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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장구 Aug 17. 2024

달이 어떻게 동쪽에서 뜨지?

1964년 12월, 날씨 모름.

분하다. 내가 2등이란다. 기말고사에서 내가 딱 한문제 틀리고, 올백점을 맞은 박경이 1등, 내가 2등이란다. 내가 그렇게 속좁고 등수에 목숨거는 놈은 아니다. 문제는 내가 틀린 문제가 채점이 못된 같다는 점이다.

틀린 문제는 국어시험이다. 보기는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달, 어디어디 떴나 남산위에 떴지" 그리고, 질문(Q)은 "달은 어느 쪽에서 뜨는가?" 나는 당연히 동,서,남,북 중에 남쪽을 골랐다. 남산이니 남쪽이고 달은 위로 떠오르니 남산 위에 달은 남쪽에서 뜨는거 아닌가? 그런데 틀렸단다. 정답은 동쪽이란다. 나는 감히 선생님에게 물어볼 엄두가 나지않고 속만 탄다. 생애 첫시험에서 2등 이라니, 정말 치욕적인 일이다.

박경은 초량 부자동네에 산다. 박경엄마는 학교에 자주온다. 우리엄마는 내 입학식날 한 번 온 것이 전부다. 그런데 담임 채숙정선생님이 엄마 중학교 동창이란다. 둘이 서로 반가워하는 모양으로 봐서 뻥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우리엄마는 원래 뻥이 뭔지도 모른다. 채숙정선생님이 엄마와 동창이라면 선생님이 나를 반장을 시키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런데 박경이 반장, 내가 부반장이란다. 그때부터 좀 이상했다. 세상에 어떻게 여자가 반장이고 남자가 부반장을 할 수가 있는가? 남녀가 유별한데... 다른 반은 모두 남자가 반장인데. 그때부터 수상하기는 했다. 박경엄마가 무슨 이로를 쓴 것이 아닌가? "와이로가 심한게 참 문제야!" 어른들 말을 옆에서 들은 적이 있다.

그나 저나 윤경이는 왜자꾸 나를 따라 다니는거지? 수업 끝나는 종이 울리면 내게로 온다. 같이 변소 가자고. 나는 남자 지는 여자, 나란히 서서 오줌을 눌수 있는 것고 아닌데. 윤경이는 이쁘긴하다. 그런데 나보다 키도 크고 달리기도 잘한다. 긴머리칼를 휘날리며 "영감 목소리~"하고 나를 놀리면서 빨간 사루비아 꽃이 핀 화단을 따라서 도망을 치면, 나는 남자인데 여자인 윤경이를 잡을 수가 없다. 쪽팔린다. "영감목소리" 놀리는 소리도 듣기 싫다. 1년내내 기침을 하는데 어떤 약을 먹어도 낫지를 않더니 1학년 여름이 지나면서 슬그머니 기침이 나오지 않게 된 것은 좋은데 목소리가 거칠어져서 윤경이가 "영감목소리" 라고 놀리는 것이다. 애들이 윤경이가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한다. 당연하다. 나는 공부도 잘하고 잘생겼으니까. 반에서 키는 제일 작지만. 하지만 나는 윤경이보다 박경이 더 좋다. 공부도 잘하고 좋은 옷을 입고 얼굴도 깨끗해서 다른 애들과는 확실하게 다르다. 부잣집애 티가 난다. 나는 박경에게 말을 말 못건다. 라이벌이니까.   


<CFTF> 1.초등학교 입학전에 천식을 심하게 앓았다. 덕분에 나는 목에 좋다는 민간 요법약을 많이 먹었다. 호박을 속을 파고 콩나물(대가리따고), 생엿, 꿀, 배를 널고 중탕한 것을 상시로 먹었다. 너무 맛있어서 기억이 난다. 나중에 왜 병원에는 안갔냐고 질문하니까 엄마는 "무슨 소리냐 "1년 내내 잘한다는 소아과 병원에 안가본 곳이 없는데.."라고 말씀하셨다. 아뭏든 나는 병원에 간 기억은 없고 맛있는거 먹은 기억밖에 없다.

2. 달이 동쪽에서 뜨는 줄을 알게 된것은 지구의 자전을 배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였다. 그 이전까지 나는 선생님의 실수(이쪽을 좀더 강하게) 혹은 부정을 굳게 믿었었다. 그런데 "달이 어느쪽에서 뜨는가?" 라는 질문은 국어 문제로서는 좀 부적절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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