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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장구 Aug 15. 2024

나는 그날 파출소에서 팥죽을 안먹었다.

1961년 초봄 어느날, 화창하지 않은 날씨

큰 일 났다. 엄마가 없다. 조모이*도 없다. 앞에는 왠 제복을 입은 아저씨가 우는 나를 달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니 이름이 뭐고?" "엉~, 앙.장. 엉엉~. 구요." "앙장구?, 너거 집이 어디고?" "엉엉, 도라무깡 두개 있는 집요. 엉엉." "도라무깡 두개가 어디 있는데?" "엉엉. 우리집에요. 엉엉"... "너거 집이 어디고?" "엉엉, 도라무깡 두개 있는 집요. 엉엉." "도라무깡 두개가 어디있는데?" "엉엉. 우리집에요. 엉엉"... 도돌이표 문답과 울음소리가 반복되던 중 경찰관 아저씨가 팥죽을 내밀었다. "배고프제? 일단 좀 무라." "나..흐엉, 파쭉 안무요, 우리 엄마 좀 찾이주이소.. 흐엉, 흐엉.."

갑자기 파출소 문이 열리면서 모이가 들어섰다. "저기요. 우리 아가~. 니 여깄네!!" "할머니 손준교? 아이고 씨끄러버서. 퍼뜩 뎄고가이소" "아이고 고맙심더." "팥죽값은 주고 가야지요." (조모이가 괴줌치를 열고 돈을 내민다. 얼마를 주었는지, 거스름돈을 았는지는 모르겠다.) "조모이*, 나 파쭈안무따. 파쭈안뭇다." 좀 전의 절망감은 어디가고 '조모이' 손에 끌려 집에 오는 내내 나는 '조모이'가 내가 먹지도 않은 팥죽값을 지불하고도 부당하게 지불한 팥죽값을 도로 찾으러 가지 않는 것이 내내 답답했다. 그때는 내가 너무 울어서 "조모이"가 내 말을 못알아들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침착하게 또박또박 "조모이 나 팥죽 안뭇어요. 돈 도로 찾아오이" 라고 말해서 부당한 손해를 만회하지못한 것이 못내 억울한 마음은 그로부터 7~8년은 이어진 것 같다.


* 조모이=조모+존칭보조어간 '이'. 내고향에서는 할머니들을 "조모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부산에서 다른 아이들이 자기할머니를 "할머니"라고 칭할때 나는 속속으로 "자기 '조모이'를 "할머니"라니,, 서로 별로 안친한갑다."라고 생각하곤 했다.


<CFTF(Comment From The Future)> : 그날은 거제도에서 부산으로 이사한 첫날이었다. 부산에서의 첫 식사를 위하여 엄마가 양동이를 이고 공동수도에서 을 길어나르고 있던 중에 내가 엄마 치마꼬리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친 것이다. 어린 나에게 물 저장을 위하여 집에 새로 들여온 도라무깡 2개는 엄청난 신문물이자 큰 재산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나중에 나는 내가 엄마잃고 맡겨진 곳의 이름이 "파출소"라는 것을 알았고, 내나름으로는 파출소가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팥죽을 끓여서 대접하여서 "파출소"라는 이름이 붙은 줄 알았다. "파출소"가 한자말이라는 것을 안 것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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