 흘러보내고, 저 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열심히 나의 꿈을 키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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